소설 <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소설의 시작에서 두 어린아이가 죽음 혹은 죽음에 임박한 순간을 맞는다.
이들의 보모 루이즈 역시 손목 자상의 과도한 출혈로 생사의 갈림길에 선다. 루이즈는 그토록 애틋하게 보살피던 아이들과 그녀의 삶을 어떤 이유에 끝내려 했는지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소설은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까지도 여전히 루이즈의 결정에 많은 의문이 생겼다. 루이즈의 심리적 갈등을 충분한 전지적 시점으로 설명해주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표면적으로 특별한 사건이 없이 루이즈와 루이즈를 둘러싼 인물 그리고 슬쩍 내비쳤던 그녀의 불행한 과거를 보여주고 이 결과가 바로 살인과 자살로 연결되는 지점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꾸어 생각하면 불운한 과거와 잘못된 결혼이 그녀에게 미친 심리적 영향이 그토록 지대했다는 이야기다.
루이즈는 오래도록 보모일을 하면서 갖은 횡포와 폭력을 일삼는 남편이 있는 원래의 집에서 빠져나와 아이들의 웃음이 있는 번듯하고 단정한 집을 가꾸며 사는 달콤한 인생을 살았다. 이곳에서는 한 사람의 인격으로 존중받고 그녀가 이 가정을 위해 하는 모든 일들을 인정받았다. 작은 체구이지만 무거운 짐을 거뜬히 옮기고 티끌 하나 없이 청소를 하며 쉽지 않은 아이들을 한순간에 사로잡는 능력은 그간 그녀가 얼마나 간절히 그리고 열심히 이곳에서의 인생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루이즈는 시간이 갈수록 이 삶을 포기당할까 봐 두려워졌다.
더 이상 본래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살 수 없을 위기에 처하고 보모로 일하는 집에서 아이들의 성장과 일련의 미묘한 감정 대치 상황으로 더 이상 그녀를 원하지 않을까 봐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이 공포의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녀가 돌보던 아이들을 죽인 건 그녀가 없을 경우 부모인 미리엄과 폴의 손에 맡겨져(혹은 다른 시원찮은 보모에게 맡겨져) 아이들이 불행해질까 봐 선택한 방법인 듯 보인다. 물론 이 역시 극한 불안과 신경쇠약에 시달렸던 루이즈의 비정상적 선택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얼마 전 읽었던 황정은 작가의 <百의 그림자>를 떠올렸다. <百의 그림자>에서 고난과 외로움으로 자신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에게 그림자가 솟는다. 루이즈는 짙고 커다란 그림자를 세우고 다니는 인물인 것 같다. 그림자가 자신보다 더 커지고 짙어지는 순간 이들은 자기 그림자에 홀려 따라가거나 심지어 먹히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죽음이다.
만약 루이즈에게 <百의 그림자>의 두 주인공 은교와 무재처럼 그들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연대할 수 있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만약에 루이즈가 새 남자 친구를 조금 더 일찍 만날 수 있었더라면. 그녀가 목숨을 걸고 붙들려했던 달콤한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