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맨만큼 내 땅이다
내 나이 스물다섯. 이 때부터 진짜 “나의 일”에 대한 탐색이 시작되었다.
조금 헤매더라도 올바른 방향을 찾아. 제대로 나의 업을 찾기로 했다.
(1편을 보고 와주세요!)
•
•
나는 취준에 집중하는 대신, 내면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였고, 치열하게 진로를 고민했다.
그렇게 첫번째로 선택한 것은 의사였다.
약간 뜬금없을 수 있는데 사실 난 의료봉사에도 뜻이 있던 사람이었다.
거기에 더해 내가 주체가 될 수 있는 일이자, 의미있는 일, 돈도 충분히 벌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의대부터 시작이지만, 외국에서는 의학전문대학원부터 본격 시작이 가능했다.
상담을 받아보니, 나는 5년 MD과정을 밟아 미국에서 인턴 후, 면허를 취득하면 된다고 했다.
바로 유학원을 등록하고, 차근차근 고등학교/대학교 성적, 교수님 추천서, 아이엘츠 점수 등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
그러던 와중에 얼떨결에 취업 합격 전화를 받게되었다.
나에겐 아이엘츠 전 과목 7.0이라는 점수가 넘어야 할 제일 큰 산이었기에 제대로 영어 공부를 하려고 호주 어학원까지 등록해놨었는데,,,
지난 취준의 노력들이 스쳐갔고, 돈도 벌어야 했기에 결국 호주행이 아닌 입사를 선택했다.
원하던 회사는 아니었지만, 나름 대기업 계열이었고, 무엇보다 합격 소식에 기뻐하시는 엄마아빠를 보니 효도한 것 같아 좋았다.
나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퇴근 후에 공부하고, 학원을 다니며 꾸준히 의대를 준비했다.
유학원에서 하라는 것들을 준비하면서 아이엘츠 시험도 여러번 봤다.
근데 리딩, 리스닝, 스피킹, 라이팅 중 매번 스피킹과 라이팅에서 점수가 안나왔다.
1년을 준비했고 간절했지만, 진이 빠졌다.
결국 미룬다는 말로 의대 준비는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
•
그렇다고 회사원으로 살순 없었다.
사람들도 좋고 워라밸도 보장되어 안정적이었지만,
이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나는 매일 9시부터 6시까지 사무실에 의무적으로 앉아, 평생 회사와 임원이 주체가 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대표님의 KPI를 채우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
신입 시절 선임에게 들었던 그 말이 엄청난 충격이었다.
넥스트를 다시 찾아야했다.
그렇게 두번째로 선택한 것은 외항사 승무원이었다.
자유에 대한 갈망과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냅다 지원서를 넣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비행기 타는걸 좋아하니 잘맞을 것 같았다.
너무 신기하게도 지원서와 화상과제를 통과해 호텔에서 최종면접까지 보게되었다.
바로 오전 반차를 쓰고, 짧은 기간동안 나름 열심히 준비했다.
어설픈 실력으로 승무원 머리를 하고, 면접장에 도착했다.
순서대로 암리치를 측정하고, 서류를 낸 뒤, 대기했다.
사실 내 키는 158cm로, 최소 키조건에 해당했는데 다행히 암리치는 문제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1차 면접은 영어 단체 면접이었는데 10명 정도의 한 팀이 한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다행히 팀 분위기가 좋았고, 다같이 적극적으로 소통한 결과, 우리 팀 전원이 통과할 수 있었다.
2차 면접은 1:1 영어 면접이었는데 아무래도 부족한게 보였는지 최종합격까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첫 지원에 이정도로 해내다니 뿌듯했다.
회사로 돌아와서 호다닥 머리를 풀고, 옷을 갈아입었던게 웃픈 해프닝으로 아직도 생각난다.
•
•
그 와중에 나는 사내연애도 하게 됐다.
처음에는 나와 너무 비슷해서 신기한 사람이었는데, 알면 알수록 더 진국인 남자였다.
말보다 행동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를 해도 우직하게 꾸준히 하는 사람이었다.
여행 스타일과 화법, 성격 전부 나랑 신기할정도로 너무 잘맞았다.
사람으로서도, 남자로서도 딱 내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우린 같이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번은 괌 여행을 같이 갔다.
4일 내내 너무 좋아서 우리 꼭 여행하며 살자 다짐했고,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어떤 일을 하며 살지, 이번엔 함께 넥스트를 고민했다.
열심히 탐색하다가, 자동화 개념과 공간사업을 접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우리 둘 다 사업에 대한 꿈이 있었고, 뭐든 일단 해보자며 우린 공간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세번째로 선택한 것이 파티룸 사업이었다.
•
•
인테리어보단 기획/운영/마케팅 쪽에 강점이 있는 우리는, 매물을 인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우리 둘은 회사가 끝나면 손을 꼭잡고 임장을 다녔다.
이것도 나름 데이트라고, 함께하니 즐거웠다.
그러다, 하루는 연신내에 있는 일본풍 파티룸을 보러 가게 되었다.
월세와 컨셉이 너무 매력적인 파티룸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상권이라 고민했지만,
이 파티룸만이 가진 매력에 끌려 결국 우리의 첫 파티룸으로 계약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예약이 거의 안들어왔다.
그래서 더욱 예약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했다.
예약이 들어오면 우리 둘은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다.
꾸준히 할 수 있는 것들을 개선하며 운영하다보니, 노하우도 생기고, 예약도 슬슬 늘어갔다.
우리가 시도하는만큼 결과물이 나온다는게 너무 재밌었다.
무엇보다, 손님들이 너무 좋았다며 남겨주신 리뷰와 방명록을 보면 내가 더 기쁘고, 보람찼다.
이건 분명 “나의 일”이었다. 택배보다 설레는 일이 왜 존재할 수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하나씩 쌓아가다보니 어느새 상위노출 1등이 되었고,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나는 사업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어느새 고등학생 때 처음 제대로 꾼 사업가의 꿈을 이뤄가고 있었다.
•
•
그러나, 아직은 부업 수준이었다.
퇴사를 하고, 사업을 본업으로 하려면 여러 파이프라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네번째로 선택한 것이 쿠팡 로켓그로스 사업이었다.
열심히 유튜브 강의를 듣고 따라해 쿠팡 입점도 했다.
시즌에 따라 방수팩, 모자, 셔츠 등을 소싱하고, 상세페이지를 만들어 등록했다.
그리고, 도매측에서 배송이 오면 스티커를 붙여 쿠팡 물류센터에 보냈다.
광고까지 붙이니 실제로 잘팔렸다.
너무 신기했지만, 하다보니 오래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이건 “나의 일”이 아니었다.
스티커를 붙이거나, 포장을 해서 택배를 보내는 등 반복적인 일에 시간을 써야했고,
그러면서도 결국 남의 것을 팔아주는 일이었기에.
게다가, 창고가 없이는 사업을 확장하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세일즈와 유통을 제대로 경험해볼 수 있었고, 브랜딩의 중요성도 깨달았으니.
•
•
2025년 새해가 밝았고, 28살이 되었다.
우리는 넥스트로 공간사업을 확장하기로 했다.
숙박쪽으로 확장해보고 싶어 에어비앤비 매물을 열심히 찾아다녔으나,
너무 인기가 많다보니, 자료를 만들어 부동산에 돌려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결국, 우린 우리가 잘할 수 있는 파티룸을 확장하기로 했다.
그렇게 2월에 하나, 6월에 하나 총 3개까지 확장했다.
혼자였으면 어려웠을 것 같다.
변기 막히는건 약과고, 한밤중에 화장실 열쇠를 부수거나, 벽을 부수는 손님도 있었으니,,
CS뿐만 아니라, 물이 새거나 천장 페인트가 벗겨지는 등 보수가 필요한 일도 꽤 생겼다.
그럴때마다 우리는 유튜브의 힘을 빌려 하나씩 해결해나갔다.
시멘트도 발라보고, 퍼티도 채워보고, 페인트도 칠해보고,,,
CS도, 보수도 함께하니 어렵지 않았다.
일처리에 있어서도, 각자 잘하는 것이 달라 시너지를 내며 일을 할 수 있었다.
오빠는 계약, 협상, 가격, 세금 등 이성적인 일처리를 잘했고,
나는 디자인, 매뉴얼, 고객응대 등 섬세하고, 꼼꼼한 일처리를 잘했다.
함께할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했다.
•
•
공간사업 외에는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왔다.
“나의 일“을 하려면 콘텐츠를 통한 개인 브랜딩이 필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매주 영상을 만들고, 글을 쓰고 있다.
유튜브에는 나의 도전을 담은 영상을 올리고, 인스타에는 여행 릴스를 올린다.
스레드에는 가벼운 글을, 브런치에는 쓰고 싶었던 긴 글을 쓴다.
모든게 누적되어 나의 기록이 된다.
사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꾸준히만 하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콘텐츠는 성장하는 맛이 있다.
꾸준히 업로드하고, 개선하다보면 어느새 성과가 따라온다.
협찬 요청도 들어오고, 조회수와 구독자/팔로워수가 느는게 숫자로 보이니 더욱 열심히 하게된다.
참고로, 오빠는 맛집 콘텐츠를 나보다 앞서 꾸준히 올려왔는데 요새는 파티에도 초청받는다.
이렇게 콘텐츠는 정말 많은 기회를 열어준다.
아, 콘텐츠를 운영하는 것은 사업에도 큰 도움이 됐다.
콘텐츠 경험이 감각이 되어 계정 운영과 광고 마케팅이 수월해졌다.
덕분에 돈을 쓰지 않고도 우리가 직접 마케팅을 돌릴 수 있었다.
•
•
그리고, 현재.
나는 퇴사를 앞두고 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못할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 후를 위해 지금까지 사업 베이스를 만들어두었고, 하고 싶은 일을 계획해두었다.
앞으로는 디지털 노마드로 살며, 공간사업 / 세일즈사업 / 콘텐츠 총 3가지를 제대로 하는게 목표다.
공간사업은 파티룸 3개를 운영하면서 숙박쪽으로 확장해보려고 한다. 우리 공간에서의 모임/파티도 기획 중이다.
세일즈사업은 천천히 구상하고 시도해보려 한다. 굳건한 우리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콘텐츠는 유튜브를 집중해서 해보려고 한다. 수익화 후, 10만 이상으로 키우는 것이 1차 목표이다.
위 세가지 하고 싶은 나의 일을 하며, 세계에서 여행하듯 살아보고 싶다.
물론 오빠랑 함께 !
•
•
늘 인생은 계획대로 안됐던거 같다. 근데 그 이상의 재밌는 일이 자꾸 생겼다. 계속 발버둥이라도 쳐서 그런가.
말만하는 사람은 절대 되지 말아야지 다짐한 것이 완벽주의 게으름뱅이를 행동하게 했다.
이것저것 해보니 알겠다.
하면 된다. 하고나면 전부 별거아니다.
할 수 있다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대충 엉망으로 시작해도, 완벽해지면 된다.
나는 일 외에도 하고 싶은게 아직 너무 많다.
기왕 사는거 다-해보고, 끝장나게 멋있게 살고 싶다.
그렇게 아침에 설레서 눈이 떠지는 삶을 살고 싶다.
이 세상 어딘가, 작은 사람 하나가 열심히 재밌게 살아가고 있음을 읽고,
누군가 작은 용기를 얻으면 난 그걸로 됐다!
행복하자!
•
•
아- 지금의 기록이 얼마나 귀한가.
10년 뒤의 내가 10년 전 꿈꾸는 나의 기록을 보았을 때, 크게 미소짓길 바라며.
앞으로는 하나씩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봐야지.
그리고, 25년 11월의 나.
아직 퇴사는 안했다.
퇴사는 아마 26년 초가 될 것 같다.
이것도 사연이 있다,, 나중에 들려주겠다,,
공간사업의 경우, 파티룸 3개는 여전히 잘 운영 중이다.
연말 성수기가 다가오고 있어 진짜 고민 많이하고 열심히 준비했다.
벌써 예약도 잘 차고 있어서 기분이 좋은 요즘이다.
그리고 새로운 꿈이 생겼다.
숙박업쪽으로 쭉 확장해나가는 것이다!
최근에 에어비앤비 매물을 1개 계약했고, 앞으로 운영해보면서 차근차근 늘려갈 예정이다.
앞으로는 호스텔에 이어 호텔까지 쭉쭉 성장해보고 싶다. (설렘)
아직은 매물찾기도 어렵고, 모르는 것도 많지만,,
매일 꾸준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
무작정 연락해 멘토도 만들고, 모임을 나가는 등 환경도 바꿔보려 하고 있다.
꾸준히 하면 작은 기회라도 찾아오는 것같다.
26년엔 꼭 호스텔 해야쥐!
아, 그리고 부동산 경매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무료 강의랑 책보면서 공부하고, 매일 물건분석도 해보고 있지만,,
아직 실전은 약간 무섭다ㅎ
최근에 좀 합리적인 가격의 스터디를 찾아서 다음 기수 공고를 기다리고 있다.
제대로 배워서 26년엔 꼭 낙찰 (많이) 받아야쥐!
콘텐츠의 경우, 유튜브는 잠시 쉬고 있다.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도 하고, 뭘 만들어야 할지 고민을 좀 더 해보는 중이다.
나머지는 꾸준히만 하려고 노력 중.
그러다 보면 삘받아서 재밌을 때가 있고, 성과도 따라올 때가 있다.
그 때 빠짝하고, 나머지 때는 꾸준히만 하는거다.
확실히 이 일들이 회사에서 하는 일보다 훨씬 재밌다.
몸은 좀 피곤해도 눈만큼은 반짝인다.
그냥 막 자발적으로 뭘 자꾸 하게된다.
크게 꿈꾸고, 일단 실행하자!
물음표말고, 느낌표만 딱 던지자!
앞으로 공간/숙박/부동산 전문가가 될 때까지 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