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안평범하고싶은 28살의 인생 회고록 1

터널을 지나야 비로소 보인다

by Jenna

회사 생활 어느덧 3년차, 젊음의 한가운데서 나를 돌아보았다.

초중고-대학-취준-회사-??

아, 넥스트가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루트대로 살아왔던 것 같다.

크게 구별되지도, 튀지도 않게 남들처럼 흘러갔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 엄마 밑에서 엄마의 자랑스러운 맏딸이 되기 위해 늘 열심히 살았다.

뭐 늘 훌륭했던 것은 아니지만, 크게 기대를 저버린 적은 없었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늘 안정적인 교사가 되라고 하셨다.


근데 사실 나는 그런 사람이 못된다.

그 어릴 때부터 그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는 항상 꿈이 많았다.


초등학생 때는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당시 반기문 총장님을 보고 눈이 반짝 빛났었다.

중학생 때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다. 나름 볼펜물고 연습도 열심히 했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 첫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무려 200가지의 꿈을 적어냈다.


고등학생 때부터는 한 책을 보고 본격적으로 CEO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아, 저거다 싶었다.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업가가 되고 싶었다.


그 때, 꿈은 동사로 꿔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이후로 내 꿈은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CEO가 되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나름 경영경제 동아리도 만들고, 대회란 대회는 다 나가서 상장을 수집했다.

열심히 활동하고, 공부해서 생기부를 채운 결과, 감사하게도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한양대 경영학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성인이 되고, 처음 맛보는 자유에 대학생활은 완전히 신세계였다.

모든 순간, 내가 선택의 주체라는 점이 아주 맘에 들었다.


다만, 창업에 대한 나의 꿈은 막연했고,

대부분의 경영학과 학생들이 그렇듯, 난 당장 할 수 있는 공부와 활동으로 스펙을 쌓아갔다.


그 와중에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도전에 대한 갈망이 극에 달하는 순간들.

아무래도 남들과 똑같이 사는건 적성에 안맞는지 루트대로 살다가도 한번씩 방향을 틀고 싶어졌다.


그렇게 첫번째 도전으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가게 되었다.


어학연수를 겸했기 때문에 매일 학교를 다니며, 서버 잡을 구해 일했다.

영어를 쓸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영어 실력은 자연스럽게 늘었고, 스시집 악덕 사장 밑에서 일했지만, 나름 배운 것도 많았다.


무엇보다 친구들과 캐나다의 대자연, 산과 바다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너무 행복했다.

그렇게 영어, 경험, 여행 3가지 목표한 바의 이상을 얻고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경영 전략 학회에 들어갔다.

매번 프로젝트 때마다 밤을 새는게 당연했던 곳.

나는 나를 갈아넣으면서 전략적 사고부터 PPT 실력까지 전반적으로 미친듯이 성장했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열심히 하다보니 어느새 4학년, 취준 시기가 찾아왔다.

다들 그렇듯, 나도 자연스럽게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사실 취준을 꽤 오래했다. 약 1년 반 정도.

학회, 인턴 등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탈락을 거듭하니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나의 노력들이 부정당하는 느낌과 쓸모가 없어진 기분이 나를 삼켰다.

게다가, 인생 처음으로 아픈 이별까지 겪었다.


이 기간동안, 많이 슬펐고, 많이 우울했다.

할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눈물이 나고, 무기력했다.

조용히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다.

근데 코로나 시기가 겹쳐 여행도 쉽게 떠날 수 없었다.

그래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여러번 돌려보며 괜한 만족감을 얻었다.


그 와중에 소소한 행복을 찾아 나를 위로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낮에는 일부러 예쁜 카페를 찾아가 좋아하는 라떼를 마시며 할일을 했다.

깊은 밤에는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쏟아내러 대공원을 돌았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에세이를 읽으며 위로를 얻었다.



점차 우울감은 나아졌다.

그러나, 매 시즌 똑같은 자소서, 인적성, 면접 준비를 반복하다보니 다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20대의 황금같은 내 시간이 의미 없이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성취가 너무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버킷리스트를 꺼내 두번째 도전, 나홀로 국토대장정을 떠났다.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18박 19일을 걸으며 나는 나와 가장 가까이 마주할 수 있었다.

아- 나는 나를 너무 나무란게 아닐까?

나는 뭘 좋아하지? 맞아, 나 이렇게 꿈이 많았지?

나에게 질문을 건넨 그 모든 순간이 위로였다.


땡볕에 땀이 범벅이 되고, 온 발에 물집이 잡히고, 아킬레스건이 너무 아파 신발을 눌러신고 다녔어도 행복했다.

그렇게 555km의 느린 여행은 내게 고스란히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되어주었고, 결국 나는 다시 단단해졌다.



다녀와서 달라진건 크게 없었다.

다만, 앞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나이 스물다섯. 이 때부터 진짜 “나의 일”에 대한 탐색이 시작되었다.

조금 헤매더라도 올바른 방향을 찾아. 제대로 나의 업을 찾기로 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