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다시 일어나 도전
정말 푹-자고 일어났다.
할머니께선 일찍 출근하는 이모의 아침밥을 차려주시고, 이번엔 내 아침밥을 차려주셨다.
역시 할머니 밥상은 익숙하고도 든든하다. 맛있게 먹고, 다시 출발할 준비를 했다.
덕소에서 양평까지 가야하므로, 걷기에 거리가 적당하고 후기도 괜찮은 양평 숙소를 잡아두었다.
까진 곳에 밴드를 붙이고, 발가락 하나하나 테이핑도 했다.
걸을 준비 완료 후,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 나 다녀올게! 다녀와서 맛있는거 또 먹자!"
우리 가족부터 할머니까지 모두 재출발을 말렸지만, 꿋꿋이 일어나 다시 길을 나섰다.
짐을 많이 줄여놔서 그런지 훨씬 발걸음이 가벼웠다. 날씨도 적당히 흐려 너무 덥지 않아 걷기에 딱이었다. 게다가, 덕소-양평 구간은 길이 걷기 좋게 잘 나있었다.
시작하기 딱 좋은 날, 아르기닌 하나 마시고 한강길에서부터 시작해 쭉 걷기 시작했다.
(아르기닌은 매우 시니 꼭 마이쮸같이 달달한 것과 함께 먹을 것,,,)
난 사실 혼자놀기 달인이라 열심히 걸으면서도 심심할 틈이 없었다.
걸을 땐, 좋아하는 노래를 듣거나, 노래가 질리면 미드나 유튜브 강의를 찾아 들었다. 중간중간 쉬면서는 마사지하고, 사진찍고, 자연 풍경을 마음껏 바라봤다.
걸을 때 듣는건 무엇이든 흡수력이 굉장히 강하다는걸 알고난 이후로는 강의를 주로 찾아들었던 것 같다.
특히, 저 말이 공감이 가서 계속 되뇌었다. 내 두 발로 걷는 모든 순간이 철학적 사유 과정이구나!
팔당댐에 도착했을 때, 시원한 물줄기를 보고는 옛 추억을 떠올렸다.
그 땐 가족이랑 차타고 이 곳에 왔었는데,, 이제 내가 직접 걸어서 오다니. 새삼 스스로 뿌듯해 잠시 앉아 쉬며 쉼없는 댐을 바라보았다.
다시 걸어 점심시간. 걸으면 쉽게 배고프기 때문에 배를 채워주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마침 핫한(?) 맛집, 돌미나리집이 눈앞에 보였다. 라이더들에게 유명한 맛집인지 평일임에도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안으로 들어가 오천원짜리 잔치국수를 시켰다. 가격도 양도 훌륭한 잔치국수는 맛까지 훌륭했고, 나는 후루룩 한 그릇을 금세 비웠다.
먹고 나오니, 날씨가 훨씬 밝고, 맑아졌다.
거기에 배도 찼겠다, 걷는 이 순간이 너무 좋아 행복하게 걸었다.
북한강을 건널 땐, 한 라이더분께 응원의 말도 들었다.
기분 좋게 내내 예쁜 꽃과 풀이 가득한 길을 걸었다.
덕소에서 양평은 라이더와 조깅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길이 아주 잘 조성되어 있었다.
중간중간 양심 의료박스도 있어서 신기했다. 밴드나, 다치면 쓸 수 있는 의료용품들이 있었는데 양심껏 가져가서 쓰는 시스템이었다.
제일 놀랐던 점은 보행자용 터널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만 다닐 수 있는 터널이라니!
터널은 낮인데도 꽤나 어두워서, 긴장한 채 챙겨간 라이트를 켜고 걸었는데, 익숙해지니 오히려 터널이 시원하고 좋았다.
열심히 걸어서 드디어 목적지인 모텔같은(?) 호텔에 도착했다.
(국토종주 초반에는 게스트하우스가 거의 없어서 대부분 후기 좋은 모텔에 쿠폰을 먹여서 많이 이용했다.)
다리가 너무 아프긴했지만, 첫날에 비하면 견딜만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샤워를 하고, 땀이 범벅이 된 옷을 바로 빨았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빠르게 마르길 바라며 방 안 곳곳에 옷을 널어두었다.
그러고 나니 배가 너무 고파서 숙소 5분 거리에 그나마 제일 괜찮아보이는 콩나물 국밥집으로 찾아갔다.
한참 우영우 드라마가 유행할 때였는데 나 역시 우영우에 푹 빠져있었다. 우영우를 틀어두고, 콩나물 국밥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점심에 국수만 먹고, 하루 종일 걸어서 그런지, 밥이 술술 잘 넘어갔다. 역시 한국인에겐 밥만한 것이 없다.
믹스커피를 뽑아와 달달하게 입가심하며 슬렁슬렁 돌아가던 중이었다.
순간 내 앞으로 아름다운 일몰이 쫙 펼쳐졌다.
평소에 일몰에 그렇게 감동받을 순간이 있었던가? 종일 걸으며 생각을 비우니 그 작은 순간조차 내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일몰과 잘어울리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ost, Love me like you do를 반복해서 들었다.
너어무 행복했다. 선선한 바람과 가벼운 몸까지 완벽한 순간이었다.
3일차, 걸으니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하던 모든 사소하고도 일상적인 순간들을 감사하고, 사랑하게 된다는걸 깨달았다.
이게 좋아서 걷기에 중독되나보다.
내일이 진심으로 기대되기 시작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