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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냅다 국토대장정: 양평-여주

4일차. 폭염에 열사병 위기가 찾아오다

by Jenna

아침에 테이핑을 하고, 출발 준비를 마쳤다. 창밖을 보니 햇살이 쨍쨍하니 약간 흐렸던 어제와는 달랐다.

다 마르지 않은 옷가지들은 걸으면서 햇살에 말릴 생각으로 그냥 가방에 챙겼다.

오늘은 양평에서 여주까지 걷는 날, 역시나 힘차게 출발했다.

날씨가 쨍쨍하고, 맑으니 괜히 기분도 좋고, 나무 그늘이 있는 길을 걸으니 바람 살랑 불어 행복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걷다 보니 나무 하나 없는 아스팔트 도로가 나와버렸다.


폭염에 밖에 나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그런 날씨였는데 아스팔트의 열기가 더해져 위아래로 찜 쪄지는 기분이었다.

악마의 구간에 지쳐버린,,,

악마의 구간을 지나니 이번엔 경사가 꽤 심한 산길이 나왔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버스를 타보려고 했지만, 산길이라 그런지 사람도, 버스도 지나가지 않았다.


아직 낮이므로 포기하긴 이르다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미처 다 말리지 못했던 옷들도 꺼내서 어깨에 메고 걸었다.

오르다 보니 작은 매점을 발견했다..!

'아니, 이런 곳에 왜 매점이 있지?' 생각도 잠시, 탈진 직전 수분 보충이 필요했던 나는 매점에서 음료수를 하나 샀다.


빨갛게 익은 내 얼굴을 보셨는지, 매점 아주머니께서는 아침에 직접 딴거라며, 오이를 하나 건네주셨다.

오이를 건네주시는 것만으로 왜 그렇게 큰 힘이 되었던지,, 매점 아주머니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나와 시원한 탄산음료를 쭉 들이켰다.

'하- 시원하다!!!!' 그리고, 오이 한 입을 베어 물었는데 지금까지 먹어본 오이 중에 제일 맛있었다.

산길을 걷는 내내, 오이를 아껴 먹어가며 뜨거운 햇빛을 견뎌낸 결과, 한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슬슬 도보가 보인다는 건, 마을이 있다는 것,,!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나,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도로가 시끄러워 옆을 보니, 군인들이 올라탄 탱크가 줄지어 달리고 있었다,,

열창하던 내 모습을 봤을거란 생각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민망해서 괜히 정상인인척(?) 얌전히 앞만 보고 걸었다.

햇빛에 오래 노출되어 있다보니, 이젠 약간 어지러울 정도로 탈수 증세가 나타났다.

당장 시원한 곳에서 쉬어줘야 할 것 같아 마침 딱 보이는 중국집에 들어갔다.


짬뽕을 시키고, 물 한 잔이 아닌 한 병을 쭉쭉 들이켰다.

짬뽕 한 그릇을 시원하게 비우고, 선풍기 바람에 땀을 말리며 편히 앉아 쉬다 보니 어지럼증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더위가 좀 식었다 생각이 들때쯤, 편의점에 가서 얼음물을 사서 다시 출발했다.

여전히 해는 쨍쨍했지만, 시간을 더 지체할수는 없었기에 열심히 걷고, 쉬고, 물집을 치료하기를 반복했다.

산길에서는 날파리가, 찻길에서는 아스팔트의 열기가 공격을 해왔다.

얼굴까지 완전 무장 !

여주시를 지나 얼마나 더 걸었을까,,

나는 진짜로 열사병에 걸릴 것 같아 결국 버스를 선택했다. 국토종주 중 첫 버스였다.

그래도 나의 느린 여행에서는 건강하게, 오래, 행복하게 걷는 것이 중요하니까 유연하게 선택하기로 했다.


서울에서는 버스 정보를 전부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버스가 언제올지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었다.

불편해도 직접 정류장에 가서 확인하는 방법뿐,, 다행히 정류장에서 조금 기다리니 시내버스가 왔고, 타자마자 기절해서 잤다..

잠시 잔 것뿐인데 열사병 기운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개운했다.

숙소 부근에서 내려 국토종주하는 분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오늘의 숙소로 향했다.

겉보기엔 매우 허름한 모텔이었지만, 매우 깔끔한 방에 욕조까지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소리질러 환호했다.


오늘 저녁엔 반신욕의 여유를 즐겨야지 생각하며, 빠르게 샤워와 빨래를 마친 후, 저녁을 먹으러 여주 시내로 향했다.

시장에 가서 로컬 맛집가봐야지 했지만,,, 아무래도 고단한터라 프랜차이즈의 아는 맛이 더 땡겼다. 결국 그 중에 가장 땡기는 맘스터치를 사서 숙소가서 먹기로 결정.


돌아오는 길에 전 날보다 훨씬 아름답고 황홀한 일몰을 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배고픔에 못이겨 숙소로 돌아갔다.

우영우를 보며 시원한 맥주와 맘스터치를 먹었다. 게다가 반신욕까지 딱 해주니 오늘의 모든 피로가 싹 풀렸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 알게된 것이 있다.

걸으면 평소에 풍경으로 지나치는 것들, 빨라서 볼 수 없는 것들, 사소한 것들이 전부 보이니 아름답다는걸. 비록 탈진할 것 같이 힘들게 걸었던 하루였지만, 오늘도 정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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