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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서가 Sep 05. 2024

소형 아파트 10채 주인이라고요?

[경알못 엄마의 돈공부 여정기]



2007년, 소형아파트 10채 집 주인이 되었다.


"나랑 결혼해 줘"

흔한 프러포즈대신 당시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은 30평대 아파트 분양 계약서를 내밀었다. 빚진 1억 때문에 요새 잠을 못 잔다는 둥, 통장 합쳐 둘이 빚 갚는 게 가장 빠른 재테크 방법이라는 말을 데이트 내내 했다.


새뇌가 된 걸까?

내가 빌린 돈도 아닌데 얼른 함께 갚아야 할  같았다.



2005년, 우리는 직장 동료에서 부부가 되었다.

19년 전 당시 내 월급은 100만 원 초반으로 대기업에 입사해 1년 갓 지났을 다. 대학 학비도 손수 마련할 정도로 우리 집은 흙수저였다. 결혼 자금도 누구에게 손 벌릴 처지가 못됐다. 부모에게 받을 형편 안 되는 건 남편도 마찬가지. 그해 회사에서 특별 보너스가 나온 덕에 우리는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결혼 할 수 있었고, 우리 시작은 분양 아파트 대출 빚과 함께였다.


신혼을 즐기려는 계획은 허니문 베이비인 첫째로 무산됐다. 들쑥 날쑥한 퇴근 시간과 빚 갚기위해 아등바등 사는 큰 아들이 안쓰러웠는지 시댁에서 아이를 키워주셨다.  


매월 21일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면 10만 원 남짓 남기고 대출이자와 세 식구 생계를 위해 남편에게 전부 이체했다. 아무리 스치고 지나는 월급이라지만, 손에 쥐어보지도 못하니 일할 맛이 뚝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매주 금요일이면 퇴근 후 부랴 부랴 아이 보러 서울로 올라가는 생활을 3년 했다. 주말 동안 아이와 대공원이나 아울렛으로 다니고 주말 오후 지친 몸으로 천안으로 내려왔다.정적이 흐르는 차 안. 피곤과 우울의 끝이 보이지 않는 듯 했다.






"형! 소형아파트 투자해 볼 생각 없어요? 괜찮은 물건 있는데"


큰 아이 돌 무렵, 직장 지인이소형아파트 투자 제안을 다. 그는 독학으로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득해 퇴사를 앞두고 있었다. 제안한 곳은 천안에서 멀지 않은 충남의 작은 시내 15평 소형 아파트. 단, 조건이 있었다.

단독 매입은 불가, 10채로 구입할 것!



"이제 곧 원금 분할 납부도 해야 하는데... 괜찮을까?"

이미 분양아파트 빚진 돈만으로도 부담이 컸던 상황에 대출을 감행하려니 두려웠다. 물가 상승으로 부동산 가치도 오른 다는 걸 경제에 무지한 우리는 알지 못했다.



무리한 투자를 하는 게 맞을까?

지나고 나서 후회하면 어떡하지?


우리 형편에 더 이상의 빚은 무리였다. 현재 짊어진 짐을 줄이는 게 맞다고 다. 안 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을 때, 몇몇 사람들이 투자를 결정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지금 이게 기회면 어떡하지?!' 주위에서 투자에  뛰어들었다는 소리를 들으니 우리만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닌지 불안했다.


물건지 보고 결정하자! 마음을 바꿔 지인에게 자세한 위치를 물어 아파트로 향했다. 안하더라도 보고나서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좁은 도로 양쪽으로 포도밭이 드 넓게 펼쳐져 있고, 옛 읍내를 연상케 하는 작은 상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작은 시내가 있었다. 전형적인 한적한 시골마을로 아파트 따윈 없을 것 같은 동네였다. 조금 더 가니 큰 공장들이 꽤 많이 보였다.



"잠시 후 좌회전입니다."

내비게이션이 도착을 알렸다. 아파트 팻말만 보일 뿐 도로에서 건물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

눈으로 확인하러 오길 잘했다며 투자할 곳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리려는 순간, 눈앞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펼쳐지는 게 아닌가! 분명, 도로에선 보이지 않았는데 단지수 많고 넓었다. 아늑하고 정겨운 이미지까지 풍겼다. 근처 부동산에 들려 아파트에 대해 물의니 근처 공장들이 많아 기숙사로 쓴다고 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 노후자금이 될지 모르니 해보자!"


고민하는 남편에게 나는 자고 했다. 젊은데 뭐가 걱정이냐고. 해보고 안되면 중도에 넘기자고. 그때까지 투자한 우리 돈은 남으니 이렇게 모으나 저렇게 모으나 모이는 건 매 한 가지라고.


그렇게 우리는 10채의 소형 아파트의 주인이 되었다. 당시 가지고 있던 빚에 추가 대출까지.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했다. 5만 원, 7만 원. 10만 원도 안 되는 용돈으로 한 달을  버텨야 했다. 가계부는 쓸 필요도 없었다. 용돈 5만원은 아낄 것도 없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 어떻게 살았는지 다시 돌아가면 할 자신이 없자. 역시, 젊음은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


'보일러가 안되요, 벽지 바꿔주세요, 수도가 이상해요.'

낡은 아파트라 세입자로부터 전화가 잦았다. 남편과 둘이 인테리어 비용을 줄이기 위해 근처 놀이터에 아이들 놀게 한 후 친환경 페인트 칠 하고, 손잡이를 새것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반짝반짝 작은 광이라도 내기 위해 화장실, 주방을 쓸고 닦고, 방충망을 먼지를 털어냈다.


10채질 보다 양이었다.

경제 공부가 뒷 받침 되지 않은 상황 '10'이라는 숫자는 자만심을 안겼다. 아파트 매입과 동시에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여태 아쉽다. '똘똘한 한채'라는 말이있다. 10채는 한채만도 못했는데 양에 눈은 멀고, 마음엔 허영으로 가득했다. 


17년 보내는 사이 조금씩 처분해 4채를 가지고 있다 최근 한 채가 더 팔렸다. 똘똘하지 못한 집이라도 이 악물고 버틴 결과인지, 중년에 작은 보탬은 된다.


단돈 5만 원으로 한 달을 살아내야 했던 그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말이 힘이 됐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시간이다. 오늘은 내일의 어제이며, 내년은 올해의 연장선상에 있다. 50대의 나에게도 지금이 가장 젊은 때다. 미래를 위해 오늘 열정을 쏟고, 후회 없이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된다.


17년을 통해 내가 얻은 건, 지금 이 순간이 우리에게 가장 젊은 시간이라는 것.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경알못 엄마가 배운 3가지!

 1. 때론 미래를 위해 과감한 결정이 필요하다.

 2. 어려운 상황을 인내하고 버티니 작은 결실이라도 왔다.

 3. 지금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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