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한 페이지] 읽고, 쓰고, 사색하는 서가일상
작가 최진영의 <어떤 비밀>에 빠져있다.
어제 공항철도 타고 서울 가는 길. 커다란 캐리어들로 지하철 이 만원 일 걸 알면서도 얼른 배낭에 책 한 권 챙긴다. 내게 책은 외출 때마다 안 챙기면 핸드폰 급 불안의 대상이다.
챙겨도 볼 수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많지만,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 근처 스벅에 앉아 단 10분 틈새 독서라도 할 수 있는 날이면 웬 횡재인가 싶다.
"잠시 후 서울역 방향 지하철이 도착합니다."
스르륵 공항철도 문이 열리자 습관처럼 두리번 대며 빈자리를 찾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걱정할 만큼 지하철 내부는 텅텅 비어있었다. 잰걸음으로 자리 선점에 나설 필요도 없었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 가방 속 책을 꺼냈다. 서울역까지 50여분. 틈새 아닌 제대로 독서를 즐길 수 있었다. 머리 위 내리쬐는 봄햇살 조명 삼아 24 절기 편지를 읽어갔다. 마치 지하철 안에는 발신인 그녀와 수신인 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타인을 위한 최초의 기도
시선을 붙잡는 많은 내용 중 이 문장과 관련된 옛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2007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친한 직장동료 넷과 우리 부부까지 해서 총 여섯이 홍콩 여행을 떠났다. 홍콩도, 직장 동료들과 해외여행도 처음이었다. 여행메이트는 전제로 내 기준의 친한 동료. 즉, 친한 언니, 여동생으로 내 남편은 유일한 청일점이었다. (남편도 같은 회사였기에 다 아는 사이였다.)
직장 동료들과의 단체여행이었기에 해외에서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었다. 우리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노느라 정신없고, 남편은 책임감에 바짝 긴장상태였다. 자유여행이다 보니 이동 편 등 안내자가 필요했고, 당연히 그 몫은 남편에게 돌아갔다. 두 어깨가 무거웠을 텐데, 나는 늘 뒷전이라며 서운해하고 말다툼까지 하고 말았다. 이십 대의 나는 어쩜 그리도 미성숙했는지..
2층 버스로 홍콩 시내 투어도 하고, 빨간 트랙 타고 빅토리아 파크에서 야경도 구경했다. 배 타고 마카오로 가 인공 베네치아 운하에서 외국인이 들려주는 아리랑에 '퍼펙트'를 외치며 물개박수도 쳤다.
여행 마지막 일정은 도심 속 사원 투어였다. 다들 노란 향초 피워 곁눈질로 현지인들 따라 엉성한 자세로 소원들을 빌었다. 가족의 건강과 많은 재산과 우리의 행복을.
사원 주변으로 점집이 즐비했다. 미리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투어의 핵심은 사원보다 점이었고,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이었다. 물론, 말은 통하지 않았다. 점술사가 B5크기의 코팅지를 내미는 게 아닌가. 두 눈 감고 소원 빈 후 대나무 통에서 하나를 뽑으면 되는 것 같았다.
'음.. 무슨 소원을 빈담'
건강과 부와 행복을 빈 게 불과 10분 전이었다. 갑자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했다. 내가 아는 주위 사람들이 아프지 않기를, 나쁜 소식 없기를, 늘 행복하기를.
속으로 빌면서 깜짝 놀랐다. 내 사람들을 많이 좋아하는구나 싶어서. 기억하는 '타인을 위한 최초의 기도'는 해외의 어느 허름한 대나무 점 뽑기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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