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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ys Mar 28. 2017

공격적 돌봄이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교사*사유 1 / 감배중 윤은숙

공격적 돌봄이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남자아이들은 영웅이 되고 싶어 하고, 세상을 구하고 싶어 한다. 아이들은 영웅들이 나오는 슈퍼맨,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등등의 영화를 보면서 자기도 언젠가는 세상을 구하리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남자아이들은 항상 모험에 도전하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다소 위험한 놀이들을 많이 한다. 아들, 딸과 함께 길을 걷다 보면 이는 확연히 알 수 있다. 아들은 평범한 길도 그냥 걷지 않고 높은 곳을 올라갔다 내려왔다 한다. 


  또한 남자아이들은 지고는 못 산다. 체육대회 행사 때 학급별 대항전 경기하는 것을 보면 거의 전쟁을 치르는 것 같다. 물론 여학생들도 굉장히 열정이 많지만 남학생들은 이러한 게임에 목숨을 거는 듯하다. 그래서 남자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도 경쟁을 하고, 망토를 두르고 영웅을 흉내 내고, 악당이라도 멋있어 보이는 인물을 동일시하기 쉽다.


 ‘공격적 돌봄(aggression nurturance)’은 남성들이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방식을 말한다. 소년기의 생리적 발달 및 공감능력 발달에서 핵심 요소는 남자아이가 또래나 자신보다 어린 남자아이들을 돌봐주어야 하는 상황에서 드러나는 ‘공격적 돌봄’의 태도이다. 남자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을 놀리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하면서 성숙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다른 이들에게 적대적이고 잔인하게 비칠 수 있다. 공격적 돌봄의 대상이 되는 남자아이는 거의 모든 것을(한순간 자신의 자존감까지 포기하면서) 공격적 놀이에 참여하여 다른 남자아이들에게 존중받고 지위를 얻게 된다.(이는 여자아이들에게 자주 보이는 ‘공감적 돌봄’과는 완전히 다르다.) 남자아이들은 이를 통해 목적의식과 정체성을 발전시켜나가는 셈이다. 


  몇 년 전에 담임을 맡은 반에서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였다. A라는 남학생이 B라는 남학생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둘은 단짝이라고 불릴 정도로 매우 친한 아이들이었다. 매일 집에도 함께 가고, 학교에서도 함께 놀았다. 가해자로 지목된 A학생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우리 반 부반장 학생이었다. 피해학생 B는 성적이 하위권이지만 친구들과 사교성이 좋은 학생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B라는 남학생의 어머니가 아들의 멍자국을 보시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엄마의 추궁에 B는 A와 놀다가 생긴 멍자국이라고 얘기하였다. B학생의 어머니는 이러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님을 아시고, 단단히 화가 나서 학교에 찾아와서 A를 처벌해달라고 말씀하셨다. A학생은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된 폭력이 점점 심해지게 되었다고 얘기하였다. 이렇게 학교에서도 공격적 돌봄은 다양한 사례로 나타나게 되면서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의 학교 환경은 남자아이들을 이해하기보단 구속하고 통제하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특히 학교 폭력으로 인해 자살하거나 정신적 고통을 겪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의 몸싸움, 경쟁적인 놀이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 것이다.


  미국 펠 연구소의 톰 모텐슨 박사는 통계 연구를 통해 공립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남자아이가 정학을 당할 위험은 여자아이보다 2.5배 높고, 퇴학당할 위험은 3.35배 높다고 발표했다. 또, 남자아이가 학습장애로 진단받을 위험은 2.7배, 정서장애도 3.2배 높았다.


  미국의 학자 크리스토퍼 호프 소머스는 이에 대해 사회 환경이 남자아이들에게 특히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된 것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을 한다. 과거에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던 깃발 뺏기, 총싸움, 격렬하고 경쟁적인 놀이들은 1990년대 이후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은 여전히 그런 놀이를 원하고, 그렇게 놀면서 자라난다. 결국 남성답게 성장하는 데 필요한 프로그램을 제공받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들끼리 쉬는 시간에 격렬한 놀이를 즐기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부상이나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고, 많은 남자아이들이 자신들을 품어주지 못하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행동문제로 약물치료를 받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마이클 거리언(소년의 심리학, 2012)은 ‘남자아이를 남자로 만든다’는 말의 의미를 역설하면서, 남자아이가 자신만의 천부적인 재능을 공동체 안에서 가치 있게 발휘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하였다. 


  말을 많이 해야 하고 멀티태스킹을 해야 하는 지금의 교실은 한 번에 한 가지 학습 과제에 집중하고자 하는 남자아이의 두뇌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남자아이가 적절한 시간을 두고 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남자아이는 지금보다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학교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이나 다른 조숙한 남자아이들에 비해 원래부터 결함이 있는 것처럼 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부모와 교사들이 시도할 가장 기본이 되는 혁신 중 하나는 ‘공부하는 동안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신체 활동은 학습 사이에 ‘두뇌의 휴식’이 될 수 있다. 몸을 움직이면 두뇌는 재충전되고 다시 집중할 기회를 얻게 된다. 심지어 숙제를 하고 있는 식탁 옆의 작은 공간이나 학교에 있는 자기 책상 옆의 빈 공간에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남자아이는 두뇌의 휴식을 가질 수 있다.


  남자아이가 학교의 수업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부모와 학교가 서로 고립되어 있으면 남자아이들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학교와 가정이 남자아이의 정신과 마음을 보살피는 학습 공동체가 될 때, 남자아이들은 달라진다.


  이제 우리는 남자아이들의 이러한 외침에 응답해야 한다. 기꺼이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때로는 자상하고 엄한 아버지로서, 때로는 친근한 이웃집 삼촌으로, 때로는 인생의 길을 알려주는 지혜로운 멘토로서 그들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다 자랐을 때 그들의 부모와 그와 함께 했던 어른들을 존경하고 자신이 사랑받았기에 지금에 내가 있노라고 고백하면서 또 다른 남자아이들, 남자 청소년들을 진정한 남자로 키우는 일을 기꺼이 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감배중 윤은숙



<참고자료>

마이클 거리언, 소년의 심리학, 위고, 2012

하지현, 부모를 위한 심리학,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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