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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ys Mar 28. 2017

한국사회 교육,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나?

교사*사유 2 / 왕곡초 신혜경

한국사회 교육,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나?



한국 사회의 교육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가? 



서민 계층이 어려운 형편에도 소를 팔아 맏아들 교육에 투자하면 그 아들이 가족을 먹여 살리던 그런 민담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닌 것이다. 교육이 더는 계층 이동을 위한 사다리 역할을 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는 ‘수저 계급론’도 세습 자본주의 사회를 일컫는 말인 것이다.


사진 출처 :  NEWS 1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는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의 차이를 비롯하여 교육 출발점에서부터의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빼앗고 있다. 불평등에 대한 민감한 인식이 없으면 학교가 오히려 입시 경쟁의 트랙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공교육은 사교육과 다르게 부모의 사회 경제적 배경에 의해 좌우되는 불평등 요소를 줄이는 역할을 해야 함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경쟁에서 뒤처지는 아이들이나 입시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노력은 뒤로 한 채 오히려 배려가 필요한 아이들을 배제하고 있다. 비판적인 생각 없이 무사안일한 태도로 교육에 임하다 보면 교육이 사회의 불평등을 더 강화하고 학력이라는 자격증을 발부하는 역할을 통해 계층 간 이동을 불가능하게 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아니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교육이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되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은 신자유주의를 아무런 비판 없이 들여와 그것을 교육부문에 적용시킨 5.31 교육개혁에 의해 더욱 빠르게 고착화되었다. 교육시장화 정책으로 고등학교 평준화의 틀이 무너졌다. 또한 소수 특권층을 위한 교육정책으로 교육 양극화와 사교육 증가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사회 불평등이 갈수록 극심해지는 현실에 의해 더 이상 저소득층은 교육비에 지출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 교육 현실에서 사교육비의 차이는 자연스레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낳는다. 그리고 그러한 불평등은 직업과 소득의 불평등으로 귀결되고 부모세대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자식에게 대물림되고 있다.


이러한 교육의 왜곡된 틈을 메우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대통령을 꿈꾸는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의 저자 오찬호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9급 공무원’을 희망하는 열풍을 들여다보며 미래가 없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지적하고 있다. 과거 한국 사회는 모두가 용이 되는 경험을 했다. 단 경제적으로 말이다. 그러나 ‘잘 살아보세’ 패러다임에 갇혀 불평등 격차가 압도적으로 늘어나는 것에 대한 제어는 계속해서 유보하여 왔다. 그 대가를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9급 공무원’에 내몰리며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노력을 기울임에도 포기해야 할 것이 갈수록 늘어나는 사회는 정상적인가? 이제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개인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타고난 가정환경에 의해 사회적 지위가 정해진다면 그 사회는 병든 사회이다. 병든 사회로 인해 우리 사회에는 불행한 패자가 많다. 불행한 패자가 많으면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로 인해 그 사회의 승자 또한 트랙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침묵하게 되고 평생을 불안하게 살게 된다. 그 불안으로 인해 승자의 일상의 삶도 공동체의 가치와는 무관하게 되고 또다시 자녀의 사교육에 몰입하게 되고 사교육이 증가하다 보면 우리 사회의 지적 수준은 떨어지게 된다. 그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의 사고 수준의 저하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사회 구조적 문제에 정당한 저항을 하려면 개념적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폴 윌리스의 「학교와 계급 재생산」 연구 결과를 보면 어차피 노동계급이 될 자신들의 현실을 간파하고 학교의 공식 문화를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행동 양식을 만든 “싸나이들”은 자신들이 말 잘 듣는 소위 범생이라고 비난한 ‘귓구멍이들’에 비해 오히려 자본주의 지배체제를 재생산하는 삶을 살아가는 확률이 더 높았다. 학교 문화에 저항한 아이들은 커서 저항적인 사회운동가가 되기보다 음주, 마초, 스포츠 문화에 젖어든 채 사회의 체제에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그들이 학교문화에 순응한다고 조롱했던 ‘귓구멍이들’에게서 노동운동가들이 더 많이 배출되었다. 이 연구 결과는 진정한 저항의식에는 사회구조를 주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개념적 사고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체계적 학습이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시민들이 연대가 가능하도록 즉 깨어있는 시민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저소득층 자녀들의 학교 중도탈락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사회는 이런 학교 밖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를 통하여 좀 더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부분에서의 지원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 상대적인 부의 차이는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부의 격차에 있다. 경제를 시장에만 맡기지 말고 정부가 공정한 분배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좋은 사회는 평범하게 살아도 인간적인 것을 포기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사회 안전망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사회안전망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은 어떤 직업을 가져도 가난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즉 최소한의 자신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 급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사회안전망을 통해 귀한 직업은 존재해도 천한 직업은 존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9급 공무원’이 아닌 다양한 직업에 도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삶이 가능해지고 다양성이 보장되면 필연적으로 의견이 많아지고 우리 사회의 관용 지수는 자연스럽게 높아지게 될 것이다. 관용 지수가 높아지면 우리 사회는 ‘각자도생’에서 벗어나 행복한 연대와 협력이 가능해질 것이다.


왕곡초 신혜경


<참고자료>

진보교육연구소 비고츠키교육학실천연구모임,  관계의 교육학 비고츠키,  살림터, 2015.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오찬호, 위즈덤하우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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