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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ys Jun 01. 2017

추락하는 달걀에는 날개가 있다?

교사*수다 / 위희숙_여주 여흥초 교사

이번 학부모 공개 수업은 완전히 망했다.
공개수업 주제는 “추락하는 달걀에는 날개가 있다?”였다. 창체 수업이었는데 달걀을 2층에서 떨어뜨렸을 때, 깨지지 않도록 낙하 구조물을 설계하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영화 ‘그래비티’의 마지막 장면을 도입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지구로 자유낙하는 우주선이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착지시킬 수 있을 지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중력, 공기저항과 충격 완화를 멋지게 이야기해주고, 설계 작업을 시작하도록 했다.   

구조물을 만들 때에는 아무래도 입체적인 그림을 그리기 어려울 것 같아서 실제로 제작 과정에서 필요한 준비물을 만져보고 조작해볼 수 있도록 준비물도 나누어 주었다.  

나무젓가락, 빨대, 고무줄, 풍선, 일회용 비닐 다섯 장을 받은 아이들은 갑자기 1학년 아이들이 되어버렸다. 치열하게 고민해서 달걀을 깨지지 않도록 구조물을 만들어야하는데, 불었다가 갑자기 놓친 풍선은 다른 모둠으로 날아가 버리고, 나무젓가락을 고정하기 위해 써야 할 고무줄은 그들 손에서 별이 되고 로켓이 되었다. 낙하산이 되면 참 좋았을 비닐 봉투는 한 때 모자가 되기도 하는 등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재미있는 놀잇감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런 혼란이 상당 기간 지속된 것은 아니었으나, 주어진 시간을 상당 부분 허비해버린 것은 분명했다. 발표를 해야 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 제대로 된 모둠은 별로 없고 내 속만 까맣게 타들어갔다. 결국 수업 시간은 15분을 더 초과해 6교시 끝날 시각인 3시를 넘어 3시 15분. 주위 상황 파악 잘 하는 6학년이지만 집에 갈 시각이 15분을 넘어가니 어쩔 수 없었다. 집중력이 바닥인 상태로 모둠 발표를 겨우 끝내고 수업을 마무리했다.

이 수업은 6학년 선생님 5명이 모여 같이 만든 수업안이다. 혁신학교인 우리학교는 공개수업을 할 때 항상 같이 의논해서 수업안을 만들기 때문에 이번 수업도 같이 머리를 맞대어 아이디어를 내고 자료 준비를 하고 함께 준비한 것이다.


 그런데 수업에서 한 달걀 낙하 활동은 초등학교의 영재반이나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많이 하는 과학 실험이다. 사전에 창의적인 활동도 많이 하고, 설계를 해보는 경험도 많지 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 수업을 할 수 있을까 계획 단계에서 우려도 있었지만 같이 의견을 모은 것이고 또 지금까지 이렇게 만든 수업이 잘 되었으니까 이번에도 잘 되리라는 믿음이 있어서 따라간 것 같다. 

혼자 계획했다면 공개수업용으로는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수업이었다.  


함께 수업안을 만들어 간 과정은 아름다웠으나 결과가 좋지 않아 한동안 속상했었다. 

일 년에 한번인 학부모 공개수업에서 나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제대로 되지 않아 허둥지둥했던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서 우울했다.


 경력이 몇 년 안 되는 신규 교사도 아니고 말이다. 무난하게 내가 잘 하는 수업을 할 걸, 왜 이런 수업을 같이 해서 낭패를 겪어야 하는지 혼자 불평도 했었다. 한 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실패를 경험할 수 있을까?
나 혼자서 수업을 계획하면 언제나 안전빵인 무난한 수업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나는 8년 전 혁신학교 초창기에 교장주도형 혁신학교에 근무했었다. 그 때 혁신학교를 잘 모르는 친오빠가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혁신학교가 무엇인지 물어봤었다. 나는 혁신학교라는 것은 학생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학생들이 잘 배우기 위해서 학생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많은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 같다.  


 사실 그 학교에서는 무엇인가를 많이 했었다. 체험학습도 많이 가고, 워크북도 많이 만들고, 공개 수업도 많이 하고, 발표회도 많이 했다. 그래서 교사들은 퇴근 시간을 넘겨서 밤 늦게 퇴근하기 일쑤였다. 열심히 했었다. 


그런데 그 때는 누군가가 계획을 세우고 각자 쪼개진 그 업무를 혼자서 열심히 하는 구조였었다. 예전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자주, 그리고 더 철저하게 했었다. 더 시키려는 사람과 덜 하려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있었고 2년만 채우고 다른 곳으로 가는 분도 더 많아졌다. 재미가 없었다.

그 후 일반 학교를 한 번 거치고, 또 다시 혁신학교로 오게 됐다. 예전에 경험한 혁신학교와 비슷한 강도로 바쁘긴 하다. 그런데 조금 다른 것이 있다. 아니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학년 비전을 같이 만들고, 재구성 계획도 같이 짜고, 공개 수업도 같이 만든다. 


같이 해보면서 잘 되면 신이 나고 또 더 많은 것을 계획하게 된다. 닦달하는 사람이 없는데, 더 하려고 한다. 쓸 예산이 없는지 행정실에 물어보게 된다. 작년에 했던 프로젝트를 그대로 하기 보다는 또 다른 것을 해보려고 새롭게 고민한다.

새로운 것을 시도 하다 보니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공개수업처럼 폭망하기도 하지만 새로움을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같이 하니까 할 수 있는 것 같다. 나 혼자 떠맡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같이 성장하는 것이다. 


교직 경력 18년, 웬만한 것은 다 알고 있는 경력이다. 이제는 나에게 익숙한 것! 내가 잘하는 것만 하면 위험 부담 없이 무난하게 갈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서 나의 테두리 안에 갖히게 되고 내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아집에 빠질 수 있다. 나 같은 경력 교사에게는 익숙한 것을 잘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성에 젖지 않고 다양함을 시도해보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 필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싶다.

 ‘추락하는 달걀은 날개가 있다?’ 수업을 통해서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나의 자존감에 ‘새로운 도전’이라는 날개를 달아서 조금 더 단단하고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겠다는 마음을 가져본다. 그리고 항상 함께하고 나누는 우리 동학년 선생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진하게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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