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쌤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lys Jun 01. 2017

진실을 말하는 학교

학교*이야기 /  손소영_천남초 교사

학교 이야기를 써 보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던 걸 한 없이 후회한다. 지난 해 학교 밖에서 보낸 일 년이 가져온 부작용일까. 학교에 대해 말하기가 퍽 조심스럽다. 심지어 학교가 낯설다. “그래, 새로 옮긴 학교는 좋아?”라는 흔한 안부 인사에도 절절 맨다. 우리 학교가 좋긴 한데, 우리 학교가 좋은 학교가 맞나?


연구년을 마치면서 지난 3년 근무했던 학교를 떠나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온 마음과 힘을 쏟아 부었던 학교였다. 하루 하루가 ‘치열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끊임없이 토론했고 최선을 다해 실천했다. 혁신학교의 외피로 바라 볼 때 교육과정 연구, 민주적 운영 시스템, 교사들의 공동체적 태도 모두가 잘 갖추어진 편에 속했다. 


해마다 변화하고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교사도 학부모도 함께 감동했다. 교사들은 저마다 교육을 바라보는 신념이 있었고, 모두가 학교 일에 열정적이었다.


열정 가득한 일상이 내심 자랑스러웠던 한편, 신념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갈등의 진폭은 생각보다 컸다. 강한 신념을 가질수록 발언은 강해지고 의사 결정에 있어서도 보다 큰 영향력을 미쳤다. 생각과 신념의 차이, 그리고 그와 관련한 갈등을 둘러싼 서로 간의 거침없는 대화. 이것이 느긋해야 할 일상을 치열하게 만드는 역설의 핵심이었다. 날 선 이야기들이 오가는 회의 분위기가 힘겨워 질 무렵, 우연히 만난 대학 선배의 농담 섞인 말 한마디가 나를 흔들었다.


“난 말이야, 아침 마다 나의 신념을 냉장고에 잘 넣어 두고 출근한다.”

“네? 뭐라구요?”

“너도 내려 놓고 가. 학교 갈 때는. 그 대신 상하지 않게 잘 살펴라.”


한동안 이어진 선배의 거침없는 비판 이후 나는 한동안 우울감에 시달렸다. 갈등이 고조에 다다른 학교를 생각할 때, 선배의 말은 단지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1/N의 의사결정으로 학교 안의 권력을 평등하게 분배할 수 있다는 신념, 생각의 동일성에 대한 신념들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나온 시간들이 흑역사로 전락하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3년간의 근무를 마무리 했다. 학년이 끝나갈 무렵 ‘그 때 그렇게 거침없이 솔직하게 말하며 부딪쳤던 시간들이 나를 성장 시킨 것 같다’는 서로의 고백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진실을 나누지 못했더라면 그 시간들은 우리에게 그저 아픈 기억으로만 남았을 런지도 모를 일이다.


새로 옮긴 학교는 지난번 학교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여유있다. 하루 하루는 바쁘게 돌아가는데, 느긋한 일상이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실제로야 어찌되었든 마음이 여유롭다보니 이것 저것 생각할 거리들이 많아진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 가고 있는 학교의 모습은 어떠한가?

학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전입한지 고작 3개월 남짓 되었는데, 기존에 해 오던 방식에 딴지를 걸고 질문하고 비판하는 나에게, 우리 학교는 오히려 가운데 자리를 내어 준다.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은 나 뿐 만이 아니다. 얼마 전 있었던 학교 평가 컨퍼런스에서 이제 교직 2년 차에 접어드는 후배 교사의 발표를 듣고, 우리는 그날 저녁 각자의 주량을 갱신했다. 


혁신학교라는 이유로 근무를 희망하면서 품었던 기대와 실망, 만만치 않은 시행착오들과 새롭게 생겨난 교사로서의 고민, 학교 안에서 발견한 희망과 넘어야 할 벽들. 중간 중간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기도 했지만, 자기 생각을 진솔하게 말하는 후배의 모습은 정말이지 담대했다. 


그 용기를 본받아 그날은 늦도록 쓴 소리를 듣는 사람과 쓴 소리를 하는 사람이  얼싸 안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려움이 있을 것을 예상하면서도 더 나은 결말을 위해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가진 자’들을 나는 매주 월요일 교사 회의에서 만난다. 하나의 결론을 고집하지 않을 뿐이지 교사 회의는 언제나 치열하다. 왜 하는거냐, 무슨 의미가 있냐, 이게 맞냐 하는 주제 앞에서 누구도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그 자리에서 우리는 성공담 보다는 하루의 소소한 실패담을 즐겁게 공유한다. 진실은 대부분 흑역사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닫는다.


낯설 것 없다.

진실을 말하는 학교,

외피를 벗고 용기있게 속살을 말하는 학교가 아름답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레임 밖의 세상과 만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