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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ys Sep 05. 2017

참여와 소통으로 만드는 배움의 공동체, 혁신학교

학교*이야기 / 한민수_용인 삼계고 교사

 학생 한 명, 교사 한 명마다 아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성장 이야기가 있듯 학교 한 곳 한 곳도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혁신학교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고 갔던 흥덕고등학교에서 5년을 보내고 다시 신설 혁신고로 옮기게 된 마음을 메신저에 아래와 같이 적어서 작별 인사로 전했다.

"수업 시간을 함께 하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아이들의 등을 대신 토닥여 주던 선생님들이 있어서 든든했습니다. 그리고 늘 말없이 책상을 돌려주던 아이들, 용기 내어 더듬더듬 자신의 생각의 말하던 아이들, 친구들에게 볼펜을 쥐어주고 잠도 깨워주던 천사 같은 흥덕의 아이들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선생님이 된 것이 행복했습니다."

  

 흥덕고처럼 개교 2년차에 용인삼계고로 부임하게 된 2016년에는 1학년 담임을 맡았다. 도서관 사서 역할도 하면서 새로운 아이들과 선생님들, 낯선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1년을 보내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혁신부장이 되어있었다. 2017년은 완성 학교가 되는 중요한 한 해였고, 1학기에는 혁신학교 지정 2년차라 중간평가인 성장나눔의 날도 치러야 했다.

 초보 혁신부장으로 데뷔하는 자리가 전입교사와 함께 하는 2월 교직원워크숍이었다. 첫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했던 고민은 역시 수업 혁신이었다. 어느 혁신학교든 교사들이 교실의 문을 열고, 교과의 벽을 부수고 협력하여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서 수업을 바꾸는 것이 중요한데, 수업 혁신을 학교 운영에 중심에 놓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혁신고등학교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고등학교에서 수업을 바꾸지 않고 다른 무엇을 바꾼들 진정한 혁신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경쟁보다는 협력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배움의 의미를 찾는 행복한 학교는 꾸준하게 일상의 수업을 바꿔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2월 워크숍에서는 선생님들이 배움중심 수업에 관한 강연과 모둠토의, 발표를 통해 수업혁신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서로의 고민을 나누면서 2017년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는데 의의가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따뜻했던 시간은 첫날 오전에 30분 정도 진행한 '우리학교 사용설명서 만들기' 시간이었다.

 포스트잇에 새로 오신 선생님들은 궁금한 점을, 기존 선생님들은 알려주고 싶은 것들을 적어서 붙이고 하나씩 읽으면서 잔잔한 소통의 즐거움을 나눠가졌다. 출근길 교통정보와 주차문제, 학교 근처 맛집과 커피숍, 아이들의 특성 등에 대해 다들 웃음꽃을 피우며 정보를 교환했다. 선생님들이 기대 이상으로 열심히 참여해주셔서 조금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일상이 즐겁고 서로에게 따뜻한 교사문화가 받쳐줘야 학교혁신도 추진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작은 이벤트도 계속 하려고 한다.


  3월부터는 매월 교직원토론회나 학년수업연구회, 제안수업연구회를 준비해야 했다. 3월 첫 토론회에서는 '교사공감토크' 시간도 가졌다. 선생님들이 자신의 목표, 소망을 A4지에 적은 후 비행기로 만들어 날리며 힘찬 새 학년 출발을 함께 했고, 이 중에서 몇 개를 그 자리에서 읽으며 공유했다. 그리고 모든 내용은 정리해서 선생님들에게 다시 보내드리고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기회로 삼았다.

 또한 학년별로 담임과 교과담임교사들이 모두 모이는 학년수업연구회도 진행했다. 학급자리와 모둠배치 문제 등의 수업고민,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 학급별 특성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3월에는 3학년이 가장 진지하게 논의를 한 듯 가장 늦게 끝났다. 진로진학지도도 담임교사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문제인 만큼 모든 교사가 힘을 합쳐야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다.

 이런 저런 행사를 준비하며 변수도 많이 생기고 갈팡질팡 헤매기도 하면서 '참, 민주주의는 어렵다'라는 것을 실감했지만, 막상 토론회나 연구회가 끝나고 나면 하길 잘 했다는 것을 매번 느꼈다. 특히 성장나눔의 날을 준비하면서 전교직원들을 대상으로 사전 설문조사를 통해 토론주제를 모은 후, 분임토의와 발표 형식으로 실천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는 자리를 가졌는데,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교사들이 민주적으로 소통하면서 학교의 발전을 위해 의견을 모았다.

 참여와 소통의 자치 공동체, 존중과 배려의 생활공동체에서 다섯 가지의 주제가 있었지만, 어려운 분임토의와 발표를 두 시간 동안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도 선생님들을 믿고 혁신학교의 과제들을 실천해야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학기말에는 행정실과 교육공무직 선생님들도 함께 참여하는 교직원토론회와 학생, 학부모와 함께 하는 교육공동체대토론회도 만들어 볼 생각이다.

 그리고 흥덕고에서 매년 하던 '교직원 마니또'도 4월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조직의 구성, 시스템이 뼈대라면 협력과 소통의 조직 문화는 뼈대에 건강한 살이 돋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따뜻한 피와 같은 것이다. 수업나눔 모임, 교사동아리, 교직원토론회, 참여와 소통이 있는 워크숍 등으로 학교 문화를 생동감 있게 바꾸어가면서, 학교생활을 하면서 일상의 즐거움을 서로 나눌 수 있는 마니또, 비밀친구 게임은 아주 매력적인 활동이다.

 교장 선생님, 행정실, 교육공무직 등 모든 교직원이 참여해서 마니또를 통해 이야기꽃을 피우고, 서로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동료애를 키울 수 있었다. 남녀교사를 짝으로 정해서 2주간 선행 3가지를 한 후, 지필고사 첫 날 오후에 모여 마니또를 발표하고 간단한 선물교환식을 가졌다. 메신저 대화명을 활용해서 마니또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면서 즐거운 추억을 하나씩 만들어 갈 수 있었다.


 혁신부장으로 1학기를 보내고 나니, 신영복 선생님의 '여럿이 함께'라는 글자와 그 의미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이 떠올랐다.

"제가 감옥에서 나와서 붓글씨로 처음 쓴 내용이 '여럿이 함께'였습니다. 다들 참 좋다고 하더라고요. 당시에는 한글 액자가 별로 없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잘 아는 후배 교수 한 사람이 여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어요. '여럿이 함께'라는 말에는 방법만 있고 목표가 없다는 것이지요. '여럿이 함께 어디로 가자는 거냐. 그건 방법이지 목표가 없지 않느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제가 글씨 아래에 방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겨난다'라고요. 여럿이 함께 가야 할 목표는 이렇게 생겨난 길 위에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목표는 길 위에서 찾아야 합니다. '누가 누구를 이끌고 나가겠다'는 오만한 생각은 큰 잘못입니다."

함께 고민하고 경청하며 이야기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은 학교 아이들의 모습만큼이나 순수하고 행복해보였다. 앞으로도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천천히 아름다운 과정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여럿이 함께' 가면 험한 길도 즐겁고, 뒤에 남는 소중한 것이 분명히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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