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수다 / 김연희_경수중 교사
“안녕하세요, 저는 6살 김재민이구요, 우리 엄마는 혁신부장이에요”
평소에 어른을 만나면 인사를 잘 하라고 했더니만,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묻지 않아도 이렇게 늘어놓는다.
나는 작년까지 혁신부장이면서 두 아이의 엄마였다.
여섯 살 아이 눈에 비친, 혁신부장을 엄마로 둔 아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2016년 한해는 참으로 정신없는 한 해였다. 혁신학교 4년차 종합평가를 앞두고 있었고,
첫째는 여덟 살 초등학교 입학, 둘째는 여섯 살 낯선 지역에서의 새로운 유치원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일산에서 안산까지 매일 왕복 110km를 출퇴근을 하면서,
‘종합평가 안내 가정통신문 발송, 기획회의 때 평가관련 내용정리 브리핑, 4년차 흐름 내용 수정, 전문적학습공동체 주제 협의, 컨퍼런스 2부 순서 내용정리 안내’ 등등
머릿속은 온통 이런저런 그 날의 업무로 늘 꽉 차 있었다.
아침 등원과 등교는 아빠의 몫으로 아이들이 입어야 할 옷을 거실 바닥에 퍼즐 조각처럼 맞춰 놓고 집을 나오면, 나의 임무는 여기까지….아이 아빠가 잘 해 줄 거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무게 중심은 언제나 혁신학교 운영에 대한 4년차 평가를 무사히 잘 치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침 6시 30분에 나오면서 잠자는 두 아이의 모습을 보고, 퇴근 후에도 곤하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짠하다는 생각을 하는 건 그 때 뿐, 학교에 도착하면 육아문제와 가정 일을 잊고, 학교 일에 눈코 뜰 새 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나름대로 학교에서의 성취감과 만족감이 일에 대한 욕심을 떨쳐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의 혁신부장 역할로 인해 학교 문화가 조금씩 바뀌고, 그러는 가운데 동료들의 칭찬과 인정의 긍정적 피드백은
자존감을 상승시켰고, 교직생활의 행복감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두 아이의 엄마 역할을 매일같이 해야 하는 육아에는 당위성만 있을 뿐 어느 누구도 두 아이의 엄마로서 인정해(?)주는 그 이상의 것은 없었다. 물론, 대한민국 엄마라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어느 누구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길 원해서 책임감 있게 부모의 역할을 해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나는 혁신학교 일을 하는데 있어서 늘 행복해 했고, 교육청 공문에 ‘혁신’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그것이 나를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런 혁신부장 업무로 인한 설렘을 행복으로 느끼는 대가는 가혹했다.
두 아이를 힘들게 시험관시술까지 하며 공들여 낳았지만, 키우는 데는 그런 간절했던 초심을 잊어버리고, 세심한 공을 들이지 못했던 부족함이 수면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둘째가 유치원 생활 적응을 하지 못했고, 친구들과 싸우고, 때리고, 심지어 엄마들 사이에 재민이 엄마가 도대체 누구인지, 애들한테 신경도 안 쓴다는 둥, 애는 ADHD 증상이 농후한데, 엄마는 유치원에 얼굴도 비치지 않는 다는 둥,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급기야 서둘러 ADHD검사까지 받게 됐지만, 남들이 인정 못하는 우리 아이만의 호기심 가득한 행동들이 학부모와 유치원 담임선생님들 사이에는 감당 못하는 아이로, 그래서 ADHD 성향으로, 당장 약물 치료를 받지 않으면 큰일 나는 엄청난 아이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오가는 사이, 마음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어갔다.
ADHD 종합 심리치료 검사 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이는 ‘유치원에 안가는 게 소원’이라 말했고, 유치원에서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여기에 가만히 앉아 있어”라는 말이었고, 아이는 아침만 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유치원에 안 가고 싶다며 소리를 지르고, 소스라치게 ‘제발, 안 가게 해 주세요’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가 있다면, 세 가지도 필요 없고, 그저 “유치원에 안 가게 해 주세요”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아이의 요구는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것들을 채워주지 못하는 무심한 엄마였다.
유치원에서 맨날 가만히 숨죽이며 그냥 앉아있어야 한다는 것이 정말 커다란 곤욕이었고, 그토록 유치원에 가기 싫었던 아이의 간절한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
이 글을 읽는 누군가 나에게 질책 할지도 모른다.
“당신의 아이나 잘 키우지, 무슨 놈의 혁신이냐고…”
그 말도 맞는 말이다. 호된 질책 속에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내포되어 있기에 그런 말조차도 고마울 뿐이다.
하지만,
학교에 오기 싫어서 발버둥 치는 아이, 그래서 아침마다 배가 아프다고 하는 아이들…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
이제는 이들이 비로소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의 목소리가 나에게 혁신학교 교사로서 어떠한 교육철학을 갖고 살라는 말인지 넌지시 말해주는 것 같다.
‘이제는 나같이 학교가기 싫어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읽었으면 좋겠고,
학생이면 누구나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고,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최고의 엄마, 혁신부장이 되어 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경기도 교육청의 거창한 슬로건을 빌리지 않더라도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내 자식으로 인해 값진 교육철학으로 가질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소중한 경험, 고해성사일 것이다.
지금도 나직한 목소리로 당차게 말하는 여섯 살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녕하세요. 우리 엄마는 혁신부장이에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