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사람 / 이광호_경기도교육청 학교정책과 장학관
이번호 정책/사람에서는 여태껏 뚜렷하게 기억되는 별명이 없어 그냥 “이광호 같은 사람”. 이우학교 교장 시절
학교 구성원이 기억하는 모습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라고 말문을 여신 학교정책과 이광호 장학관님과의 짧은 만남으로 구성하였습니다.
1. 지금 장학관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고민은?
당장 제가 맡고 있는 업무와 관련하여, 혁신학교의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고 질적인 도약의 계기를 만드는 것이겠지요. 특히 혁신고등학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혁신적 고등학교 모델을 만드는 것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오래 전부터 고민해 온 것인데, 미래형 교육 모델을 어떻게 구상하고 실현할 것인가도 제 머릿속을 항상 맴돌고 있는 주제입니다. 특히 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시대에 적합한 교육모델, 나아가 교육과 사회체제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두 개의 고민거리를 연결하면, “혁신학교를 어떻게 미래형 학교 모델로 전환하는가?”라고 할 수 있겠지요.
2. 4대 과제 중심의 혁신학교 정책은 ‘혁신학교의 획일화 혹은 요소중심의 혁신학교들을 만들어왔다’ 라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혁신학교 정책을 이끄는 담론들을 돌아보아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저도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군데에서 듣고 있습니다. 4대 과제에 대한 과도한 집착, 요소 중심의 혁신 등으로 인해 너무 획일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혁신학교의 다양성이 강조되고 ‘빛깔있는 혁신학교’라는 표현이 강조되는 듯합니다.
저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혁신교육의 초기에는 학교혁신을 통해 교육을 바꾸고, 우리의 삶을 바꾸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진보적으로 혁신하겠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예컨대 혁신학교와 함께 제시된 ‘무상급식’ 정책의 경우, 단순하게 가난한 학생들에게 밥을 공짜로 먹이자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보편적 복지 담론을 불러 왔고, 오늘날 ‘기본 소득’ 논쟁으로 확대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혁신학교 역시 학교의 혁신을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 삶의 원형을 되찾고 그 경험을 축적하여, 새로운 대한민국의 혁신 동력을 형성한다고 생각했지요. 혁신교육은 당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경쟁 위주의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에 대한 대척점에서 탄생했고, 그 만큼 신자유주의와 전혀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운동이었습니다. 때마침 2008년 국제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확대되던 시점과 2009년 혁신교육의 등장이 맞물린다고 생각합니다.
혁신학교가 늘어나고 그 관리에 집중하면서, 혁신교육 초기의 사회적 담론 요소가 축소되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혁신학교에서 7~8년 헌신적으로 활동해 온 분들 사이에서 “그동안 학교에서 할 만한 시도는 다 해 보았는데, 과연 이 다음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다.”라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왜 혁신학교를 시작했는가? 혁신교육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 등을 되물어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혁신학교 담론이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혁신학교 교사로 살아내는 많은 동료들은, 그동안 학교, 지역네트워크, 연구회 등에서 ‘무엇이 가능하지 않은가’에 대한 쉼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었어요.이제는 ‘무엇이 가능한가’에 대한 생산적인 담론들을 펼치며 힘을 내고 싶은데 반복된 무력감이 쌓여간다는 많은 의견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무엇이 가능하지 않은가?”는 “무엇 때문에 (우리가 꿈꾸는 혁신교육이) 가능하지 않은가?”고 질문을 바꿔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다시 “우리가 꿈꾸는 혁신교육은 무엇인가?”와 “그러한 교육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아마 앞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양할 듯합니다. 실제 제가 혁신학교 교사들을 만나보면, 각자가 그리는 혁신학교의 모습이 상당히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혁신학교라는 같은 배를 타고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뒤의 질문에 대한 답변도 복합적입니다. 문화적 한계와 제도적 한계가 뒤섞여 있습니다. 혁신교육에 대해 친화적인 정부가 들어선 만큼, 제도적 한계들은 단계적으로 극복 가능할 듯합니다. 인식과 문화적 측면은 오히려 더 어려운 과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는 여기에서 짧게 말씀드리기 어려울 듯합니다.
“무엇이 가능한가?”는 생산적 담론을 펼치지 못하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학교 단위 성공 사례가 부족한 때문으로 보입니다. 혁신학교 초창기 남한산, 조현, 서정, 덕양, 보평, 장곡 등의 사례를 공유하면서, “우리도 저런 학교를 만들 수 있겠다”는 열정과 의지가 확산되었습니다.
학교 단위의 성공 경험이 축적되고 그것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형성된다면, 자신감과 효능감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아직 학교 단위 혁신이 일정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혁신 과정의 어려움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네트워크가 진행된다면 무력감을 증폭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혁신학교가 양적으로 확대되고, 네트워크가 강조되면서 그러한 상황은 충분히 예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정책적 대안을 강구해야 할 듯합니다.
4. 현재, 경기도교육청은 매년 100개 이상씩 혁신학교 지정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의 방향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현재 단위학교 내의 자생성, 기존의 팔로우십을 리더십으로 전환하는 시스템의 부재 등 학교가 자생적으로 지속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 역량 만들기에 대한 고민도 동시에 가야할텐데요. 이러한 관점에서 정책의 방향을 말씀해주신다면?
초기에 모델학교로 출발한 혁신학교의 위상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소수의 Pilot School를 만들고 그 성공모델을 확산한다는 전략의 수정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러한 정책 전환에 대해서는 찬반의 의견이 존재합니다. 그 찬반 의견에 제 의견을 덧붙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변화된 정책 환경 속에서 어떻게 혁신학교를 지속할 것인가, 나아가 전체 학교를 혁신할 것인가 고민해야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우선, 지적하신대로 리더십 역량을 기르는데 집중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보다 다양하고 체계적인 연수와 연찬회, 워크숍 등이 조직되어야 합니다.
또한 혁신적 역량을 갖춘 교원들이 학교의 리더로 성장하는데 있어 장애가 되는 제도적 한계들을 극복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물론, 이는 경기도교육청 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제도 개선이 동반되어야겠지요. 다행인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 그러한 제도 개선의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점입니다. 학교혁신을 위한 제도 개선 방향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실현시키는 것이 요구됩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미래는, 혁신학교의 가치와 철학, 과제와 요소들이 모든 학교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 때 쯤이면, 경기도교육청의 혁신학교운영팀도 사라지겠지요.
그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현실의 고난을 극복하고 한 줌의 변화를 즐거워하며 동력을 얻어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