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사유 / 김상도_충현중 교사
“왕은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야.
신하들의 결정을 윤허(允許)하고 책임을 묻는 자리다”
- 영화 사도 중 영조의 대사에서 -
학교혁신은 학교가 자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학교에 대한 지배시스템이 규제와 통제 위주에서 자율과 책무를 중심으로 하는 학교 중심의 자율경영체제는 1987년 교육개혁 심의회에서 언급한 이후 지속적인 제도변화의 흐름이었다.
단위학교가 개혁추진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교수방법 및 재정에 관한 의사결정권한을 단위학교에 위임하는 재구조화 전략(Lane.J.J.& E.G. Epps.1992)은 어떤 정부를 막론하고 교육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증대하는 전제로 이해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김성열(2015)은 단위학교의 자율역량을 제고할 수 있는 학교중심 자율경영체제의 내부요소를 다음 3가지로 언급한다; 1) 단위학교 내 권한배분 체제, 2) 의사결정 체제, 3) 책무성 평가 체제. 다시 말해, 그간 지속적으로 추구된 학교중심 자율경영체제는 “교육행정기관이 단위학교로 위임하거나 이양한 권한을 학교장에게 집중시키기 보다는 학교 내 다양한 구성원들에게 분산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학교장이 내부구성원들과 어떻게 의사결정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 권한을 적절하게 분배했는가가 단위학교의 자율경영체제의 대 전제인데 이것이 학교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단위학교의 의사결정기구나 의견수렴과정의 다양화는 법률과 지침으로 설치 운영을 강제하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나 학부모회, 인사자문위원회 등이 그러한 절차적 민주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직인데, 사안별로 필요에 따른 위원회의 설치요구와 때때로 복잡한 위원회 조직의 통합을 요구하는 지침 사이에서 필요한 위원회를 세우고, 운영하며 위원으로의 역할을 교사는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위원회의 논의결과는 의결이 아닌, 심의수준으로 그치고 실제로는 심의결과와 다르게 결정되거나 심의과정 자체가 형식적인 요식행위에 그치는 경험들을 겪으며 이러한 위원회 자체가 교사에게는 과중한 업무로만 인식되었고 위원회의 본질적 성격을 왜곡 해석해 왔다.
최근 경기도 자치법규안에 포함된 '교사회 구성'과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 참여' 등도 학교장에겐 제안과 권고의 형식으로 그치지만, 교사에게는 의결권도 없이 제안하나를 하려해도 절차를 준수하도록 하는 업무로만 이해된다. 학교의 자율적 책무성을 평가하는 과정 또한 평가결과가 문제개선의 역할을 하기보다 평가 자체로 그치거나, 때때로 과도하게 교사의 책무성만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평가의 절차는 존재하나 그 결과는 신뢰성도 효과성도 없이 교사의 행정처리 업무로만 남겨진다.
학교중심의 자율경영체제라는 용어에서 느껴지듯이 이 과정은 학교를 민주적인 자치공동체로서 학교 내 구성원들의 수평적 조직체계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듯하다. 적어도 단위학교의 학교장에게는 그런 것처럼 보인다. 다분히 학교장의 리더십에 의존한 효율적인 관료적 경영체계인 것으로 보는 것이 더 가깝다. 그래서 지금까지‘교사들의 공감과 헌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학교장의 리더십은 학교교육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요인’으로 인식해왔다. 그리고 많은 연구들에서 학교장의 학교운영방식은 관료적 지시와 통제보다는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보기도 했다. 이런 지속적인 연구결과에서는 여전히 학교장의 인식과 실천의지에 따라 결정되는 의사결정구조로는 단위학교의 자율역량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선 경기도 학교자치 조례에서 제안하는 내용과 의미를 참고하여 학교장은“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결정과정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며 책임을 공유하는 자리”로의 역할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또 한편으로는 학교장의 역할인식을 견인할 정책적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더 이상 학교장의 역할 인식에 따라 학교 조직의 민주성에 사활을 거는 소모적 논의를 극복하고 학교문화로서 학교장이 수용할 수밖에 없는 학교단위의 자율경영체제의 내부요소 3가지에 대한 보다 구체화된 제도를 마련해야 된다.
학교중심 자율경영체제의 3가지 내부요소가 갖추어졌다고 하더라도 학교에서 내리는 의사결정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사적 입장의 소모적인 논쟁과 비합리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피할 수 없다. 교사와 교사 간에, 교사와 학교장 간에 공공성에 대한 인식 불일치로 야기되는 교육력 낭비와 학교교육과정의 비효율적 운영을 막기 위해선 학교의 공적인 판단을 보장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의 제도화가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결정되는 의사결정의 기준은 공공성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공공성에 대해 학교 구성원이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학교 민주성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학교는 사적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익집단이 아니며, 개인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도 아니다. 그래서 공공성의 기준, 즉 사적 판단을 배제하는 공적 판단의 기준이 무엇인가는 학교라는 조직체의 목적과 성격을 사립학원과 선명하게 구분 짓는다.
학교에서의 공적기준은 학교의 설립과 교육과정 운영의 토대가 되는 법령과 지침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포함되어야 할 기준에 학교의 교육과정을 구현할 학교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정한 학교 헌장, 학교 교육목표, 그리고 학교 약속 등이 있을 수 있다. 후자의 것이 학교에서 더 많은 경우에 공적판단의 기준으로 여겨져야 한다. 그 이유는 법령과 지침은 학교 현장에서 해석의 이해정도 차이만이 사안에 따라 존재할 뿐, 그 실행의 문제에 있어 학교 구성원들이 토론하거나 논의로 수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대체로 포괄적인 당위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적기준은 법령과 지침의 토대 위에‘학교의 구성원이 스스로 정한 공동의 교육적 가치와 약속, 또는 목표’이며 공적 판단이라 함은 이러한 ‘공적기준을 구현하기 위해 내리는 일련의 개방되고 공식화된 논의 속의 판단’을 의미한다.
단위 학교의 민주적 자치 공동체의 기저인 학교의 의사결정 구조가 학교장의 리더십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적 구성원이 바뀌어도 유지되며 지속적으로 공공성을 보장하는 구조로 가는 것은 단순히 학교 내 교사 공동체의 민주성만을 구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20년이 넘게 추구되어 온 단위학교 자율경영체제 운영의 효과성과 실효성을 극대화하여 학교가 높은 교육 성취를 이루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의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는 미래의 시민역량을 갖추기 위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는, 그리고 사적욕구를 배제하고 공동의 교육목표를 구현하는 공적인 공동체로서의 기본 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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