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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미 Apr 28. 2022

저도 가지고 있는 물건이 많아요


미니멀리즘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어째서 그렇게 효율적이고 멋진 삶을 모르고 살았는지 후회했지만 나만의 방향으로 미니멀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알게 되어 복잡한 공간에서 우리 가족이 벗어났다는 점이 고마울 따름이다.



처음엔 정말 정신없이 물건을 비웠다. 둘째 고민은 둘째를 낳기 전까지 하는 거라고 했던가. 나는 몸이 너무 약한 아이를 돌보는데 기력을 다 쏟았고 외동을 결심했다. 혹시나 둘째를 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가지고 있었던 육아용품들을 많이 비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집안의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었고, 당장 눈에 가장 띄는 물건들이 아이의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선물과 물려받은 아이의 물건들을 구석구석 쌓아 뒀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우스운 점은 둘째가 있다면 사용한다거나, 누군가에게 물려줄 정도가 되지 못하는 수준의 물건들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진작에 아이의 대형 장난감과 전집은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나름의 절약을 해 왔다. 하지만 필요 없는 물건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깨진 아기욕조,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 턱받이, 물려받았지만 전혀 쓴 적이 없는 불편한 모자 등 쓰지 못할 물건들을 많이도 버렸다. 정말 많은 아기용품을 아름다운 가게로 기증하고, 조카에게 보냈다.



속이 후련해지자 이제 내가 가진 물건들로도 눈길이 갔다. 옷장을 뒤집어엎었다. 대학생 때 입었던 아디다스 저지나 청치마는 왜 있는 건데… 30대가 된 나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고 몸을 불편하게 했던 소재의 옷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옷, 신발, 화장품, 서랍장 등등 잘도 숨어있던 물건들을 모두 끄집어냈다.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서도 정리했고, 몇 번이고 재활용 수거장을 들락거렸다. 주방, 거실, 화장대, 책상, 욕실, 베란다 공간이 하나둘씩 비워지고 아예 새로운 집이 탄생한 느낌이었다. 이사를 하면서, 아이가 학교에 가면서, 주말부부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또 여러 번의 비움과 채움이 있었다.


 




기꺼이 소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인 가족인 우리 집에는 물건이 많다. 책이나 유튜브 속의 심플한 미니멀리스트들의 집과는 사뭇 다르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고 해도 다 자기만의 사정에 따라 물건을 소유한다. 빈 공간이 주는 여유와 효율을 중시하지만 나에게 허락된 공간 안에서만 가능하다. 혼자 살지도, 미니멀리스트 부부이지도 않고 가족 중에서는 나만 미니멀을 지향하고 있기에 당연하다. 누군가 우리 집을 본다면 ‘깔끔하다’는 말 정도는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가진 물건은 많이 줄였다. 옷은 50벌 내외이고, 신발은 총 6켤레, 액세서리나 매니큐어는 없앴고, 화장품은 샘플부터 사용 중이다. 화장품을 상당히 줄였지만 먹는 음식을 조절하면서 피부는 더 좋아진 듯하다. 손톱과 발톱을 깔끔하게 관리하고 화려함보다는 단정함을 유지한다.



치장을 하는 데 사용하는 물건은 적지만 수첩은 4권이나 사용한다. 다이어리, 아이와 나의 건강수첩, 오늘 할 일을 적은 수첩까지 쓴다.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어서 좋다. 필사하는 것을 좋아해서 바인더와 볼펜도 여러 가지다.



나는 e북 리더기가 있다. 한참 이북을 즐겨봤다. 도서관에 아이의 책을 빌리러 가는 김에 내 책을 빌려오면서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e북 리더기를 계속 가지고 있다. 아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요긴하게 사용했다. 또 코로나 때문에 자가격리를 하며 도서관에 갈 수 없을 때도 편하게 쓸 수 있었다. 물론 종이책에 비해 가독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언제나 책을 가까이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다.







주방에는 커다란 식기 건조대가 있다. 작년에 이사 온 집에는 식기 건조대가 없었다. 전에 살던 사람이 떼어간 건지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참에 나도 다른 미니멀리스트들처럼 식기 건조대 없이 살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넘게 식기 건조대 없이 살아보았다. 키친 클로스에 엎어 놓고 바로바로 소창행주로 닦기도 했다. 그런데 너무 불편했다. 집에서 아이반찬까지 따로 만들어야 하고 설거지거리가 상당히 많이 나오는 편이다. 나 혼자 산다면 충분히 가능할 듯하다. 그래서 결국 식기 건조대를 들였다. 크고 튼튼하고 녹이 슬지 않는 것으로 잘 찾아보고 구입했다. 나에게 맞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에게 필요한 물건은 잘 사용하면서 산다.



집안을 둘러봤더니 가전제품도 제법 많다. 건조기와 3인용 식기세척기도 있고, 무선까지 합치면 선풍기도 여러 대다. 에어프라이어와 토스트기, 전자레인지도 사용한다. 스텐팬만 쓰겠다고 다짐했다가 일반 코팅팬도 다시 들였고 설거지 바 말고도 주방세제와 베이킹소다까지 설거지할 때 사용한다. 그냥 내가 잘 쓰는 스타일에 맞게 적당히 물건은 밖에 꺼내 두고 사용한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들이고, 다 쓴 물건은 비운다.



무소유의 정신으로 살아가지는 못하지만 마음가짐은 단순하고 간결하게 바꾸고 있다. 다른 미니멀리스트들보다 가진 물건이 많다고 해서 부끄럽거나 가슴이 답답하지 않다. 다들 잘 쓰이고 있는 소중한 물건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쓸모없는 물건들은 처분하고, 쟁이는 물건의 개수를 줄였다. 그런 점이 청소를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깔끔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인 듯하다.



나도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 많지만 과거의 나와는 다르게 복잡하지도 답답하지도 않다.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잘 사용한다. 남과 비교할 필요 없이 내가 잘 사용하는 물건들과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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