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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Aug 20. 2024

집생활자의 미니멀라이프


나는 집에서 주로 생활한다. 성향이 내향인이기는 하지만 E와 I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집생활자라고 하면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나 같은 사람도 있겠지만, 일을 하거나 볼일을 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집에서 나는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가끔씩 실내 자전거도 타고 스트레칭을 한다. 매우 단순하고도 바쁜 일상을 집에서 보낸다. 하지만 어느 장소보다도 집에서 생활하는 내 시간이 가장 소중하고 행복하다.


현재 우리 집에는 세 식구가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집안일을 한다는 것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도 못하고 남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일이라 오랜 불만이 쌓여왔다. 화가 났지만 나 이외의 다른 가족들은 바꿀 수 없었다. 결국 내가 바뀌기로 했다. 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았으나 모든 집안일을 하루에 다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각자 할당량을 채우면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정해진 기간과 절차가 있을 것이고, 일을 많이 하거나 잘하는 사람도 있고 뒤처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성실하게 집안일을 해내는 집생활자이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난 후부터 그렇게 바뀌었다. 집안에 빼곡히 쌓인 짐들을 정리하고 물건들 사이게 빈 공간이 생기면서 나는 좀 더 소소한 집생활을 할 수 있었다. 쌓인 빨랫감을 보면서 한숨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 효율적으로 집안일을 해내고도 집안을 깨끗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를 찾아서


세 달 전쯤 준비해 오던 시험을 포기했다. 오랜 세월 꿈꾸던 길이었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는 너무도 컸다. 열심히 한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상황은 나를 전혀 도와주지 않았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으며 심지어 내 능력도 너무 부족했다.


건강이 많이 나빠졌고, 미니멀라이프를 고집하던 집안은 엉망이 되었다. 자괴감에 빠져 슬픔에 허덕였으며 앞으로의 경제생활도 걱정되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잘 풀릴 줄만 알았지만 나의 희망사항일 뿐 하룻밤의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동안 나는 너무도 좋아하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살아왔다.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나 혼자가 아닌 가족들이 있었기에 시간을 마음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매일 복통에 시달리며 겨우 버텼다.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집생활자로 돌아왔다. 나는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고 있다. 원래부터 ‘집순이’였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집에서 가볍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지나간 시간이 너무 아까운 것 같지만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패배를 인정하고 또다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사람들은 실패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한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한동안은 내가 한심하고 주변의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나다운 모습으로 돌아가려 한다.


현재의 나는 진정한 나를 찾고 있다. 그동안 내가 원하는 것을 못하고 살았고, 주변을 탓했다. 주체적인 내가 되지 못했다. 앞으로의 나는 좀 더 나 중심이 되려 한다. 생활도, 생각도, 하다못해 글쓰기의 소재까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길 바란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하기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혼자 살지 않으며,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듯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갈 것이다. 하루에 단 한 시간이라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책을 읽고 글을 쓰겠다. 집안을 깨끗하게 정돈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낼 것이다. 내가 온전한 나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자발적인 미니멀리스트다. 그런데 이게 웬걸. 집안을 둘러보니 온통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그동안 제대로 된 정리는 아예 하지 못했고,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다른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면서 미리 생필품들을 가득 쟁여 놓았다. 샴푸, 비누, 티슈, 고무장갑 등등 수납공간마다 가득 채운 물건들이 빽빽했다. 타임슬립이라도 한 것처럼 미니멀라이프를 하기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필요 없는 물건들이 쌓여 있는 걸 보니 기가 막혔다.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했다.







내 집에서 당장 나가!

 

내가 하루 종일 집안에서 생활하는데 우울하고 복잡한 것은 너무 싫었다. 미니멀라이프는 비움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각성 상태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갑자기 휘몰아치듯 집안 곳곳을 비우기 시작했다. 뒤죽박죽인 물건을 다시 차곡차곡 쌓는 작업이 아니었다. 정리가 아니라 필요 없는 물건을 당장 집 밖으로 내보냈다.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가장 먼저 쓰레기들을 비웠다. 영수증, 명함, 껌종이, 서랍 구석에 자리 잡은 휴지 조각까지 말 그대로 쓰레기들은 쓰레기통으로 보냈다. 냉장고 속에서도 쓰레기들이 나왔다. 사용 기한을 훌쩍 넘긴 각종 소스병과 대량 구매해서 먹지 않았던 오래된 냉동식품은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버려졌다. 쌓여 있는 고지서, 통신문 등 필요 없는 서류들도 종이 재활용을 했다. 


쓰레기는 아니지만 쓰지 않는 물건들도 비웠다. 오래된 pc와 5년 넘게 사용하지 않는 카세트를 소형가전제품 수거함으로 보냈다. 집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구식 디자인 옷, 내 취향이 전혀 아니지만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면서 가족이 건넨 운동복 등도 의류 재활용함에 넣었다. 부피가 좀 큰 물건들이 나가면 옮기는데 힘이 들고 번거롭다. 하지만 비워진 공간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책상 위에 pc를 치운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쓸 것 같지만 쓰지 않는 물건들을 보면서 반성했다. 이 물건들을 처음 이 집안에 들이면서 쓴 돈과 그 물건을 고르면서 썼던 시간과 에너지, 물건들을 차지했던 공간, 비우면서 발생하는 수고스러움과 처리 비용까지 모든 것이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잠시 옛 추억을 떠올릴 만한 물건들도 있었지만 역시나 모두 비우기로 결정하고 치워버리자 말끔하게 정돈된 집안이 펼쳐졌다.


내가 집에서 생활하는 공간이 깔끔하고 넓어져 편리해지자 더욱 집생활이 좋아졌다. 내가 있는 공간을 더욱 소중하게 다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내 집에는 내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내가 생활하기 편리한 방식대로 물건이 놓여 있다. 그렇게 해야 내가 집에서 보내는 생활이 소란스럽지 않고 편안하다. 매일 소소하게 비움을 실천했고 미니멀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을 각자 원하는 방식대로 집안을 꾸미고 가꿀 것이다. 그런데 집안이 너무 어수선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꽉 막힌 느낌이 들며 누가 내 집에 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만큼 엉망인 상태라면 주저 없이 미니멀라이프를 권한다. 나는 미니멀라이프를 통해 집안이 정돈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 건강에 관심을 기울이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말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집에서도 충분히 멋지고 재밌고 보람찬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작은 공간의 집안에서 평화로운 미니멀라이프가 진행 중이다.








나는 다시 집생활자의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해 보려 한다. 한동안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런데 딱히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일단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려 한다. 나는 그동안 지쳐 있었다. 아팠고 바쁜 사람이었지만 그것 또한 나였고 실패했지만 잘못된 것은 아니라 여기기로 했다. 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여기저기 아픈 몸을 돌보고 집안을 정리할 것이다. 집에서 복작복작 성실한 생활을 하고 도서관과 산책길을 오가며 재미를 추가할 것이다. 운동, 글쓰기, 책 읽기를 기본으로 해보고 싶은 것들을 추가할 것이다. 일단 먼저 운동을 시작했다. 신나게 러닝을 하다가 무릎이 아파 또 잠시 쉬다가 다시 천천히 뛰어본다. 무리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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