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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비우기를 시작했을 때

by 이재이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면서 살아간 지 나름 오래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여전히 배우고 있다. 문득 과거의 나를 돌아보았다. 예전에 처음 미니멀리즘을 접했을 무렵의 나는 항상 화가 나 있었다. 지금도 스트레스가 많지만 그 당시에는 매일같이 암울한 기분이 들고 불만이 많았다.




작은집에 살았다. 방은 2개 있었고, 거실 겸 주방이 있는 집이었다. 그때는 평수가 작아서 불만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집이 좁다고 느낀 이유는 갈수록 짐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넓은 평수보다는 오히려 20평대의 집을 선호한다. 너무 넓어도 집관리하기가 힘들다.




공간은 좁은데 가전과 가구를 하나씩 들이게 되자 집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거실이 없지만 소파를 큰방으로 기어이 넣었다. 장롱도 있었지만 옷이 많아 행거도 설치해야 했다. 작은 방에 들인 컴퓨터 책상과 행거 사이의 공간은 너무 좁아 사실상 생활하기가 힘들었다. 짐만 쌓여 있는 공간은 창고나 다름없다.




나는 일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가정의 모든 일을 다 해야 했기에 항상 시간이 없었고 그런 생활은 내가 원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출을 해서 전셋집을 구한 상태였기 때문에 빚을 빨리 갚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더욱 쉼 없이 일을 하면서 지냈다. 몸은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으니 소액의 금액으로 자주 쇼핑을 했다. 큰돈이 없기도 했고 조금씩, 작은 물건들을 자꾸자꾸 사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했던 것 같다.




값이 싸고 좋은 물건들도 잘 찾아보면 있지만 대부분의 값싼 제품들은 품질이 좋지 못하다. 옷도, 가구도 취향보다는 가성비를 따져서 구매했고 당연히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마음에 별로 들지 않은 물건들을 보면서 또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무리 소액이라고 해도 적은 돈을 야금야금 쓰면서 불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을 하지 못하게 되고 집에서 집안일을 맡게 되면서 화가 절정에 다다랐다. 살다 보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 우연히 도서관에서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을 읽고 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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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물건들을 비우기 시작했을 때가 떠오른다. 아름다운 가게에 몇 박스 기부도 했다. 쓰레기봉투도 가득 채워 버렸다. 재활용 분리수거를 하기 위해 여러 번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렸다. 경비원 아저씨는 이사 가냐고 물었고, 청소 이모님은 내가 버리려는 여행용 캐리어를 받아 가셨다.




많은 물건을 비우면서 상당히 후회했다. 먼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전생각이 나는 것이다. 품질이 좋든 나쁘든 이 물건들을 살 때는 돈이 들었다. 제대로 사용하지도 않고 사용기한이 지나거나 망가진 물건들은 버릴 수밖에 없었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 후로도 물건을 들이고 비우는 일을 반복했지만 훨씬 신중하게 물건을 사게 되었다. 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 물건을 들이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지 않고 가성비를 따지기보다는 쓰임새와 품질을 따진다. 일단 사고 보는 일은 없다.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며칠이 지나면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기도 한다. 사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고민하고 구입한다. 사실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이미 많은 물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물건을 비우는 일도 처음에는 신이 났다. 나는 기본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다. 며칠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우고 새벽에 자다가 깨면 또 정리를 시작했다.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재정비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그런데 그때와 비교해 보면 지금은 많이 다르다. 물건을 비우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다. 오랫동안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면서 살아왔지만 여전히 우리 집에는 물건이 많이 있다. 내 물건이 아니라 가족들의 물건도 많고 선물 등 뜻밖의 물건들이 갑자기 등장하기도 한다. 주기적으로 한 번씩 집안의 물건을 모두 끄집어내어 정리를 하는데 싹 다 버려버리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우리 집에서 배출할 물건을 고르고 나면 중고거래를 하거나 기부를 하거나 양도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사용하도록 한다. 취향에 맞지 않고 내 마음에 별로 들지 않은 물건도 최대한 끝까지 사용하고 버리려고 노력한다. 쓰레기를 만드는 일은 잘못된 일임을 잘 알고 있다.




집에 용량이 너무 많아 사용하기가 지겨운 제품들은 사용하면서 반성한다. 대용량제품과 1+1 제품은 제대로 아껴서 사용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양이 많아 헤프게 쓰게 된다. 새로운 물건을 사기 전에 집에 가진 물건들을 우선적으로 다 사용하리라 다짐한다. 물건이 하나밖에 없었다면 그 존재가 매우 고마웠을 것이다.




박박 긁어 사용하고도 모자라 가위로 반을 갈라 끝까지 사용하고 나면 뿌듯한 기분이 든다.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주변 지인들에게 선심 쓰듯이 나누어 주는 것은 오히려 어쩔 수 없는 베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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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들을 비우면서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취향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생겼다. 옷과 신발, 가방, 화장품 등 꾸밈에 필요한 것들은 많이 줄었다. 꾸미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가짓수가 얼마나 많은지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제품을 잘 관리하여 오랫동안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나저러나 물건을 비우고 후련한 감정을 가졌음이 틀림없다. 물건이 줄어들자 빈 공간이 생겼다. 경제관념이 많이 바뀌었고 소비가 줄었다. 집안일은 줄어들었고 하루 종일 바빴던 일상을 쪼개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 시간을 쓰게 되었다.




그때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가졌다. 그전까지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잘 몰랐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집중하려고 하니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했다. 복잡한 것이 싫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했다.




요즘에도 물건이 쌓여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들면 작은 공간을 하나씩 비우는 작업을 해 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물건이 쌓이고 귀찮다고 미루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다 사용한 물건을 비우고 집안에 물건이 얼마나 있는지 재고정리를 하는 일은 내 삶에 꼭 필요한 일이 되었다. 냉장고 속에 어떤 음식들이 있는지 살펴 버려지는 재료 없이 알뜰하게 요리를 하고 화장품과 생필품 샘플들까지 야무지게 사용해서 돈을 절약하는 일이 내게는 중요하다.




처음 비우면서 가졌던 후련한 감정을 잊지 않고 싶다. 필요 없는 것을 비우고 필요한 것만 남기면 된다는 간단한 방식이었다. 고민하고 신중하게 결정하면서 반성하고 후회하고 나에게 맞는 방법을 추구하게 되었다. 다시는 답답한 공간 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심플한 공간에 살고 싶다. 집이 휴식의 공간이자 편안한 장소이기를 바랐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의 나를 계속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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