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 아래서
봄이 깊어지는 어느 날이 되면 길거리에 하얗게 꽃 피운 이팝나무들이 보인다. 어린 아이들은 우스꽝스러운 그 이름에 '이팝나무', '조팝나무' 조잘거리며 나무 아래를 지나곤 한다. 푸른 하늘 아래 바람결에 춤추는 이팝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종종 그 하얗고 보드라운 꽃잎이 내게 손짓하는 것 같았다. 가지와 이파리 사이로 흩어지는 그 바람이 내 손가락 사이를 지나며 나도 이팝나무처럼 춤출듯 했다.
누군가는 이팝나무를 보며 눈 같다고도 했다. 연두빛 나뭇잎 위에 하이얀 꽃잎으로 뒤덮인 나무를 보면 눈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그 모습을 보며 따스한 밥 한공기를 떠올렸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그 시기, 한가로이 이팝나무의 흩날리는 모습을 보며 감상에 빠질 수는 없었다.
선조들은 고봉 가득히 눌러 담은 하얀 밥처럼 꽃 피워낸 이팝나무가 그리도 부러웠을 것이다. 쌀이란 것이 본디 귀하여 이씨 왕조나 먹을 수 있는 밥이었기에, 이씨의 밥이라하여 이밥나무,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잎이 밥 같다 하여, 잎밥나무,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어떤 이야기이든 이팝나무는 우리 선조들에게 쌀밥을 닮은 그리움이었다. 따스한 밥 한 공기 실컷 먹지 못하고, 먹이지 못하는 그 설움이 꾹꾹 눌러 담긴 이름이었다. 배고프다며 칭얼거리는 아해더러 부모는 해줄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음에 많이도 서글펐을 것이다. 부모에겐 자신의 배고픔보다 자식의 배고픔이 큰 법이다.
어릴 적, 넉넉치 않은 형편에 우리 가족은 어쩜 이팝나무 같은 그리움을 항상 가슴 한 켠에 쥐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 부족과 결핍이 적어도 내 마음 속엔 여전히 남아 있다. 삶으로부터 오는 괴로움, 목구멍으로부터 오는 괴로움. 자식이 셋이나 되었던 우리 집은 목구멍이 특히나 많아 부모님이 자주 괴로우셨을 것이다.
어른이 되고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어른이 되고서야 이해되는 것들이 있다. 부모의 가난 또한 그러한 것이다. 누군가는 이팝나무를 보며 감상에 젖지만 누군가는 이팝나무를 보며 쌀밥을 그리워한다. 굳이 뽑자면 우리 가족은 후자에 속했다.
하지만 그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쌀밥을 향한 그리움, 그저 아비만 바라보며 참새새끼마냥 입벌리고 있는 자식들, 그 목구멍들을 챙기기 위한 그 날 그 날의 힘겨운 노동. 그 모든 것들이 삶의 한 조각이고 숭고한 사랑의 한 조각이었다. 서른이 넘으니 이제야 보이는 것들이다.
과거 어느 날, 어떤 어미는 자식을 데리고 이팝나무 앞에 서서 언젠가 저리도 꾹꾹 눌러 담은 따스한 흰 쌀밥을 주겠노라 약속했을지 모른다.
과거 어느 날, 나의 어머니 아버지는 언젠가 형편이 나아지면 해주겠노라 수많은 '이팝나무들'을 읖조리곤 했다.
쌀밥을 닮은, 쌀밥을 향한 그리움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