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취향

작고 소박하며 주류가 아닌 것들

by 김유니아


며칠 전 수목원을 찾아 '들꽃의 속삭임'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숲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들꽃에 대해 배우는 자리였는데 다 큰 어른들이 기꺼이 허리를 낮추고 고개를 숙여 풀꽃을 관찰하는 일이 꽤나 재밌었다. 숲 속에 난 길을 무심코 걷는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풀꽃들 하나 하나를 만나 그들에게 인사했다. 초록 우거진 숲 속에서 빼꼼 고개 내민 예쁜 풀꽃들. 이 예쁜 풀꽃들을 보고 있자니, 나태주시인이 왜 그렇게 노래했는지 알 것도 같다.






매 발톱을 닮아 이름 붙은 매발톱꽃





들판에서 자주 마주하던 색색깔 씀바귀





벼룩처럼 작아도 자리잡고 꽃 피우는 벼룩나물








오래 피어 있기 위해 한 번에 다 꽃 피우지 않을 줄 아는 영리한 뽀리뱅이






이들 말고도 병아리꽃나무, 광대나물, 콩제비, 냉이, 벼룩이자리, 괭이밥... 정겨우면서도 입에 잘 붙는 그 이름들이 참 귀하다.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토끼풀, 민들레 정도야 알았지. 이름을 알지 못했던 풀꽃들이 이리도 많았구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친해진다는 것.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땅 가까이 몸을 낮추고 생소한 풀꽃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문득 나는 깨달았다. 나의 취향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는 것을. 나는 화려함보다 소박함에, 다수보다는 소수에, 주류보다는 비주류에 끌렸다는 것을.


나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 사실은 무던히도 주류에 속하고자 발버둥 치던 나날들이었다. 성실히 학교에 나가가고, 취업을 하려 아둥바둥도 하고, 취업 후엔 돈 조금 더 벌어보겠다고 재테크며 뭐며 하루 몇 시간씩 또 공부를 했었다. 무던히도 애를 썼었다. 그게 이 사회가 정해 놓은 큰 물결 속에 내 몸을 안전히 맡길 수 있는 길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할 수록, 나는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비주류라는 사실을. 나름의 성과를 낸 내 모습이 언뜻 보면 주류처럼 보이는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마음 깊은 구석에서는 여전히 비주류의 불안정한 내가 있었다.

그래서 그랬던 것 같다. 주류 보다는 비주류, 다수보다는 소수,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에 눈길이 갔다. 음악을 들어도 내 마음을 건드린 가수들은 그런 가수들이었다. 시아(sia)가 어둠 속 숨겨진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레이디가가가 세상의 편견에 맞서 소수자의 편에 섰을 때, 난 그들의 노래를 즐겨 들으며 응원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도 화려한 주인공 격의 작품들 보다는 소박하고 한 구석에 놓인 녀석들에 눈길이 더 갔다. 마치 그들이 내고 있는 소리가 나 같아서.


풀꽃을 관찰하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지난하다. 하지만 풀꽃은 기꺼이 몸을 낮추고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에게 그만한 가치 있는 이야기를 건넨다.

풀꽃은 천천히 거닐어야 보인다. 빠른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는 절대 볼 수 없다. 앞만 보고 걸어서도 볼 수 없다.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풀꽃을 마주하려면 좀 더 몸을 낮추고 천천히 음미할 줄 아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만날 수 있다.

풀꽃은 잘 닦인 화단이 아니라, 울퉁불퉁 흙길에 이리저리 난다. 풀꽃은 네모 반듯한 화단에 사람들이 열을 맞춰 심어놓은 꽃과 다르다. 울퉁불퉁 흙길에, 돌틈 사이에, 볕이 잘 들지 않는 나무 아래 그 어디에서라도 이리 저리 어지러이 피어난다. 내가 피어난 곳이 흙먼지 뒤덮인 곳이든, 잡초와 엉크러져 나를 뽐내지 못하는 곳이든 그 어디든 개의치 않는다.

풀꽃은 어떻게든 꽃을 피우고 죽음을 맞이한다. 환경이 거칠거나, 냉해를 입어도 풀꽃은 어떻게든 작게라도 꽃을 피우고 나서야 생을 마감한다. 열매를 맺는 나무나 다년생 식물들은 꽃이 피고 수분이 이뤄지고, 열매가 익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해 환경이 불리하면 열매를 맺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풀꽃은 그러는 법이 없다. 씨앗을 남기기 위한 마지막 몸짓처럼, 풀꽃은 어떻게든 꽃을 피운다. 풀꽃의 삶은 치열하다.


풀꽃은 치열하고 생명력이 강하다.

비주류는 오늘도 치열하다. 그리고 생명력 또한 강할 것이다.

풀꽃도 비주류도 눈에 띄진 않는다. 그러기에 더욱 꺾일 일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이런 천성적 비주류, 풀꽃 취향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더 강해질 것이다. 풀꽃처럼.


이 글은 작고 소박하고 주류가 아닌 것들에 마음이 끌리는 나의 조용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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