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한 Sep 11. 2024

예민한 사람들이 느끼는 삶

나에게만 보이는 이야기


나에게 있어 '예민하다'는 단어는

옆사람이 물을 마시는 소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는 것도 아니고

앞집 할머니가 틀어놓은 트로트 소리에 잠을 못 잔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예민함으로써 느껴지는 모든 것들은 결국 감정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친구들과 오랜만에 다같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동창회 같은 거라고 해야할까?

그런 자리에서도 나는 

누가 누구와 사이가 안 좋았는지

누가 누구를 불편해하는지, 

누가 집에 가고 싶어하는지

세세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 서로가 안 좋은 감정이 덜 느껴질 수 있도록

둘이 있는 자리를 일부러 만들지 않거나,

집에 가고 싶어하는 친구를 몰래 집에 보내주거나

다른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사이가 안 좋은 친구들이

마주치지 못하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 예민하다고 해서

내가 섬세한 사람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 위에 적힌 글씨를 보고

아 이사람은 오늘 재수가 안좋았구나, 이 강아지는 오늘 밥을 못먹었구나 

하고 알아차리곤 한다. 

영화를 볼 때에는 저런 초능력이 있으면 참 편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주인공도

참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것 같다.




엄마가 오늘 힘든 하루를 살았다는게 나는 너무나도 뚜렷하게 보이는데

아빠는 그걸 알아차리지 조차 못하고 자기 자신의 불평불만만 늘어놓으면

여기서 더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에

나는 너무 피곤함을 느껴버린게 아닐까


이제는 보여도 못본척

알고 있어도 모르는척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은 내가 살아남는게 더 중요하니까

내가 힘이들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나를 위해서 한 선택이다.


이러다 언젠가 꽃피는 봄이 오면

내가 나를 감당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면

다시 한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날이 올지도

남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전 03화 섬세한 사람들은 누구보다 많이 상처받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