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만 보이는 이야기
나에게 있어 '예민하다'는 단어는
옆사람이 물을 마시는 소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는 것도 아니고
앞집 할머니가 틀어놓은 트로트 소리에 잠을 못 잔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예민함으로써 느껴지는 모든 것들은 결국 감정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친구들과 오랜만에 다같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동창회 같은 거라고 해야할까?
그런 자리에서도 나는
누가 누구와 사이가 안 좋았는지
누가 누구를 불편해하는지,
누가 집에 가고 싶어하는지
세세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 서로가 안 좋은 감정이 덜 느껴질 수 있도록
둘이 있는 자리를 일부러 만들지 않거나,
집에 가고 싶어하는 친구를 몰래 집에 보내주거나
다른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사이가 안 좋은 친구들이
마주치지 못하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 예민하다고 해서
내가 섬세한 사람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 위에 적힌 글씨를 보고
아 이사람은 오늘 재수가 안좋았구나, 이 강아지는 오늘 밥을 못먹었구나
하고 알아차리곤 한다.
영화를 볼 때에는 저런 초능력이 있으면 참 편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주인공도
참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것 같다.
엄마가 오늘 힘든 하루를 살았다는게 나는 너무나도 뚜렷하게 보이는데
아빠는 그걸 알아차리지 조차 못하고 자기 자신의 불평불만만 늘어놓으면
여기서 더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에
나는 너무 피곤함을 느껴버린게 아닐까
이제는 보여도 못본척
알고 있어도 모르는척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은 내가 살아남는게 더 중요하니까
내가 힘이들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나를 위해서 한 선택이다.
이러다 언젠가 꽃피는 봄이 오면
내가 나를 감당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면
다시 한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날이 올지도
남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