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휴가 30일을 포르투갈에 모조리 때려 박다
* 본 글은 세상에없는여행의 코딩여신 향팀장의 30일 안식휴가 후기입니다
팀장 달면 괜찮아질 거야, 팀장이면 이 정도는 받겠지. 모두 큰 착각이었을까. 늘어난 연봉과 명함만큼 나에게 다가온 부담감과 책임감은 막중해졌다. 스타트업의 초기 멤버로 비교적 이른 나이로 팀장을 달았다. 하지만 한 회사에서 그것도 처음 사회생활을 한 회사에서 연속으로 3년을 버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내가 다니는 세상에없는여행은 만 3년을 채운 직원에게 안식휴가를 30일간 제공한다. 정말 힘든 순간도 많았던 3년이었다. 하지만 이 날을 위해 버티고 또 버텼다. 30일짜리 초장기 휴가를 가기 전 기대와 설렘도 많았지만 그만큼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았다. 30일의 휴가는 다른 말로 30일의 야근이다.
연속 야근에 정신병이 걸릴 것 같았지만 버텼다. 난생처음 월급 받으면서 신나게 놀 수 있는 기회였으니깐.
" 왜 포르투갈로 갔을까?"
한 달이다. 무려 한 달. 이론적으로는 유럽 전체를 여행하는 배낭여행도 가능했다. 업무 때문에 동남아만 몇 년 재 간 나를 유혹하는 패키지가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입사 초기부터 느긋하게 한 도시에서 살아보는 '한 달 살기'를 꼭 도전하고 싶었다.
사실 3년간 어떤 일이나 전속력으로 달렸던 나에게 배낭여행처럼 빡빡한 여행은 또 다른 업무로 다가올 것 같았다. 친구들은 여행사 팀장이 30일 동안 여행을 간다니 꽤 특별한 곳으로 가겠구나라고 생각하곤 했다. 직업병이 무섭다고 실제로 나는 처음 휴가 계획을 세울 때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꼈다. 휴가 계획의 틀이 업무 계획과 닮아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모든 계획 파일을 삭제했다. 누가 보면 꼭 업무 기획안 같이 생겼던 엑셀 계획표. 결국 나는 휴가지를 정할 당시 꼭 한번 유라시아 대륙의 끝인 포르투에서 한 달을 살아보겠다고 결정했다.
포르투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다. 바닷가 마을이기도 하며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석양이 나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방송에 여러 번 소개가 되긴 했지만 막상 짧은 일정으로는 갈 수 없기에 이번 기회에 가기로 한 것.
떠나기 전 준비했다
떠나기 전 난 아래의 3가지를 강조하면서 준비했다.
1. 회사 메신저를 차단하라
팀장은 수시로 보고를 하고 보고를 받는다 네이트온으로 업무를 하는 우리 회사에서 하루에만 최소 200개의 네이트온 메시지가 쌓이곤 한다. 분명 포르투에서 심심함을 느끼면 무의식 중에 네이트온을 켤 것이다. 그리곤 자연스레 노트북으로 급하다 생각하는 업무를 하겠지. 결국 과감하게 어플을 삭제해 버렸다. 이렇게 쉬운 것을.
2. 현찰을 줄이고 또 줄이자
유럽은 소매치기가 직업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좀도둑이 많은 곳이다. 특히 중국과 한국 여행자들은 현찰이 많다는 소문이 커뮤니티에 퍼지기라도 한 것 같다. 동아시아 여자인 나는 그 도시의 하이에나들에게 아주 좋은 먹잇감. 포르투 시내에서도 쉽게 ATM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현찰은 공항 도착 후 사용할 분량만 유로로 환전했다.
3. 포르투 지도 외우기
외국에선 구글맵만 있으면 생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왕 작은 도시에서 한 달 머물기로 했으니 아날로그 지도를 외워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길을 잃어 10분 거리의 숙소를 1시간 가까이 돌아가기도 했지만 덕분에 단골 카페를 알게 된 계기도 되었다.
한 달 동안 이것만큼은!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타국에서 그것도 덜 유명한 포르투라는 곳에서 보내니 자연스럽게 난 특이한 버릇이 생겼다.
1. 혼자서 메뉴 많이 시키기
한국에서 혼밥을 할 땐 보통 메뉴를 1개 정도 시킨다. 하지만 새로운 도시에서 매일 같이 새로운 식당을 방문하니 자연스레 호기심이 많이 생겼다. 가격대가 지나치게 높지 않으면 2개 이상의 메뉴를 시키는 습관이 생겼다.
2. 우버와 택시보단 대중교통을
처음엔 교통비라도 아낄 생각으로 우버와 택시를 이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오히려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니 처음 한 달 살기를 생각했던 현지인처럼 살아보기 목표에 더 가까워진 느낌. 나중엔 예산이 많이 남은 날에도 거의 걸으며 도시 정취를 느끼거나 스트릿카를 애용했다.
3. 포르투갈어가 조금 늘었다!
영어를 써도 포르투는 어느 정도 관관객 임을 인지하고 그에 맞게 대해줬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 더 깊이 들어가고 싶었던 나는 물 한 병을 사더라도 Water 대신 agua 라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했다. 어눌한 발음이긴 했지만 새로 사귄 친구에게 몇몇 문장은 포르투갈어로 말할 정도로 실력이 약간 향상되었다!
다시 가도 포르투
포르투에 도착하고 3~4일 정도는 겁에 질려 숙소에만 있었다. 어차피 쉴 목적으로 찾은 도시니 보고 싶었던 넷플릭스 드라마나 실컷 보았다. 하지만 딱 일주일을 넘길 때 두려움보다 지루함이 더 커졌고 차츰 밖으로 나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느새 나는 골목을 현지인처럼 거닐기도 했고 뿅망치 축제인 '성 주앙 축제'도 즐겼다.
또 단골 기념품 가게의 사장과 친구가 되어 몇 번 정도 알바 형식으로 가게를 봐주기도 했다. 한 달 살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조금씩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또다시 3년 후에나 안식 휴가가 생길 것이다. 그때도 아마 포르투에 다시 찾아가지 않을까? 조용한 항구도시지만 확실히 나를 끌어당기는 마성의 매력이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