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the youth gone wild
어른이 되면 캐나다에서 살겠다던 어린 시절의 당찬 포부. 하지만 현실은 30살이 되도록 캐나다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냥저냥 버킷리스트로 남겨 놓는 것도 한계가 생길 무렵 매우 좋은 핑계가 생겼다. 2019년 당시 결혼을 앞두고 있던 우리 커플. 현 아내 구 여친인 J는 20대 초반 우연한 기회로 방문한 캐나다에 짙은 향수를 느끼고 있었다. 마침 J는 부당함이 넘치던 광고대행사를 과감하게 퇴사했다. 그리곤 자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준 국가인 캐나다에 다시 가보고 싶다 했다.
J가 20대에 갔던 캐나다는 동부 온타리오주의 토론토였다. 하지만 으레 캐나다 하면 압도적인 스케일의 자연을 생각했던 나에게 도시 여행지는 그리 큰 매력을 주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적금통장까지 깨면서 총 15일 동안 동부와 서부 모두를 여행하기로 했다. 나의 로키산맥 여행에 대한 욕망과 J의 추억 회상 여행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시간은 흘러 2019년 10월. 우리는 밴쿠버를 거쳐 캘거리로 향하는 에어캐나다 항공기에 몸을 던졌다. 다리가 부을 정도로 긴 비행시간 뒤 우리는 공항 공기마저 달랐던 캘거리 공항에 도착을 했다.
1위 국립공원 로키
북유럽 신화의 장난꾸러기 신 '록키'와 의외로 아무 관련이 없는 로키산맥. 북미 대륙의 서쪽 전반에 걸쳐 이어진 이 거대한 산맥은 그 규모가 워낙 방대해 단 하루 만에 돌아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가장 유명한 밴프 국립공원과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재스퍼 국립공원, 그리고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은 요호 국립공원까지. 3가지 국립공원 권역을 모두 둘러보기 위해선 최소 7일의 일정이 필요하다. (BC 주에서 육로로 출발할 경우 쿠트니 국립공원도 들릴 수 있긴 하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밴프를 향해 렌터카를 몰고 싶었지만 장거리 비행 후 장시간 운전은 컨디션 조절 실패의 원인이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캘거리 에어비앤비에서 숙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민자들 사이에서 캘거리가 시골이라고 소문이 났지만 나에겐 이 정도도 꽤나 도시. 한적한 주택단지에 도착했을 땐 10월임에도 굉장한 눈이 쌓여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오기 전날 캘거리에는 100년 만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고 한다. 자칫 하루만 일찍 도착했어도 공항을 빠져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캘거리에서 밴프로 들어가면 물건 값이 비싸진다기에 우리는 유통기한이 긴 식재료와 물을 캘거리 시내의 마트에서 구매했다. 다행히 2인 여행에 중형 SUV를 빌린지라 캐리어 3개와 장을 본 물건 모두를 때려 박아도 공간은 넉넉했다. 약 1시간 20분 정도 북쪽 도로를 향해 렌트카를 슬슬 밟아주니 차가운 공기와 함께 눈까지 시원해지는 로키 산맥이 시작되고 있었다.
첫날에는 밴프 국립공원의 여행지를 2개 정도만 가기로 했다. 이미 캘거리에서 늦게 나오기도 했고 우리의 숙소는 밴프 시내가 아닌 '데드 맨즈 플렛'이라는 밴프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라 시간 안배를 잘해야 했다. 이곳은 국도가 잘 닦여 있긴 하지만 밤에는 가로등 하나 없기에 운전이 위험해진다.(야생동물이라도 나오면...)
참고로 밴프/재스퍼/요호 국립공원은 모두 하나의 티켓 패스로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다. 차량 1대당 N명의 가족이 하나의 요금으로 묶여 계산된다. 우린 7일권을 구매했다. 톨게이트 직원이 머무는 기간과 사람 수를 말하면 알아서 가장 저렴한 경우의 수를 찾아 표를 끊어 준다. 이 티켓을 안쪽 전면 유리창에 붙이기만 하면 된다.
첫 목적지인 미네완카 호수는 밴프 국립공원 요금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30분 내외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캐나다 여행 중 가장 많이 보는 풍경이 산과 호수라는데 우리는 그 호수 중 하나를 본 것이다. 꽤 규모도 큰 미네완카 호수. 호수를 관광하는 유람선도 있다곤 했지만 우리 커플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이렇게 그냥 호숫가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었다. 여름 시즌엔 이곳에서 낚시를 할 수 있는데 주 어종은 송어다. 그 크기가 1m는 가까이 된다고 하니 정말 괴물이 따로 없다.
사실 나는 트레킹과 등산을 혐오했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의 극성맞은 등산문화를 싫어하는 것이다. 한국의 등산은 일단 '강압적'인 면모가 강하다. 한국에서 보통 인생 첫 등산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보다 정상을 찍어야 한다는 목표의식과 경쟁심을 교육받는다. 또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높은 확률로 나이 많은 상사나 부장/대표가 주말 등산을 강요한다. 군국주의의 산물인 집단행동은 이렇게 레저 문화까지 변질시켰다.
하지만 내가 캐나다 여행 중 자발적으로 했던 가벼운 등산과 트레킹은 그 누구도 나에게 어디까지 가라는 명령을 하지 않았다. 가다가 힘들면 다시 차로 돌아가면 그만. 그렇기에 더욱 주변 풍경을 한껏 바라볼 수 있었다. 캐나다 여행 중 처음 만난 트래킹 코스인 '존스턴 캐년'은 경사도 완만했지만 우선 공기가 굉장히 청량했다.
피톤치트 엑기스를 호흡기로 직접 삽입하는 느낌이었다. J와 나는 연신 카메라로 서로를 찍어주면서 트래킹 과정 자체를 즐겼다. 땅만 보고 걸었던 수많은 강압적 등산과 비교하니 여긴 정말 천국이었다. 이렇게 등산을 즐기다 문득 난 깨달음을 얻고 J에게 말했다.
"어? 나 등산 좋아하네??"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전국의 자칭 등산 애호가 부장님 혹은 대표님들께 고한다. 당신 부하 직원은 등산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당신과 함께 '강제로' 가는 등산을 싫어하는 것이다.
존스턴 캐년의 폭포는 로어 폭포와 어퍼 폭포가 있다. 상단 폭포가 더 멋지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해가 질 것 같아 로어 폭포만 감상하고 하산했다. 등산로가 잘 가꾸어진 터라 등산화 없이도 가벼운 운동화 만으로 산책하는 기분으로 이곳을 걸을 수 있다.
캘거리 공항 렌트카 이건 알아두자
밴프 여행에서 자동차 렌트는 사실상 거의 필수다. 물론 여행사 상품을 활용하거나 대중교통 등을 이용할 수 있긴 하지만 굉장히 번거롭다. 공항에서 바로 렌트카를 빌릴 수 있다. 한국에서 사전 예약을 하는 것이 비교적 저렴하다.
1. 겨울에는 SUV
여름철에는 소형 세단으로도 로키를 누빌 수 있다. 하지만 겨울 시즌 로키는 예고 없이 큰 눈이 내리기도 한다. 10월이면 의무적으로 렌트카 업체들이 모든 차량의 타이어를 스노 타이어로 교체한다. 그렇지만 2륜 구동 소형 세단은 로키의 얇게 눈이 쌓인 빡센 언덕길을 오르기 힘들 것이다. 가급적 비용이 들더라도 SUV를 추천
2. Additional CDW
렌트카를 빌릴 때 무조건 보험은 최대치로 올리는 것이 좋다. 캐나다는 대부분 완전면책 자차 보험이 없다. 로카 여행을 하다 보면 도로가 지나치게 한산해 차량 간 사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야생동물 로드킬, 낙석에 의한 유리 파손 등은 종종 일어난다. 이를 대비해 사고 시 자기 부담금이 없는 CDW 보험을 가입하는 것을 추천한다. 보험비용을 아끼다 대자연의 위엄에 무릎을 꿇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