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다 가는 곳을 가보자
남들 다 간다는 그런 곳이라면 무조건 가야 하는 J. 한국의 지방 도시나 서울에서 데이트를 하게 되면 이런 것 때문에 J와 나는 종종 싸웠다. 지금도 그런다. 나 또한 철저한 경험주의 자이지만 J는 나와 결이 달랐다. 무언가를 해 보고 '재미없네'라는 것을 느끼는 것도 중요한 경험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곳은 로키산맥. 나나 J 모두 로망이 있던 곳이기에 둘이 꼭 방문하고자 하는 명승지는 비슷했다. 밴프 국립공원에 있으니 여행책자에서 극찬을 했던 곳은 꼭 가야겠다 생각했다. 캐나다 여행을 하며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숨겨진 호수도 많이 봤지만 확실히 유명한 곳은 다르긴 했다.
로키 여행의 시작, 벤프
우선 우리 로키 여행의 베이스캠프 같은 밴프 시내를 잘 알아둬야 한다. 나의 숙소는 밴프 시내는 아니었지만, 육류 및 음료 등을 구매하는 마켓이 밴프 시내에 있어 하루하루의 여행이 끝나면 무조건 들렸던 곳이다. 극성수기의 밴프 시내는 주차 대란이 일어날 정도로 큰 규모의 시내는 아니다.
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마트(캘거리보다 물가는 높다), 주유소, 식당이 꽤 많이 있어 단체 관광객들은 밴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읍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는 굉장히 아기자기하며 캐나다스러운 건물이 많아 이 자체로 여행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주차는 기본적으로 무료주차장이 대부분이다. 곳곳에 P라고 표시된 녹색 표지판 일대는 모두 주차가 가능하다. 주차장이 꽉 찰 경우 도로 한쪽으로 주차를 허용하는 구간도 있다. 다만 이 경우 보통 2시간 이내까지만 허용되며 표지판에 표시되어 있으니 이를 꼭 지키도록 하자.
고등학교 시절 유키 구라모토의 레이크 루이스를 들으며 도대체 레이크 루이스는 어떤 호수이길래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로 표현되었을까 궁금했다. 캐나다 여행을 가기 전 유튜브로 레이크 루이스 음악을 다운로드하기도 했다. 이곳에 도착하면 꼭 그 음악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단 호수 자체와 랜드마크인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스 호텔'은 정말 멋짐 그 자체였다. 물에 마치 페인트라도 풀어놓은 듯 너무나도 채도가 선명한 호수와 거대한 산맥은 故 밥 로스 아저씨가 즐겨 그렸던 유화 풍경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나는 간과했다. 지구 반대편 내가 알 정도의 호수라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임을.
조용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기대했던 나는 태어나서 가장 많은 중국인 관광객을 마주하게 된다. 뭐 어느 나라 사람이건 여행자는 여행자기 마련이지만, 다들 알지 않는가. 그들의 관광은 데시벨이 다른 것을. 정신이 너무 사나워 얼른 이어폰으로 귀를 막았다.
하지만 눈 앞에서 빨간색 등산복을 입고 뛰어다니는 중국 아주머니들을 막강한 비주얼은 막지 못했다. 나와 J는 결국 얼른 산책로만 돌아본 뒤 차로 돌아왔다.
참고로 레이크 루이스도 주차가 굉장히 힘든 곳이다. 비수기에 왔음에도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설 정도. 보통 국도 중간에 있는 대형 주차장에 차를 대고 셔틀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오버플로우 주차장) 하지만 우리는 운 좋게 레이크 루이스 입구에서 약 300m 밖 작은 공터 같은 주차공간을 발견해 그곳에 주차를 했었다.
그런데 차를 빼려고 그 공터에 가니 한 인도인 여행자가 다급하게 우리를 향해 뛰어와 말했다.
"너네 차 근처에서 늑대 몇 마리가 있었어! 조심해! 근처에 아직 있을 수 있어"
우린 겁에 질려 얼른 차에 올라 그 자리를 떠났다.
다음날 찾아간 남들 다 가는 곳은 바로 모레인 호수. 레이크 루이스보다는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내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다. J와 여행 사진을 들여다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호수로 동시에 뽑은 곳. 특히 일축 직후 찬란한 빛이 비치는 모레인 호수는 꿈에 나오길 기도할 정도다.
할 수 있다면 여기에 집을 짓고 살고 싶을 정도다. 빙하가 녹은 물이 만들어 낸 이 작품은 한때 캐나다 화폐 중 20$짜리에 그려질 정도였다. 모레인 호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사실 새벽 기상 후 일출에 맞춰 가야 한다. 여긴 로키여행 중 가장 주차가 힘든 곳이기 때문이다.
새벽 4시에 기상해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의존해 1시간 정도 운전을 하니 모레인 호수에 도착할 수 있었다. 10월이지만 이미 겨울 정도로 추웠기에 우리는 일출 시간 전까지 차에서 덜덜 떨었다. 캠핑 매니아들은 이곳에서 캠핑카를 이용해 숙박을 하기도 했다.(RV 전용 주차 공간이 있었다)
그렇게 1시간, 2시간 기다리니 주변이 푸르스름 해지면서 사람들이 슬슬 호수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와우! 주차장은 이미 만차. 누군가 새벽 5시가 거의 마지막 입장시간일 것이라 말한 것이 사실이었던 셈. 사실 이곳도 레이크 루이스와 마찬가지로 유료 셔틀(오버플로우 주차장에서 출발하는)을 이용할 수 있긴 하다.
호수 앞에 서서 일출이 시작되자 점차 감탄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호수는 너무나도 예쁘고 멋지지만 날씨가 눈이 오기 직전이라 흐렸다. J와 나는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캘거리로 가기 전에 한번 더 보자"
로키 운전 3 계명
캘거리 시내를 무사히 문제없이 빠져나올 정도라면 이미 캐나다 운전엔 적응했다 보면 된다. 하지만 그래도 로키산맥이라는 거대한 대자연은 우리 운전자들에게 종종 시련을 주기도 한다. 아래 3 계명을 꼭 기억하자.
1. 멀리멀리 보자
비수기인 겨울 시즌엔 야생동물 보기 힘들다지만 그래도 우린 나름 야생동물을 종종 봤다. 밴프 국립공원 쪽은 도로와 산이 맞닿은 부분엔 모조리 큰 펜스를 쳐 로드킬이 거의 없긴 하지만 가끔 사슴 정도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운전 시 최대한 멀리 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차피 자연 풍경을 보느라 멀리 보는 것이 습관이 되긴 하지만.
2. 나도 모르게 150km/h
차량 성능이 좋은 편이라면 속도감이 잘 나지 않는다. 특히 "50km 앞 좌회전입니다"라는 말도 안 되는 내비게이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방대한 로키 국립공원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끝없이 펼쳐진 직진 도로를 다른 자동차 없이 달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과속을 하기도 한다. 캐나다는 과속에 엄격하여 암행 순찰차에 잡히면 벌금이 강력하다.
3. 사람이 모인 곳엔 동물 친구들이
밴프보단 재스퍼 국립공원이 펜스가 거의 없어 야생동물 만나기가 쉽다. 차량들이 갓길에 주차를 하고 모여있다면 엘크, 무스, 흑곰 등을 구경하는 것이다. 조용히 그들의 뒤에 다가가 차를 멈추고 비상등을 켜 놓자. 분명 동물 친구들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동물원 밖 동물친구들은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