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고 의사의 처방을 받아 약을 먹는다. 하지만 마음이 아플 땐 어디로 가야 할까? 나에게는 서재가 병원이었고, 책이 약이었다. 깊은 우울의 터널을 지나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내 마음에 약이 되어준 책 3권을 소개하려고 한다.
첫 번째 처방, 상실의 고통 속에 있을 때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유산 후 끊임없이 나에게서 잘못된 이유를 찾고 있었다. 나를 탓하고, 세상을 원망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불행이 나에게만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때 만난 책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였다. 저자는 나치 수용소라는 지옥 같은 곳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최악의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딘다'라는 니체의 말에는 이런 예지가 담겨있다. 이 말에서 정신 치료에도 유용한 어떤 좌우명을 찾을 수 있다."라고. 그의 처절한 생존기를 읽으며 내 삶을 내 고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나치 수용소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는 저자를 보며 인간의 위대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분명 나의 이 상실에도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 책은 멈춰버린 내 삶에 다시 숨을 불어넣어준 가장 강력한 심폐소생술이었다.
두 번째 처방, 남과 비교하며 무기력해질 때 : '시작의 기술'
책을 읽고 필사를 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기록을 남겼다. 처음에는 한없이 즐겁게 시작을 했지만 또다시 비교의 마음에 잠식되고 있었다. 비슷하게 시작한 인친들 중 나보다 더 팔로워도 금세 늘고 콘텐츠도 터지는 분들이 있었다. 그에 비해 성장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되다 보니 비교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며칠 동안 콘텐츠를 올릴 수 없었다. 모든 게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보게 된 책이 바로 '시작의 기술'이었다.
이 책은 위로보다는 뼈 때리는 직설을 날려줬다. 이때의 나에게는 이 책이 명약이었다. "우리가 뭔가를 미루거나 회피하는 이유는 그 일을 하고 싶지 않거나 할 수 없다고 이미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식이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저 핑계를 대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데 ~ 잘 안되라며 핑계를 대고 있었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넌 할 수 없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부터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몸을 움직였다. 이 책 덕분에 남과 비교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꾸준히 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어떤 것보다 강력한 부스터가 되어 주었다.
세 번째 처방, 다시 세상으로 나갈 용기가 필요할 때 : '세이노의 가르침'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며 마음이 많이 회복되었지만 다시 취업을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3년이라는 경력 단절의 시간, 실패에 대한 기억, 다시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같은 것들이 내 마음을 흔들어 댔다. 굳이 힘든 직장 생활 대신에 이대로 적당히 지내고 싶다는 유혹도 있었다. 그때 용기를 준 것이 바로 '세이노의 가르침'이었다.
저자는 그저 다정하게 위로만 해주진 않았다. 따끔하게 말했고,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었다. 그동안 두렵다는 핑계로, 다시 직장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 모른 척하고 있었다. 내가 당장 해야 할 몫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회복은 책 뒤에 숨는 것이 아니라 다시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 덕분에 지인에게서 제안이 왔을 때 피하지 않고 면접을 보는 자리에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그래. 다시 한번 해보자. 안되면 다시 도전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물론 2년의 직장 생활을 한 뒤 다시 꿈을 찾아 퇴사했지만 그 2년의 시간 동안 도망치지 않고 내 삶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 가장 강력한 현실 지침서가 되어 주었다.
이 세 권의 책을 읽고 나다움과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일상도 회복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낼 수도 있었다. 결국 중요한 건 나답게 사는 법을 잊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내 삶에 찾아온 시련 덕분에 먼 길을 돌아온 것 같아도 모든 과정은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다시 책 읽고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시련이 없었다면 결코 발견하지 못했을 보물들이었다. 앞으로는 속도보다는 방향을 믿으며 묵묵히 나만의 속도로 걸어가려 한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또한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