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퇴사, 그리고 다른 시작

by 온마음


8월 초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31일 마지막 근무를 했다. 마지막 날 오후 6시, 그동안 함께 일한 직장 동료들과 대표님께 인사를 드리고, 인수인계 파일과 책상을 정리하고 나오는 길. 여전히 밖은 더웠지만 차에 타서 에어컨을 켜니 시원한 바람이 내 머리를 감쌌다. 차가운 바람이 꽤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인데 퇴사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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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5년 전 내 인생 두 번째 사직서를 내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의 공기는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그저 무거운 마음과 발걸음뿐이었다. 마지막 날 자필로 적어 제출한 사직서 한 장이 마치 내 인생의 실패 증명서처럼 느껴졌던 그날. 같은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왔지만 그 안에 담긴 내 마음의 무게는 정반대였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5년 전의 나는 유산 후 퇴사를 결정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지나는 시간 속에 시험관을 했지만 3년의 시간 동안 '실패'만 했다.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어둡고 축축한 터널을 홀로 걷는 듯한 기분으로 살고 있었다. 그때의 퇴사는 나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살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그동안 몸을 돌보지 않고 나를 소홀히 대했다는 자괴감이 나를 짓눌렀다. 유산 후 일주일의 휴가를 보내고 일주일 정도를 근무 후 사무실을 나섰다. 근무하는 일주일이 너무 괴로웠다. 사람들과 마주하며 웃을 수 없었지만 웃었고, 눈물이 날 것 같으면 화장실로 뛰어가 울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그게 내 인생에서 두 번째 퇴사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책과 필사를 통해 다시 일어섰다. 회복된 마음을 안고 사회복지사로서 입사를 하였다. 2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다. 성과도 있었고 인정도 받았으며 안정적인 월급, 소속감과 더불어 모든 것이 편안했다. 하지만 그 편안함 속에서 한편으로 마음은 소란스러웠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나에게 던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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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필사를 하며 계속해서 나는 나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도전해 보는 게 어때?'라고 말이다. 읽고 쓰는 삶,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나를 증명해 보이는 그런 삶, 그 삶이 너무 살고 싶어졌다. 더 나이가 들면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이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에서 세 번째 사직서를 썼다.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40대라는 나이는 어쩌면 더욱 안정적인 현실을 책임져야 하는 나이가 아닌가. 현실적인 고민들이 나를 붙잡았지만 남편과 상의 후 나는 6개월 정도 쉼을 갖기로 했다. 두 번째 퇴사는 견딜 수 없어 그만두었다면 이번에는 더 하고 싶은 일이 있어 그만두었다. 등 떠밀려 나온 것이 아니라 내 발로 당당하게, 내 의지로 당당하게 선택하고 걸어 나왔다. 이번 사직서는 실패 증명서가 아니라 세상으로 나아가는 출사표였다.


나는 나에게 6개월이라는 시간을 선물했다. 매일 스레드에 10개 이상의 글을 쓰고, 블로그와 브런치, 인스타그램까지 4개의 플랫폼을 오가며 글을 쓴다. 남들이 보면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쁜 것 같아'라고 말을 하지만 주어진 이 시간이 미치도록 즐겁고 행복하다.


시험관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나에게 찾아온 우울증을 독서와 필사로 이겨내고, 2년여의 직장 생활을 통해 새로운 자신감을 얻은 나는 이제 종류가 다른 밀도 있는 시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책을 읽고 만년필로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며 필사를 하는 나는 매일 조금씩 나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어쩌면 6개월 안에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길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이전처럼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던 내가 아니다. 읽고 쓰며 내 삶을 새롭게 써나가고 있는 이 과정이 결국 나를 새롭게 할 테니 말이다.


혹시 지금 이전의 나처럼 멈춰 있는 것 같아 불안하거나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의 멈춤은 도망이 아니라 더 높이 오르기 위한 도약의 걸음일 수 있다고 말이다. 나의 세 번째 퇴사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당당하게 여러분만의 길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 나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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