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째 글을 쓰고 있다. 평소 같으면 일주일도 못 가서 '나는 안되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지워버렸을 텐데 이번엔 다르다. 매일 글을 쓴다는 건 매번 글쓰기를 포기했던 나에게 매우 유의미한 일이다. 생각을 해봤다. "나는 왜 늘 다시 쓰기를 결심하는가." 쓰고, 포기하고, 쓰고, 포기하고를 반복하는지 말이다.
'우울'이라는 파도에 잠겨 헤어 나오지 못할 때 나를 건져준 건 책이었다. 침대에서 나오게 해준 건 필사였고, 그렇게 나는 일상을 회복할 수 있었다. 매일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며 새로운 꿈이 생겼다. 작가라는 꿈. 하지만 아무리 글을 써도 마음에 들지 않아 매번 지우기 일쑤였다. 그런 내가 20일 동안 꾸준히 글을 쓰고 지우지 않았다는 것은 내 스스로도 너무 감격스러운 일이다.
지우지 않은 것은 내 글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다. 그저 쓰고 있는 나를 인정해 주는 행위였다. 쓰는 것만으로도 잘 하고 있다고 나를 응원해 주는 행위였다.
십 대 때, 내 꿈은 작가였다. 처음 시작은 퇴마록, 드래곤라자와 같은 판타지 소설이었다. 이어지는 독서는 한비야 님의 여행 시리즈 책을 다 읽고 모순으로 마무리했다. 모순까지 읽었을 때 꼭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문예 창작과에도 지원을 했고 합격을 했지만 진학은 못했다. 지금이야 작가가 되는 방법이 예전보다 더 다양해졌지만 그때만 해도 신춘문예에 당선은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고, 어른들에게 작가는 여전히 배고픈 직업이었다. 부모님의 반대가 당연했다.
아쉽긴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이게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고, 삶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쓰고 또 쓰면서 나를 가다듬고 배우는 중이다. 이렇게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 나도 작가가 될 수 있겠지라는 꿈을 꿔본다.
매일 글을 쓰고 있는데 쓰다 보면 글에 내 마음을 담아 흘려보내서 그런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글쓰기에는 이런 좋은 효과도 있다. 글을 쓰고 내 마음을 뱉는 그런 행위가 내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것 같다.
아직 완결은 아니다. 여전히 우울하고, 여전히 불안하고, 때로는 슬프다. 그럴 때 예전 같으면 이불 속으로 숨어버리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글을 쓴다. 그렇게 쓰기에 다다르고 나면 한결 마음이 가볍고 좋다.
계속 글을 쓸 수도 있고, 다시 일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퇴사할 수도 있고 또 흔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나는 계속 읽고, 쓰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쓰기를 더 이상 멈추지 않을 것이다.
처음엔 40대라는 나이가 너무 많은 나이라는 생각에 내가 뭘 하겠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존경하는 김형석 교수님은 60대에 일을 제일 많이 하셨고 100세가 넘은 지금도 글을 쓰고 책을 내신다고 한다. 그분의 일화에 빗대보면 나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나의 전성기를 기대하고 준비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읽고 쓰고 있다.
불안하고,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같이 써보면 좋겠다. 꼭 쓰기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오래 미뤄둔 무언가를 다시 해보기로 결심해 보면 좋겠다. 나는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고, 당신은 무엇을 다시 시작해 보고 싶은가. 언젠가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그래도 다시 해보길 잘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