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가 되고 첫 근무지를 "요양원"으로
선택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 한 것 같다.
사회복지에도 분야가 있지만, 나에게는 어르신들이
가장 친근하고 결이 잘 맞기 때문이다.
물론 노인 복지 현장의 처우가 아쉽기로
유명하지만 말이다.
요양원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진짜 많은 일이
생긴다. 어르신들끼리 다투기도 하시고, 치매
어르신의 배회, 식사 거부, 목욕 거부, 낙상 등
수많은 돌발 상황이 하루 만에 일어나기도 한다.
입소하셨다는 사실을 잊은 채 집에 가야 한다며
하루 종일 짐을 쌌다 풀었다 하시는 어르신,
오늘 아침에 씻었다며 완강히 목욕을 거부하는
어르신, 다리에 힘이 없으면서도 걸을 수 있다며
침대에서 내려오다 낙상하는 어르신, 옆 어르신의
혼잣말이 듣기 싫다며 소리 지르며 화내는
어르신까지. 이 글만 보면 다루기 힘든 분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저 이런 어르신들이
사랑스럽다.
짐을 싸놓은 어르신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여쭤본다. "어르신,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저랑 차
한잔하고 주무세요. 내일 제가 꼭 모셔다
드릴게요. 저 차 있는 여자예요" 하면 살며시
웃으신다. 그렇게 나란히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어르신은 편안한
표정으로 잠이 드신다. 평온해진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야 조용히 방을 나온다.
목욕을 거부하는 분께는 "아, 어르신 씻으셨는데
선생님들이 깜빡했나 봐요."라며 공감해 드린다.
"그런데 여름이라 저도 하루에 두 번 씻거든요.
우리 같이 씻고 뽀송하게 있어 볼까요?"라고 웃으며
말씀드리면 "그럴까?" 하며 못 이기는 척 따라
나서기도 하신다.
옆 어르신 때문에 화난 어르신께는 1:1데이트를
제안한다. 산책로에서 차 한잔하며 이야기를
들어드린 후 상대 어르신이 몸이 불편해 그러신 거니
마음 넓은 어르신이 한 번만 이해해 주십사
부탁드리면 "그래 알았어." 하며 마음을 푸신다.
물론 그 평화가 오래가지 않을 때가 많지만 말이다.
어쨌든 요양원도 사람 사는 곳이다. 어르신들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깊은 마음을 가진 분들이라
치매가 있어도 진심 어린 대화는 통한다.
나는 조용하고 차분한 편이라
어르신들께서 이런 나의 성향을
많이들 편안해 하신다.
매일의 일상은 이렇게 어르신들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로 채워졌다. 다만 그 소중한 시간 틈틈이
미친 듯이 처리해야 할 서류 뭉치가
늘 따라다녔다. 서류가 조금만 적었으면
그시간에 어르신들과 눈 한 번 더 맞출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그렇게 복작복작한 요양원에서 8년 차
사회복지사로 일했다. 다시 일을 시작해도 내 선택은
요양원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시간의 나는 정작 내
마음까지 돌볼 여유가 없었다. 돌봄의 대상에 '나'는
빠져있었다. 서류에 치이고 '팀장'이라는 직급의
무게까지 더해지면서 해결하지 못한 스트레스는
안에서부터 곪아 터져버렸다. 퇴근 후에는 남편과
저녁을 먹고 침대에 쓰러져 잠들기 바쁜 날들이
반복되었다.
결국 한계에 다다랐고 나는 8년 차 경력을
뒤로한 채 퇴사를 하게 되었다.
잠시 멈춰 서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 시간이 참
행복하다. 쉬면서 깨닫는 것은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내 감정을 돌보고 회복하는 법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때는 미처 몰랐던
것들이다.
3월까지는 온전한 쉼을 갖고 4월부터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려 한다. 이제는 안다. 잘 달리는
것만큼이나 잘 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8년의 시간을 지나 이제야 온전히 '쉼'의 가치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