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존댓말을 쓰며 각방으로 퇴근합니다

by 온마음


900%EF%BC%BF1769946702947.jpeg?type=w966




1

우리 집에는 '출퇴근'이 존재한다. 집에서

출퇴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만남을 출근,

헤어짐을 퇴근이라고 생각하는 개념이다.



2

연애할 때는 그래도 반말을 했었다. 근데 막상

결혼을 결심하고 보니 존댓말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나를 위한 결정이었다. 남편은 나보다

1살이 어리기 때문에 결혼을 하면 존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러자면 존댓말이 필수처럼 느껴졌다.

나이 차이가 많진 않지만 있다 보니 반말이 가져올

허물없음이 때때로 함부로 내뱉는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 존댓말을 쓰면 격해지려다가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필터가 생긴다.



3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우선 씻고, 저녁 준비를

한다. 함께 좋아하는 티비 프로그램을 보며

맛있게 준비한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 요즘 드는

감정들, 시시콜콜한 농담까지 _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을 보낸 뒤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퇴근을 한다.



4

남편과 나는 서로 추구하는 취미가 다르다.

남편은 게임과 영화 감상을 좋아하고, 나는

책 읽기와 드라마 보기를 좋아한다. 더군다나 나는

이렇게 매일 글을 쓰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우리는 술을 좋아하지 않기에 우리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바로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5

그렇게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잠시 쉬는

타임이나 화장실 갈 때 각자의 방을 방문해

인사를 나누고 다시금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곤 한다.

오로지 나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있기에 함께할 때 더욱 서로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다. 서로의 영역이 있기에 대화 소재도

더 많고 그 자유 안에서 같이 있을 힘을 키우게 된다.



6

잠도 따로 잔다. 결혼한 지 5년 차쯤이었던 것 같다.

둘 다 결혼하고 20kg 정도 살이 쪘다.(살을

빼야겠다고 매일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그러자 둘 다 없던 코골이가 시작되었다. 함께

자다 보니 둘 다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고, 우리는

각방 생활을 하기로 했다.



7

수면권이 보장된다는 것은 다음날 컨디션을

결정하고 그것은 곧 직장 생활의 평안함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각방 생활은 시작되었다. 대신

서로 자기 전에는 꼭 인사를 나눈다. 하루의

마지막을 알리는 남편의 '잘 자'라는 인사는 마치

스위치를 끄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고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이제 편안해도 된다는 그런 신호랄까?



8

결혼할 때는 잘 몰랐다. 그저 함께하고 싶어 결혼을

결정했고, 그렇게 계속 붙어있고, 사랑을 표현하고

하는 건 줄 알았다.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함께하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각자만의 시간의 소중함을

더욱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결혼생활을 만들어 가고 있다.



9

자고 일어났을 때 남편의 "잘 잤어?"라는

아침 인사는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는 상쾌한

알람 소리가 되었다. 존댓말은 우리 서로의 마음을

지켜주고, 각방 생활은 서로의 컨디션을 지켜주고

있다.



10

서로를 배려하는 이토록 '정중한 거리 두기'라니

어쩌면 결혼이 이런 거냐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도 있으나 각자만의 방법으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지켜주고 있다고 느낀다.



11

존댓말이 주는 적당한 거리감과 퇴근이라는

개념을 통한 우리만의 모습이 우리에겐 결국

서로를 향한 사랑 표현이다. 아침마다 서로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며 잘 잤어라고 안부를 묻는

것도 좋고, 남편이 깨워주는 아침 알람도 좋다.



서로에게 배려 있으면서도 따뜻한 우리의 모습도

좋다. 그래서 우리는 크게 싸울 일이 거의 없다.



12

우리는 오늘도 각자의 방으로 즐겁게 퇴근한다.

오롯이 혼자가 되어 충전된 마음으로, 내일 아침

다시 반갑게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출근'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를 지키면서 우리를 사랑하는 법,

그것이 우리가 선택한 정중하고도 따뜻한 거리다.




작가의 이전글8년의 돌봄, 그 대상에 '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