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유개 May 16. 2021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합니다.

살다 보니

오래전 이 엽서를 제게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이도,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사람은 항해사와 비슷한 직업을 갖고 있었습니다. 20대 때의 제가 만나보았던 어떤 누구보다도 마음이 여유로워 보였고 편안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며 과장되지 않았고 으스대지 않는, 담백하고 깔끔한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과 제가 교제를 한 것은 아닙니다. 문득문득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어느 순간 연락이 끊어지게 되었죠. 아마 제가 핸드폰 번호를 바꿔서 일수도 있고요. 참 여유로워 보이고 좋아 보이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더욱더 초라해지고 보잘것 없어지는, 막막한 저의 현실이 더욱 부각되어 멀리했을 수도 있습니다.


팍팍한 삶에 잠시 내린 단비 같은 그 인연을 그 후로도 팍팍하게 살아가며 잊고 살았습니다. 다만 이 엽서는 저의 보물 상자에 고이 보관하고 있었지요. 정확히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스무 살에서 스물세 살 사이었을 테니 곧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이제는 길에서 그 사람을 마주친다 하여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아마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어느 순간엔 이 엽서를 전달받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지하철이었고, 제게 무어라 무어라 이야기를 했었지요. 해외 어디엔가로 다시 간다고 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 호주? 잘 기억나진 않습니다. 


아무런 내용도 떠오르지 않지만 마치 꿈처럼 그 순간만은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의기소침하고 피해의식과 자기 연민에 둘러싸여 나 자신 외엔 아무것도 볼 줄 모르던 나라는 사람에게 바늘구멍만 한 틈을 내어 보여준 사람이었던 것 같네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기억이란 것은 쉽게 왜곡되고 미화되는 덕분입니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남깁니다. 이름도 모두 바꾸었고 편하게 글을 써 내려가고 싶습니다. 언젠간 쓰겠지 막연히 생각만 하다가 오늘 문득 다른 사진 정리하면서 이 시간에 포스팅을 하네요. 또 미루면 또 언제 시작하게 될지 알 수 없어 다른 일 하던 도중에 쓰게 됩니다. 추억의 사진이 제 마음을 두드린 덕분이네요. 


대나무 숲처럼 앞으로 이곳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모두 글로 표현하려 합니다. 이젠 그러려고요. 어설픈 생각이라 할지라도 표현해보겠습니다. 어설프다고 표현하지 않으니 더욱더 어설퍼지는 것 같더라고요. ㅎㅎ


브런치, 다시 시작.



작가의 이전글 삶의 마지막에 반드시 해야될 것 한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