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는 말’에 반대한다.

침묵

by 온이



가만히 있으면, 반도 못 간다. 침묵하고 있으면 반은 간다라는 말은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정신을 갉아먹게 하는 말이다. 그런 말은 숨길게 많은 사람에게나 해야 하는 말이지 멀쩡하게 직장 생활하는 하는, 직장인에게는 부적절한 말이다. 그러니까 적당히 말하고 표현하면서 살아.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침묵하면서 곪지 말고.



침묵하면 반도 못 간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되지 못한다. 가만히 있으란 말에, 버티고, 침묵하라는 말에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모든 사람이 내 마음을 언젠가 알아줄 거야 라든가 그 사람과 사회가 무조건 적으로 옳다. 라는 전제 속에서 통하는 것인데, 전제부터가 잘못됐다.


몇 번의 퇴사에서 무언갈 배우기 시작한 것도, 내 생각을 글로 쓰고 뱉기 시작한 시점부터였다.

물론 표현능력이 서툴러 몇 번의 시행착오가 생기고, 다듬어지는 과정을 겪었지만, 하지 말걸.이라는 생각에 휩싸이지 않았다.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가기 위해 겪는 시행착오보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가기 위한 시행착오가 나았기 때문이다. 왜냐면 그 종착지는 나 자신일 것이기 때문이다.


2번째 퇴사에서 좋은 척, 괜찮은 척하며 퇴사했던 이후 3달이 넘는 시간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무거운 납덩이가 내 몸 전체를 누르는 거 같았다. 잠을 자면서도 식은땀을 흘렸고, 무슨 일을 하다가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침묵하던 게 습관이 돼버려서 무반응하고 동의하는 게 내가 돼버렸기 때문에, 무엇 때문에 힘드냐라는 말에 이유를 서술할 수가 없었다. 그냥 힘들어요..라는 말을 뱉는 게 전부였다.



살아가면서 생채기들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안된다는 생각이 들면 그런 장소에 우리를 방치하지 않는 게 마지막 선택이다. 그보다 먼저 되어야 하는 것이 방어와 공격성이다.

우리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잦은 생채기는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모든 사사건건 한 것에 감정을 소모하지 않지만, 흘려보낼 건 흘려보내되 나의 인격, 경력, 본질에 대한 것을 폄하하는 말에 대해선 참지 않았다.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는 거야?라고 인지시켜주었고, 나는 그것에 절대적으로 동의하지 않아.라고 꿈틀 할 줄 알았다. 그러므로 나의 공격력과 자존감을 쌓아나갈 수 있다.


무반응은 동의가 되기도 한다. 사회에서 여러 의견을 수용하기보다 침묵하는 사람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오랫동안 우리를 아프게 하는 건, 그런 사람의 말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공격성과 방어성을 발휘하지 못한 자신이다. 그러니 조직사회를 지키려는, 일개의 한 사람일뿐이라며, 우습게 여기는,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말하는 침묵 해, 버텨,라는 말들에 우리 자신을 내버려 두지 않길 바란다.


높은 직급을 가진, 유명세를 가진, 찬양을 받는 사람이 세상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니까. 세상에 많은 독재자들과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다수가 말한다고 옳은 길은 아니다.

당신이 불행하고,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 지점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글로 쓰고, 표현하며, 꿈틀대길 바란다. 침묵은 우리를 병들게 만든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