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

by 수지리

수제비는 한국의 전통적인 밀가루 음식으로, 맑은 국물에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뜯어 넣어 끓인 서민요리다. 수제비는 순우리말로,‘수’ = 손,‘제비’ = 찢다, 뜯다에서 유래한 ‘손으로 뜯은 음식’이라는 뜻이다. 쌀이 귀했던 조선 초기 때 쌀이 귀해 밀가루로 해 먹던 소박한 국물 요리다. 들깨를 넣으면 들깨 수제비, 해물 넣으면 해물 수제비, 김치 넣으면 김치 수제비, 감자 넣으면 감자 수제비다. 간단하다. 밀가루 반죽을 원하는 국물에 뜯어 넣어 먹으면 되는 거다.


어렸을 적 엄마는 멸치 국물을 진하게 낸 후, 호박과 감자를 넣고 수제비반죽을 뜯어 넣으신 다음 대파와 계란을 풀어 한 그릇 가득 떠주시곤 했다. 엄마가 수제비를 끓이는 날엔, 꼭 나에게 수제비 반죽을 뜯어서 넣을 수 있게 해 주셨다. 엄마는 밀가루 반죽을 치대서 비닐봉지에 넣어 냉장고에 휴지 시키셨고, 난 그 반죽을 끓는 물에 뜯어 넣는 게 그렇게 재밌었다. 한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납작하게 눌러 뜯어서 넣으면 보글보글 끓는 국물에 폭 가라앉았다가 익을 때쯤 다시 떠오른다. 손에 물을 묻혀가며 뜯고 있노라면 한 봉지 반죽을 다 넣는 건 시간문제다. 우리 엄마는 뭐든지 재밌게 만드는 매력이 있으셨다. 수제비를 뜯는 날엔 내게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서 몇 개씩 넣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그러면 나는 신이 나서 밀가루 반죽을 별모양, 사람 모양, 꽃모양 등으로 조물조물 빚어서 넣었고, 가족들에게 수제비를 먹다가 그게 나오면 행운이 찾아올 거라고 요란을 떨었다. 아무리 예쁘게 빚어서 넣어도 익다가 못난이처럼 뭉개져서 작은 덩어리가 되어있기도 하고, 다른 반죽에 비해 지름이 두꺼워 가끔 속이 조금 덜 익어있기도 했지만, 온 가족 모두 나의 재미를 위해서 먹다가 하나라도 다르게 생긴 게 나오면. '어, 어... 찾았다 찾았다!' 라며 내게 보여주곤 했다. 마치 프랑스에서 1월 6일, 즉 주현절(Épiphanie)에 먹는 Galette des Rois (왕의 파이) 안에 숨겨진 반지를 찾듯이 수제비 반죽 보물 찾기는 우리 집 저녁식탁의 작은 이벤트였다. 왕의 파이 안에는 작은 반지 또는 인형이 보통 숨겨져 있는데, 이를 찾는 사람은 파이를 살 때 함께 주는 종이 왕관을 쓰고 하루동안 왕, 여왕 대접을 받는 아기자기하고 동화 같은 프랑스의 문화처럼, 나도 뭔가 재밌는 풍습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놀이는 수제비에서만 끝난 건 아니었다. 언젠가 이집트와 요르단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모세의 샘(Ain Musa)을 방문 한 뒤 나의 저녁 퍼포먼스는 피크에 달했다. 모세의 샘에는 오늘날에도 실제로 물이 흐르고 있다. 주변에 석회암과 사암으로 지층이 구성되어 있어 물의 저장되고 통과하기가 쉬워 물이 지하에 모여있다가 중력과 수압의 원리로 지반의 균열 사이로 지표면으로 솟아 자연 용천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모세의 샘에는 작은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관광객도 관람 가능하다. 내가 방문했던 35년 전에는 크게 제한이 없어서 물을 빈 병에 여러 병 채워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한 명 당 받아올 수 있는 물의 양이 제한된다고 들은 것 같다. 어린 나에게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기 시작해 그게 아직도 끊임없이 나온다는 사실은 성스럽고 거룩한 기적이었다. 모세가 지팡이를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가 반석을 내려치자 하늘문이 열리고 번개가 내려치는 장면, 성화에 나올법한 마술적인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보기를 수만 번. 그 감흥을 안고 몸을 수그려 기적의 물을 뜨며 느꼈던 역사적인 순간을 기억하며, 쿠웨이트 집에 돌아와서도 저녁에 그 물을 따를 때마다 나는 내가 만들어낸 특별한 의식을 하곤 했다. 물병을 냉장고에서 꺼내 높이 들며 '이것이 모세의 물이니...'라고 하며 물 잔에 서빙을 하던 나의 연극적 몸짓이 보기 싫었을 법 한데, 우리 가족들은 참 잘 참아주었던 것 같다. 나는 그때 우리 집이 정말 선택받은 자손이라고 생각하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소중히 보물을 다루듯 마셨다.

엄마와 함께 일하던 시절, 종종 백화점에서 미팅을 마치고 나면 지하 푸트코트에 내려가 밥을 먹었다. 백화점에서 수입 액세서리 매장을 운영하던 엄마는 매입본부 직원을 만나러 백화점에 오는 것을 가장 불편해하고 싫어하셨다. 아들 뻘 되는 직원들이 매출 운운하며 목을 빳빳하게 세우면 협력사 사장인 엄마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러니 회의를 마치고 나면 엄마나 나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에게 밥이나 먹자며 지하 푸드코트로 향하곤 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온기 있는 접촉에 익숙하다. 따뜻한 엄마의 품, 따뜻한 우유, 따뜻한 이유식 등은 모두 태어나서 경험한 돌봄의 정서다. 그래서 따뜻한 음식을 먹을 때, 무의식적으로 그 시절의 편안하고 돌봄 받는 느낌이 떠올라서, 힘든 일이 있을 때 그 유아기 때로 회귀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난 그렇게 마음이 다치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는 따뜻한 음식을 찾는다. 나는 그렇게 엄마와 같이 푸드코트에 가면 항상 항아리 들깨 수제비를 시켰다. 엄마는 냉면을 시켰는데, 반 정도를 먹으면 그 이상은 더 못 드셨다. 그 항아리 수제비는 미역과 수제비가 진한 들깨 국물과 잘 어우러진 뜨끈한 요리였는데, 난 그 묵직한 국물 한 술 뜨면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이 잠시동안은 걱정을 게을리하고 늘어져있어도 될 거 같은 안도감이 들었다.

엄마는 들깨는 별로 안 좋아하셨다. 통깨도 안 좋아하셔서 음식에 깨를 뿌리지 않으셨다. 음식이 지저분해진다고 깨를 사용하지 않는 엄마 덕분에 나도 결혼 후 몇 년간 음식에 깨를 전혀 뿌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야 볶은 통깨가 풍기는 향과 맛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음식에 따라 통깨를 뿌린다. 들깨도 음식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물수제비는 납작한 돌을 물 위에 던져, 표면을 튕기며 여러 번 떠오르게 하는 놀이다. 반죽을 손으로 얇게 뜯어 물에 퐁당 넣는 모습이, 돌을 납작하게 던져 물에 튀게 하는 모습과 닮았다고 여겨져 '물수제비 뜨다'라는 표현이 생겼다. 그리고 우리는 수제비에 밀가루 반죽을 뜯어 넣는 걸 '뜨다'라고 한다. 손으로 하는 건 다 잘할 거 같지만, 나는 요리와 그림 빼고는 손으로 하는 건 의외로 똥손이다. 물수제비도 한 번도 성공해 본 적 없다. 하지만 백화점에서 사 먹던 것보다 더 맛있게 들깨 수제비도 끓일 수 있고, 감자 수제비, 김치 수제비도 끓일 수 있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감자수제비, 종이에 과슈, 2025 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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