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전

by 수지리

집집마다 명절에 부치는 전이 다르다. 명절, 특히 설날과 추석 같은 큰 명절에는 전이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전은 다양한 재료를 밀가루와 달걀 옷을 입혀 부치는 음식인데, 손이 많이 가지만 그만큼 명절 밥상이나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어렸을 땐, 외갓집과 친가집에 가면 먹는 명절 음식이 다른 것이 참 흥미로웠다. 외갓집은 경상도식 다시마 무 산적을 부쳤고, 친가집은 우엉 전이랑 깻잎전이 있었다. 외갓집은 닭을 꼭 삶고, 친가집은 꼭 소고기 산적을 했다. 나물도 다르다. 나는 전 중에 깻잎전을 가장 좋아했다.


쿠웨이트에서 한국에 귀국한건 라면 소녀 임춘예가 성화 봉송을 하고, 호돌이가 상모놀이를 하던 88 올림픽 때였다. 내가 기억하던 그 시절 한국은 정말 너무 더웠고, 과일이 맛있었다. 쿠웨이트는 사막 나라라서 건조했기 때문에 습한 서울의 여름은 적응하기 어려웠고, 여름철 참외, 수박은 정말 너무 달고 맛있었다. 외국에서 살다가 한국 오니 명절날이 정말 기다려졌다. 친척들을 만나서 맛있는 거 많이 먹는 날. 친할머니는 빈대떡도 깻잎전도 잘하셨다. 나는 어려서부터 부엌에 들어가 밥물을 맞추는 일부터 전을 뒤집는 일, 반찬을 나르는 일마저도 재밌었다. 그중에서도 깻잎전을 부치는 일은 특히나 재미있었다. 깻잎 한 장을 안쪽에 부침가루를 살짝 묻히고 돼지고기와 두부 갖은 야채를 다져서 만든 소를 가운데 부분에 얹은 뒤 삼등분으로 접어서 바깥쪽에도 부침가루를 마저 묻히고 계란물을 묻힌다. 이제 잘 가열된 팬에 중불에 잘 구우면 된다. 깻잎전은 깻잎향이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데, 어떤 요리에 넣어도 깻잎은 그런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난 깻잎을 참 좋아한다. 깻잎으로 페스토도 만들고, 깻잎김치도, 장아찌도 만들고, 깻잎을 얇게 썰어 가니쉬로도 많이 사용한다. 바질 대신 깻잎으로 페스토를 만들기도 하는데, 파스타 할 때 사용해도 맛있고, 샌드위치 쌀 때 식빵에 스프레드로 써도 맛있다.

얼마 전부터인가 넷플릭스에서 최강록 셰프가 요리하고 진행하는 주관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했다. 그 프로그램에서 주방 보조이자 서브진행을 맡은 주현영 씨가 최강록 셰프에게 '이럴 땐 감으로 하세요?"라고 했더니, 최강록 셰프는 음식은 감으로 하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음식을 무조건 감으로 한다. 엄마 손맛이라고도 하지만, 나에겐 감이라는 건 그때그때 집에 있는 일상의 재료로 그날의 기분과 날씨에 따라 함께 먹고 싶은 요리를 그때그때 생각해서 준비하는 과정이자 방법이다. 아이들과 함께 앉아있다가 시원한 게 먹고 싶으면 소면을 삶아 비빔국수를 하는데, 냉장고에 들깨가 있으면 들깨국수를 할 수도 있고, 명이나물이 있으면 명이나물 국수를 할 수도 있고, 김치가 있으면 김치비빔국수를 할 수도 있고, 콩나물이 있으면 콩나물 비빔국수를 해 먹는다. 양념도 집에 그때그때 있는 단맛과 신맛, 매운맛을 사용해서 하기 때문에 따로 계량을 한 적도 레시피를 정리해 둔 적도 없다. 그런데 최강록 셰프는 음식을 감으로 하면 늙으면 맛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래서 레시피대로 해야 먹고 싶을 때 그 맛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한 번도 레시피대로 음식을 만든 적이 없고, 그걸 내 특기라고 생각해 왔는데, 나의 주관이 그의 주관에게 흔들렸다. 나의 즉흥과 감은 나의 젊음과 함께 늙어갈 것이라는 건 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까. 그날 이후 난 내가 자주 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은 레시피를 정리해 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난 명절 전날이면 무조건 전을 부친다. 명절 제사상은 조상에 대한 감사, 가족 간 화합, 풍요의 나눔, 그리고 예절과 전통 계승을 담은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문화다. 차려놓은 제사상은 보기 좋지만, 사실 준비하는 과정은 그렇게 쉽지 않다. 며느리가 되면 바로 시작되는 명절 음식준비는 달가운 과정은 아니다.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명절이 되면 음식준비가 부담스럽다고들 한다. 나는 명절 음식 준비는 별로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나 역시 명절이 쉽지만은 않은데, 좁은 부엌에서 시댁어른들과 함께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차려내는 건 쉬운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음식을 하는 방식도, 간도 부엌의 주인을 따라가야 하니, 이것저것 맞추고 잘하기란 처음부터 쉬운 건 아니다. 종갓집 며느리인 나는 명절이 되면 여러 가지 음식을 미리 준비해 가기도 하고, 시댁에 가서도 준비한다. 그러면서 나는 항상 돌아가신 엄마 음식을 따로 준비하곤 한다. 제사 음식은 조상을 위해 준비하는 음식이다. 얼굴도 모르는 조상님을 위해 음식을 할 때에는 무의식적으로 하던 요리도, 엄마를 위해서 준비하면 음식 하나하나에 생각과 정성이 담긴다. 엄마가 좋아하던 전, 엄마가 즐겨 먹던 나물을 위주로 준비하게 되고, 엄마와 있었던 추억을 되새기며, 엄마가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진심이 들어간다.

깻잎전 안에 들어가는 소는 동그랑땡 반죽을 사용하면 되는데, 넉넉히 만들면 그걸 고추 안에 넣으면 고추전이 되고, 우엉 위에 붙이면 우엉전이 되고, 계란물 입혀 구우면 동그랑땡이 된다. 나는 요린이 시절엔 동그랑땡 소의 간을 보는 게 어려웠다. 생고기가 들어있으니 간을 보기가 참 어려웠던 거 같다. 가장 정확한 방법은 조금 떼어내어 팬에 구워본 뒤 간을 보는 건데, 그 과정이 귀찮아서 그냥 건너뛰면 간은 보장하기 어렵다. 동그랑땡 반죽은 그래서 한번 할 때 좀 많이 해두면 좋다. 쓸 만큼 쓰고 남은 건 얼려서 보관하면 다음번에 또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너무 바쁠 땐 전 소를 전 집에서 사서 전을 부친다. 은마상가에서 다 부쳐진 전을 사는 건 영 못하겠고, 그래도 반죽이라도 사면 시간도 많이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전 부치는 일이 훨씬 수월하다.

깻잎전, 녹두빈대떡은 우리 친할머니가 자주 하시던 제사음식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솜씨가 참 좋으셨다.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 주로 직접 담근 식혜, 동치미, 간장게장, 어리굴젓은 아빠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식혜는 아직 해본 적은 없지만, 동치미, 간장게장, 어리굴젓은 직접 해서 아빠 밥상에 올려드리곤 했다. 그러고 보면,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위해 정성을 다해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아직 조금 이른 나이에 혼자되신 아빠를 위해선 유난히 밥상에 올라가는 반찬에 온 정성을 다했던 것 같다. 매일매일 아빠 입에 들어갈 음식을 신경 쓰고, 특히 코로나 시기엔 다양한 음식을 집에서 드실 수 있도록 정말 생각을 많이 하고 공을 들여 메뉴를 생각했다. 바쁘게 일하던 시절이었지만, 항상 짬을 내서 집에 들어와 아빠 밥상을 차려놓고 다시 출근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엌에서 정신없이 밥을 하는 나의 뒷모습을 보고 아빠가 나를 보며, '너도 이제 식순이 다됐네?'라고 하며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셨었다. 지금 돌아보면, 아빠는 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드는 여러 가지 생각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고 '식순이'라는 말로 어설프게 표현이 되었던 것 같다. 근데, 어쩜 그 말이 그렇게도 서럽던지. 그날 식순이라는 말에 눈물을 몰래 흘렸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날 아빠의 밥상은 조금 짜지 않았을까.


작년 독일로 이사 온 후에도, 난 명절 전날 밤 전을 부친다. 전을 밤에 부치는 이유는, 모두 잠든 후에 나 혼자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전을 부치며 엄마를 생각하고, 갈비를 졸이며 엄마 생각을 한다. 깜깜한 밤에 홀로 부엌에서 전을 지글지글 부치고 있노라면 옆에 엄마가 있는 거 같은 생각이 들어 조금 덜 쓸쓸하다. 엄마가 좋아하는 송창식 노래라도 틀어놓고 전을 부칠 때면, 눈물이 나다가도 웃음도 나고, 옛날 어렸을 때 생각부터 내가 엄마 속을 썩일 때까지 온갖 생각이 다 난다. 난 그렇게 엄마와 둘이 만난다.

우리 친할머니가 자주 하셨던 전이지만, 엄마는 여러 가지 전 중에 깻잎전을 그래도 가장 좋아하셨다. 깻잎향을 좋아하셨다. 게다가 우리 가족 모두가 가장 좋아하는 전이었다. 그래서 난 내 부엌이 생기고 나서도 육전, 꼬치전, 호박전, 생선전은 그때그때 몇 가지만 골라 돌아가며 준비해도, 깻잎전은 매해 꼭 부친다. 깻잎 한 장 안에 소를 넣고 누르면서 엄마가 전을 뒤집던 뒷모습, 엄마의 앞치마, 엄마의 긴 파마머리를 생각한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깻잎전을 부치면서, 나를 위해 또 가족을 위해 전을 부치던 엄마의 목소리와 그 밥상을 기억한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깻잎전, 종이에 과슈, 2025 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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