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김치

by 수지리

양배추 김치는 전통적인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cabbage)를 주재료로 하여 만든 김치다. 맛과 발효 방식은 일반 김치와 비슷하지만, 식감과 향에서 차이가 나고 조금 더 부드럽고 단맛이 나는 편이다. 요즘에야 배추를 사계절 언제나 구할 수 있고, 김치냉장고가 보편화되었지만, 예전에는 김장철에 김치를 담가 겨우내 익혀 일 년 내내 먹곤 했는데, 그때 배추 가격이 급등하거나 공급이 부족해지면 양배추를 대체 식재료로 활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양배추로 김치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해외 이민자들이 배추 대신 쉽게 구할 수 있는 양배추로 김치를 담그기 시작하면서 만들어 먹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양배추김치가 흔해졌다. 병원식 및 건강식단에서 맵고 짠 일반 김치가 부담스러운 환자들을 위해 병원에서 양배추김치를 대체 김치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양배추가 위 건강에 좋다는 건강 상식과 맞물려 ‘건강한 김치’로 이미지가 자리 잡았다. 나는 처음 엄마가 양배추 김치를 담가줬을 때가 기억난다. 아마 8살쯤 되었을 때 같은데, 유난히 단단해 보이고 쪼골쪼골 한 양배추에 고춧가루 양념이 묻어있는 그 생소한 모습을 보고 이게 무슨 김치냐며 눈살을 찌푸렸었다.


넷플릭스에서 얼마 전에 <당신의 맛>이라는 한국 드라마를 봤는데, 1화에서 배우 강하늘은 배우 고민시가 담근 양배추 김치를 먹고 어렸을 적 엄마를 대신하여 자기를 돌봐주던 할머니의 밥상을 떠올린다. 그리고 최종화에서 배우 고민시는 배우 강하늘의 엄마와 형에게 가정식 백반을 차려주며 양배추김치를 낸다. 그 김치는 할머니의 밥상을 떠올리는 따뜻하고 정감 있는 재료로 소박하게 담아낸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는 언젠가 어느 날, 엄마는 처음 보는 양배추 요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으셨다. 양배추 김치라고 하셨다. 아삭거리는 식감이 별미 었고, 씹을수록 단 맛이 있는 건 맞았지만, 솔직히 나는 엄마가 배추김치가 담그기 귀찮아서 양배추로 김치를 담그셨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다양한 맛의 반찬을 식탁에 올리려는 엄마의 노력이었다. 양배추김치는 씹는 식감이 아삭거려서 확실히 배추김치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겉절이처럼 바로 담가서 갓 먹으면 시원한 맛이었다.

엄마는 씹는 맛이 아삭거리는 소리를 참 좋아하셨다. 오이, 당근, 피망, 양배추 같은 야채를 생으로 드시는 걸 참 좋아하셨다. 오이, 피망, 당근은 길게 썰어 쌈장도 없이 잘 드셨고, 양배추는 채를 얇게 썰어 마요네즈와 버무리여서 드셨다. 양배추를 드실 때면 한입씩 어찌나 크게 크게 드시던지 입술에 마요네즈가 꼭 묻어있었다. 그러고 보면 엄마에겐 '밥 대신'이 참 많았다. 야채만 씻어서 와그작와그작 드시기도 했고, 고구마, 누룽지, 옥수수로 식사를 때우는 일이 많았다. 난 그게 항상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는 커피 한잔을 내려 고구마와 함께 드시며 신문을 들여다보곤 하셨다. 엄만 그 시간이 참 좋다고 하셨다. 나이가 드셔서는 돋보기를 코에 걸쳐서 쓰고 신문을 읽으셨는데, 원래도 큰 눈이 더 커져있었다. 엄마는 헛기침을 정말 자주 하셨다. 외할아버지가 항상 헛기침을 많이 하셨었는데, 엄마도 나이가 드시면서 닮아갔다. 어쩌다 조금 늦잠을 잘 때면, 엄마의 헛기침소리와 신문을 넘기는 소리에 나는 마치 엄마가 날 깨우는 기분이 들어 서둘러 나온 적도 있었다. 엄마는 그렇게 신문을 읽다가 마음에 와닿거나 인상적인 뉴스나 사설이 있으면 꼭 기억해 뒀다가 누군가를 만나면 얘기해주시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얘기해 주곤 하셨다. 신문에서 읽은 이야기를 재미나게 하는 엄마의 표정엔 생기가 돌았다. 엄마는 이야기를 참 재밌게 하는 능력이 있으셨고, 주변의 공기를 즐겁고 흥미롭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멋지고 당당한 걸음걸이만큼 쨍한 목소리로 전하는 이야기가 가끔 창피할 때도 있었다. 저런 이야기를 왜 지금 저 사람에게 하나 싶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신기하게도 엄마가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면 처음엔 관심 없이 듣던 사람들도 차츰 빨려 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나는 엄마가 그 흔한 해장국이나 순댓국에 밥을 말아서 먹는 거나, 떡볶이를 먹는 모습도 본 적 없다. 양념 가득 묻는 불고기나 제육볶음 같은 것도 잘 안 드셨다. 나는 중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선짓국을 먹었다. 아빠 회사 모임이었던 것 같은데, 그 모임에서 다 같이 가는 경주행 나들이에 내가 따라갔을 때였던 것 같다. 그때 이른 아침 모두가 따뜻한 국밥을 먹으러 들어갔는데, 그때 메뉴가 선지해장국 하나였다. 같은 식탁에 앉은 일행 중 한 아주머니께서 선지가 뭔지 아냐며 설명해 주시고, 밥을 말고 숟가락으로 선지를 작게 깨서 콩나물이랑 같이 후루룩 드시면서 내게도 먹어보라고 하셨다. 나는 호기심에 가득 차 선짓국을 먹었다. 식감도 모양도 취향저격, 새롭고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그날 우리 엄마는 선지를 드시지 않았다. 국물만 드셨던 것 같다. 엄마는 걸쭉하고 양념 많은 음식보다, 깔끔하게 재료 그대로 드시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묵은지도 잘 안 드셨다. 겉절이나 양배추김치를 더 잘 드셨고, 내가 담근 김치는 양념이 너무 덕지덕지 묻어 있다고 하셨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자주 해주셨던 김치는 오이소박이와 양배추김치였다. 나는 그 둘 다 정말 좋아했는데,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오이소박이인 거 같다. 그렇지만 엄마가 갓 버물여주신 양배추김치도 정말 밥도둑이었다. 엄마가 손으로 버무려 접시에 담아내던 그 모습을 떠올리면 엄마 손모양이 생각난다. 내 손은 아빠 손을 닮아 손가락 두께 변화가 별로 없어 꼭 남자 손 같다. 내가 닮지 않은 엄마 손도 이쁜 손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항상 엄마손이 못생겼다며 불평을 하곤 하셨다. 반지를 껴도 안 이쁘다며 아이처럼 투덜대셨다. 나는 엄마 손 모양이 아주 자세하게 기억이 난다. 새끼손가락 마지막 마디가 유난히 안쪽으로 휘어들어가 있었는데, 내가 조금 더 어렸을 땐 가루약을 잘 못 먹는 나를 위해 숟가락에 가루약과 물을 풀어 그 새끼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섞어서 주시곤 했다. 약이 먹기 싫다가도, 엄마의 귀여운 새끼손가락이 숟가락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걸 보고 있다 보면, 정신이 팔려 어느새 아 하고 입을 벌려 약을 받아먹곤 했다.

얼마 전부터 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고요를 참기 힘들어졌다. 집에 혼자 있을 때나 뭔가에 집중할 때, 요리할 때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으면 왠지 마음이 불안하고 외롭다. 지금 지내고 있는 독일에 도착해서 한동안은 노래를 항상 틀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내가 그리운 건 사람 목소리라는 걸 알았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 누가 나에게 말 걸어주는 것. 그러다 보니, 요즘은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주로 미드를 보지만, 가볍게 볼 수 있는 장르만 보다 보니, 마땅한 미드가 없는 날은 한국 드라마도 본다. 반은 듣고 반은 흘려들으며 청소도 하고, 일도 하고, 요리도 한다. 점점 재생시간이 길어지면서, 보게 된 게 요리 드라마 <당신의 맛>이었다. 배우 고민시가 텃밭에서 직접 양배추를 키워 정성스레 담근 양배추김치를 배우 강하늘이 먹으며 옛날을 회상하는 장면을 보며,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양배추 김치가 기억났다. 어렸을 적 먹던 엄마의 양배추김치.


내가 어렸을 적 엄마의 요리는 음악이었다. 엄마는 노래를 부르며 요리를 하셨다. 엄마의 노래는 음식이 맛있어지라는 마법의 주문 같았다. 그러던 엄마의 부엌에 음악이 없어지고, 엄마의 요리에 마법이 사라져 갔다. 오빠와 내가 성인이 되고, 엄마는 점점 사업가가 되어가면서 엄마의 요리에 마법을 사라지고, 노래 대신 한숨이 채우던 때가 있었다. 이제 나는 죽은 엄마와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다. 벌써 9년이다. 9년 동안 내 기억 속 엄마와 살았다. 신기하게도 나는 내가 어렸을 때 엄마를 더 그리워한다. 요리에 마법을 부리던 시절의 엄마. 엄마는 양배추김치를 도시락 반찬으로도 많이 싸주셨다. 도시락통에 들어가면 먹을때즘 물러있는 배추김치와는 달리 양배추김치는 아삭하게 유지가 잘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김치 특유의 냄새도 조금 덜 났던 거 같다. 특히 코끼리 보온도시락통 맨 아래 국통에 카레가 담기는 날이면 밥통 위에 반찬 칸에는 단골손님으로 양배추 김치가 등장했다. 엄마를 생각하며, 이번 참에 나도 양배추 김치를 담가봐야겠다.

양배추김치, 종이에 과슈, 2025 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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