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인기 음식이지만, 그 기원은 인도에 있다. 인도에서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향신료를 섞어 만든 요리를 먹어왔고, 이것이 카레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후 영국을 통해 유럽과 일본, 한국으로 퍼지면서 각 나라의 입맛에 맞게 변화했다. 인도의 카레는 향신료가 풍부하고 종류도 다양한데, 북인도에서는 크림과 토마토 베이스의 ‘치킨 티카 마살라’가 대표적이고, 남인도에서는 코코넛과 겨자씨를 활용한 카레가 주를 이룬다. 반면 태국의 카레는 코코넛 밀크와 허브를 사용해 부드럽고 향긋한 맛을 낸다. 일본은 카레를 걸쭉하고 달콤하게 만들어 밥 위에 얹어 먹는 스타일로 발전시켰고, 이는 한국 가정에서 먹는 카레와 많이 닮아있다. 영국에서도 인도식 카레를 받아들여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커리(curry)는 일본사람들이 카레라고 발음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카레로 불리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엄마는 소고기 잔뜩 들어간 카레를 해주셨다. 어린 마음에는 미끄덩 거리는 양파나 뭉개져버리는 당근이 별로여서, 고기와 감자만 쏙쏙 빼먹었었다. 지금은 달큼한 맛을 내는 양파도, 뭉근하게 부드러운 맛은 내는 당근도 맛있게 잘 먹는다. 어떤 집은 돼지고기를 넣고, 어떤 집은 햄을 넣고, 어떤 집은 닭고기를 넣지만, 우리 엄만 꼭 소고기를 달달 볶다가 양파와 당근 감자를 넣고 잘 볶아낸 뒤 물을 부어 채소가 익을 때까지 끓였다. 거품을 걷고 뭉근하게 끓여낸 뒤 카레 가루를 풀거나 덩어리 카레를 부셔서 잘 넣어주면 엄마표 카레는 완성이었다. 노란 카레를 밥에 쓱쓱 비벼 김치를 얹어서 한입 먹으면 목까지 칼칼하게 내려가는 맛이 일품이다. 카레는 따뜻하게 먹어도 맛있고, 조금 식어도 맛있다. 따뜻한 밥 위에 식은 카레를 쓰윽 쓰윽 비벼 김에도 싸 먹고 김치도 얹어먹어도 생각보다 맛있다. 따뜻한 건 물론 호호 불어 먹다 보면 한 그릇으로 끝나지 않는다. 엄마는 카레를 자주 하셨다. 그래서인지, 카레를 먹으면 기억나는 장면들이 여럿 있다. 언젠가 집에 왔는데, 엄마는 없고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에 카레가 담겨있었다. 나는 카레를 데워서 흰 밥에 얹어 텔레비전 앞으로 들고 가 김치를 반찬통 채로 열고 먹었다. 그날은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는데, 에어컨을 틀고 카레를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노라니, 집안에 시원한 바람 가득 카레향이 채워졌다.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며, 어렸을 적 엄마의 목소리, 내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옷, 우리가 함께 갔던 여행지등이 하나씩 떠올랐다. 카레 냄새로 소환된 나의 추억들은 끝도 없이 가지를 치고 뻗어나갔다. 그것이 환유일까? 환유법은 어떤 사물이나 개념을 그것과 밀접하게 관련된 다른 것으로 대신 표현하는 수사법이다. 냄새는 보이지 않지만 강한 감각적 연상을 유발하는 감각이다. 냄새를 직접 묘사하기보다는, 그 냄새를 풍기는 사물이나 상황을 빌려 표현하는 경우는 환유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 나는 그날 카레를 먹으며 환유적으로 떠올렸던 수많은 이미지들을 예로 들어 대학교 때 국어와 작문 시간에 리포트를 썼던 기억이 난다. 매우 구체적으로 경험적인 예시여서인지, 환유법 (metonymy)과 냄새(olfactory imagery)에 대해 썼던 그 리포트는 A+를 받았다. 게다가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나의 카레이야기를 하기도 하셨는데, 그런 경험을 통해 나에게 카레는 더더욱이 지난 과거를 환유적으로 떠올리는 관문이 되어버렸다.
대학교 3학년 때 즘, 지독하게 돈을 아껴 쓰던 시기가 있었다. 그땐 아침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는 것부터 시작했다.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학교식당은 얼마 비싸지도 않았는데, 꼭 도시락을 싸서 그 돈이라도 아끼겠다고 바리바리 싸들고 다녔다. 대학생이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 두 가지 걸림돌이 생긴다. 첫째는 도시락을 먹을 장소가 항상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공강 시간에 밥을 먹어야 하는데, 실기실에서 먹거나 동아리방에서 먹어야 하는데, 그게 가끔은 눈치도 보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밥을 누가 같이 먹자고 하면, 거절하기가 쑥스럽다는 점이다. 특히나 나는 그때 남자친구가 생길락 말락 하던 때였다. 그 친구는 자기 엄마가 끓인 카레가 제일 맛있다며, 내가 도시락 반찬으로 카레를 싸갔던 날 자랑을 늘어놓았었다. 나는 속으로 아무리 멋을 낸 카레도 우리 엄마가 끓여준 그 노란 카레보다 맛은 없을 텐데 생각했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다. 어쩌면 얼굴에 쓰여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 친구가 언젠가 엄마 카레라며 하루는 학교에 들고 왔던 적이 있다. 그 카레에는 신기하게도 소고기 대신 돼지등뼈가 들어있었고, 국물이 연하고 사골처럼 뽀얀 것이 정말 색다른 요리 같았다. 은은하게 퍼지는 카레맛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내 스타일은 역시 아니었다. 그리고는 또 어느 날인가, 내가 도시락을 싸갔던 어느 날, 학생 식당에서 도시락 먹는 게 싫다는 나를 그 친구가 국이라도 나눠먹으면 좋지 않냐며 데리고 갔더랬다. 나는 자리를 먼저 잡았고, 그 친구는 밥이랑 반찬, 국 그리고 호박죽을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왜 밥이랑 호박죽을 같이 가지고 오는지 약간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호박죽에 밥을 넣어 비비는 것이다. 한 입 먹더니 웃으며 자긴 그 호박죽이 카레인 줄 알았다고 했다. 집에서 마알간 카레만 먹어서 그런가 진득한 카레 비주얼이 익숙하지 않아서였을까.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면 그 친구와 함께 있으면 그렇게 우스운 일들이 종종 생겼는데, 그때는 우스웠는데, 지금 시간이 지나고 보니 우스운 게 아니라 웃긴 거였을수도 있다.
나는 그 친구를 참 좋아했다. 성당에서 처음 만났는데, 얼굴 전체에 묻어있는 선함이 인상적이었고, 그 선함에서 오는 잘생김이 있었다. 기타를 잘 치는 그 친구에게 난 기타를 배우기로 하면서 가까워졌다. 같은 대학에 다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통학을 같이 하며 더 가까워졌다. 그 친구는 배울 점이 참 많았다. 글도 잘 쓰고, 노래도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아주 성실한 친구였다. 그 친구는 어머니를 지키고자 하는 예쁘고 씩씩한 책임감을 가진 친구였고, 나는 그 친구에게 많이 의지하고 기댔다. 연인이 되고 나서는 항상 친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삭발을 하고 눈에 촉촉하게 눈물이 고여 나를 바라보던 그 친구와 난 결국 몇 개월동안이나 연인관계를 지속했다. 우리 엄마는 그 친구를 '아가 호랑이'라고 불렀다. 엄마 눈에도 그 친구의 선함이 보였던 것 같다. 자기 그릇보다 더 넓은 세상을 품으려고 외치던 그 친구의 '어흥'은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도 '아가' 같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카레에 대해 글을 쓰며 또 다른 환유적 관계로 나는 그 친구를 떠올리고 있다. 냄새가 강하고 자극적이어서 그런지, 내게 환유적 영감을 많이 주는 음식임에 분명하다 싶다.
아이들도 신랑도 카레를 잘 먹는다. 난 엄마가 하던 식의 카레를 한다. 고기부터 기름에 볶는다. 요즘은 딸들이 교정을 하면서 착색이 될까 봐 카레를 자주 안 하지만, 내가 엄마의 손맛 그대로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있는 요리 중에 하나다. 일본식 커리, 인도식 커리도 맛있지만, 난 엄마표 카레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그 솥에서 국자로 휘이휘이 저어 밥 위에 얹어 비벼 김치 한 조각에 맛있게 먹는 한입 한입이 내 뱃속을 따뜻하게 채운다. 그 따뜻함과 입안에 남는 찌르는 듯 강하게 남는 맛, 목을 쓸고 내려간 칼칼한 긁는 맛, 그 모든 맛이 이어져 또 다른 환유로 이어진다.
카레, 종이에 과슈, 2025 수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