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케이크(핫케이크)

by 수지리

핫케이크(hotcake)와 팬케이크(pancake)의 차이를 아시나요? 밀가루와 계란, 우유를 섞어 반죽하여 굽는 도톰하고 달콤한 음식인데, 나는 주로 팬케이크라고 부르지만, 마트에서 흔히 보는 상표는 핫케이크로 되어있는 이유가 항상 궁금했다. 사실상 그냥 같은 음식을 가리키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상품화된 형태의 가루제품이 핫케이크라고 불리지만, 팬케이크와 구분 없이 혼용되고 있다. 팬케이크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전 고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 우리가 먹는 팬케이크 스타일은 현대적으로 진화된 형태이며,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게 발전했지만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밀가루 반죽을 꿀과 섞어 팬에 구워 먹은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국에 밥 말아서 한 술 먹고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나라 아침문화처럼, 미국에서는 팬케이크를 아침으로 먹는 것이 일상이다.


우리 아빠는 7남매 중 여섯째다. 할머니는 차례로 딸을 세명 낳고 그 이후론 아들을 네 명 낳으셨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사이에 딸이 한 명 더 있었다고 하는데, 어렸을 때 전쟁 때 죽었다고 한다. 아빠에겐 두 명의 형이 있는데, 그중 둘째 형은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일찍이 미국으로 가서 쭉 살았다. 둘째 큰아버지는 아들 4명 중 인물도 제일 좋고 성격도 자상하셔서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아들이었다고 한다. 둘째 큰아버지는 눈웃음을 잘 웃으시고, 잘 생기셨다. 그리고 이 씨 같지 않게 얼굴이 크지 않다. 내가 여덟 살 때 즈음이었나, 우리 가족 전부가 미국 큰아버지댁에 놀러 갔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우린 쿠웨이트에 살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온 할머니와 함께 다 같이 미국 큰아버지댁에 여름 내내 놀러 갔었다. 미국 큰아버지댁은 오하이오주 신시나티에 위치한 하우스였고, 앞뒤로 정원이 굉장히 넓었다. 한국에서 놀러 오신 할머니와 우리 가족 모두 함께 미국 큰아버지댁에서 그 해 여름 지낸 기억은 지금도 어릴 적 읽었던 소설의 한 부분처럼 이야기로 저장되어 있다. 아침에 새소리에 눈을 떠 아래층으로 향하면 벌써부터 집안 가득을 채우고 있던 팬케이크 냄새. 버터향 가득한 그 냄새를 따라 계단을 내려오면 이미 뒷 테라스에 상이 차려지기 시작한 후였다. 큰아버지, 아빠 그리고 할머니가 앉으시고 오빠, 나, 그리고 사촌 오빠 두 명까지 전부 와글와글 테라스에 있는 테이블에 앉으면, 팬케이크, 계란 후라이, 베이컨이 담긴 접시가 하나씩 테이블에 놓였다. 큰어머니와 엄마는 얼마나 바쁘셨을까. 난 오빠와 둘이 지내다가, 오빠가 둘이나 더 생기니 이쁨을 독차지하고 공주가 된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부엌에서 엄마가 얼마나 바쁜지는 보이지 않고, 그 푸르른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아침을 맛있게 먹던 그 시간을 마음껏 즐기기에 바빴다. 시원한 오렌지 주스와 함께 어느 정도 먹어갈 무렵이 되면 큰어머니와 엄마는 커피를 들고 테이블에 합류하셨고, 그렇게 우리 대가족은 매일 아침을 팬케이크로 시작했다. 그때 먹었던 팬케이크 덕분인지, 나는 커서도 항상 팬케이크 냄새를 맡으면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함께 나누던 따뜻했던 시간이 생각난다. 내게 팬케이크는 반은 냄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나의 기억의 스토리가 담긴 정서다. 지글지글 갈색 모양이 그려진 겉면 안으로 촉촉하게 스펀지처럼 부드러운 속까지 팬케이크는 특별한 맛은 없어도, 그냥 그 냄새와 기억만으로도 내 마음에 편안한 행복을 주는 위로다.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치아가 두 개나 빠졌다. 지붕 위에 빠진 이를 던져 까치에게 헌이를 가져가고 새이를 가져다 달라고 기도하는 우리나라 문화와는 달리 미국에는 이빨요정(tooth fairy) 문화가 있다. 빠진 이를 베개 아래에 넣고 잠이 들면, 이빨 요정이 와서 이를 가져가고 대신 돈이나 선물을 두고 간다는 이 전설은 미국에 디즈니 만화가 보급되며 대중화되었다. 이가 빠지는 것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에게 빠진 이를 보물처럼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아이들의 부모는 밤마다 바빴다. 나의 이빨요정이 되어주신 큰어머니는 항상 웃는 얼굴로 나를 막내딸 대하듯이 예뻐해 주셨다. 아들만 둘을 키운 우리 큰어머니는 십여 년이 지난 어느 해에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한국을 방문하셨고, 그때 우리 엄마는 큰어머니를 초대해서 며칠 같이 지냈다. 그때는 마침 내가 첫째를 막 출산했을 때였다. 나는 엄마가 암 수술을 하고 12번의 항암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졌다. 엄마가 다시 아프기 전에, 가정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기를 출산했을 즘에는 엄마도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하셔서 함께 아기가 뒤집는 것도 보고 기저귀도 갈고 이유식도 만들며 지낼 수 있었다. 때마침 한국을 방문한 큰어머니는 아기의 어리고 건강한 기운을 받고 싶다며 첫째는 많이 안아주셨다. 그때 큰어머니를 위해 엄마는 버터향 가득 팬케이크 대신 쑥이나 미나리로 전을 부쳐드렸고, 몸에 좋은 보양식을 많이 요리해 주셨다. 몸이 안 좋으신대도 이쁘다며 첫째는 계속 안아주시던 큰어머니는 지금은 거동도 힘드셔서 휠체어 신세지만, 지극 정성으로 간병하시는 큰아버지 덕분에 아직도 살아계신다.

팬케이크는 잘 굽는 게 중요하다. 팬에 기름을 키친타월로 골고루 발라주고, 잘 달궈진 후 불을 중불로 줄이고 반죽을 올려 구멍이 뽕뽕 뚫릴 때까지 뒤집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포인트다. 마음이 급해서 빨리 뒤집어버리면 찢어지거나 모양이 일그러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동그랗게 잘 구워진 팬케이크는 한 번에는 지글지글 갈색 모양이 그려지고, 한쪽 면에는 구멍이 뽕뽕 뚫려있다. 팬케이크 위에 버터나 시럽이라도 잘 올리고 나면 우리 아이들도 잘 먹는 아침식사였다. 무엇이든 입에 넣고 보는 호기심 가득 둘째와는 달리 이것저것 가리는 게 어려서부터 많았던 첫째는 팬케이크를 참 좋아했다. 매번 반죽의 농도가 조금씩 달라서 맛이 달라지긴 했어도, 아침마다 뇸뇸 맛있다며 포크로 찍어 먹는 딸내미 입안에 들어가는 걸 보면 팬케이크를 준비하는 마음은 항상 신이 났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고, 또 커서 초등학교, 중학교에 등교하고 나면, 접시에 남아있는 팬케이크 처리는 내 몫이었다. 차게 식은 팬케이크를 먹으며 커피라도 마시고 있노라면, 그 옛날 미국에서 우리가 다 먹어갈 무렵 테이블에 와서 앉으시던 큰어머니와 엄마가 먹던 맛이 그 맛일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우리가 흔히 집에서 먹는 팬케이크는 아메리칸 팬케이크로 두껍고 푹신한 스타일의 베이킹파우더로 부풀린다. 버터, 메이플시럽, 과일 토핑과 잘 어울린다. 팬케이크와 비슷한데 더 얇게 구워낸 크레이프(프랑스식 팬케이크)는 단맛 또는 짭짤한 재료와 함께 먹는다. 수플레 팬케이크는 머랭(달걀흰자 거품)을 반죽에 섞어서 만들어 일반 팬케이크보다 훨씬 가볍고 도톰하다. 독일식 팬케이크 (더치 베이비)는 오븐에서 부풀려 굽는데,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고 가장자리가 부풀어 오르는 형태라서 안쪽에 과일이나 요구르트를 토핑 해서 먹는다. 요즘에 아이들이 자라고 나서는 팬케이크를 아침으로 잘 먹지 않는다. 아침에는 탄수화물을 피하려는 아이들은, 밥심을 중요시하며 탄수화물로 아침을 채우고 자라던 나의 세대와는 달리 단백질과 채소 위주의 아침식사를 한다. 가끔 주일에 브런치를 여유 있게 먹는 날이 있으면 나는 그래도 더치베이비라도 준비한다. 그렇게 버터향이 집안 가득 퍼지고, 아이들과 그 따뜻함을 나눠먹고 나면 마치 어렸을 적 나의 이야기 안에 담긴 따뜻함 한 조각을 나눠 먹는 느낌이다.


엄마는 나와 함께 두 딸을 키워주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첫 번째 암수술 이후 10년은 보너스였다고 했다. 그 보너스 기간 동안 우리 두 딸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고 하셨다. 공부를 하며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내 옆엔 항상 엄마가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를 추억하면 항상 그 안엔 엄마가 살아계신다. 팬케이크를 굽던 그 후라이팬에도, 반죽을 하던 그 믹싱볼에도 우리 엄마가 담겨있다. 엄마가 보너스라고 하던 그 10년 동안 내가 차린 아이들의 밥상안엔 엄마가 담겨있다. 지독하게 엄마가 보고 싶을 땐, 내가 어렸을 때나 아이들이 어렸을 때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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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케이크, 종이에 과슈, 2025 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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