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나 샌드위치

by 수지리

참치 통조림은 한국인들이 상당히 즐겨 사용하는 식재료다. 참치는 샌드위치에도 많이 사용되지만, 김밥이나 덮밥, 김치찌개나 볶음밥에도 많이 넣어 활용한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참치 통조림은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원래는 프랑스에서 발명되어 포르투갈에서 대중화되었던 정어리 통조림이 19세기 후반~20세기 초 미국으로 건너가 메인(Maine) 주를 중심으로 큰 산업이 되었는데, 정어리 어획량이 줄어 공급이 어려워 참치를 대체 재료로 사용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참치캔이 생겨난 것이 1903년 경이었는데,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었고 우리나라에는 조금 지난 1960년대 이후 수입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엄마는 식빵 껍질을 칼로 잘라내고, 퐁신퐁신한 흰 부분만 잘라서 그 안에 참치마요네즈 버무리를 만들어서 샌드위치를 만들어주셨다. 참치캔 기름을 쪽 빼 준비해 두었다가, 오이는 얇게 사선으로 잘라 소금에 절였다가 쪽 짜서 오독오독하게 씹히는 맛으로 준비해서 마요네즈와 같이 버물여주면 준비 완료. 식빵 사이에 푸짐하게 넣어주고 랩으로 돌돌 싸면 그게 바로 어릴 적 내 단골 도시락이었다. 아삭아삭 씹히는 오이맛이 마요네즈에 고소하게 버물어진 참치 맛과 잘 어우러져 참 맛있었다. 엄마가 샌드위치를 싸주실 때면 나무 도마 위에 식빵 껍데기만 소복이 있곤 했다.

예원학교는 음악, 미술, 무용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다니는 예술 중학교다. 나를 피아노 신동으로 알았던 엄마는 내가 미술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던 날, 피아노 연습하기 싫어서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닌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보셨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아지기 시작한 이유는 그림을 그리는 그 시간이 그림에 남는 것이 좋아서였다. 쿠웨이트에서 살던 우리 집 내 방은 한쪽 벽이 통창으로 된 방이었다. 그 창은 아치형으로 되어있었는데, 그 창밖으론 수평선이 보였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운이 좋아 시간이 잘 맞으면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출을 그리는 것은 나의 일과가 되었다. 해가 바다에서 깨어나는 그 찰나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 보면, 해가 어느덧 떠올라 있었다. 그래서 또 그 모습을 그리고 있다 보면, 일출의 하늘을 물들였던 붉은빛이 전부 사라지고 푸른빛 가득한 하늘이 되었다. 그렇게 여러 모습을 담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보면 이내 종이는 물감과 물을 가득 머금고 울렁울렁 울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종이가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딱 바로 그 직전의 순간의 종이가 머금고 있는 색이 정말 이쁘다. 난 그 순간이 좋아서 종이에 구멍이 날 때까지 여러 번 레이어를 올려갔다. 나중에 미술 전공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종이를 좋은 걸 쓰면 종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해돋이를 그리는 행위는 그림을 그리는 나에게 그림과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림은 나의 시간을 담아내는 표현이다. 내가 눈에 담은 순간을 표현하는 순간 그림에 담긴 그 순간은, 내 앞에 더 이상 없기 때문에 그리움의 순간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다 그려진 그림을 바라보는 그 순간에 다시 한번, 나는 내가 그린 시간과 거리를 두고 그 시간을 대상화한다. 그렇게 두 번의 거리두기 과정을 거쳐 이미지가 되는 나의 시간은 나의 자국이 된다. 그래서 난 그림을 그린다. 과거의 시간이 담겨있는 그 이미지들은 나의 현재와 연결되어 끝이 나지 않는 시간으로 연장되고, 그 시간의 오묘한 연장선상에서 나는 시간의 표면을 느끼는 게 좋아서.

예원에 입학하고 나서는 하루에 도시락을 두 개씩 싸는 날도 생겼다. 점심도시락 그리고, 실기 레슨 때 먹을 도시락. 엄마는 점심도시락은 항상 보온도시락에 가득 밥이랑 반찬을 싸주셨지만, 레슨 때 먹을 도시락만큼은 비교적 간편한 도시락을 싸주었고, 그때 단골 메뉴가 참치샌드위치였다. 오독오독 씹히는 오이와 마요네즈 듬뿍 머금은 참치, 그리고 하얀 뱃살 식빵. 엄마는 참치 샌드위치를 싸주실 땐 사각형 빵을 반 잘라 두 개로 싸주셨는데, 가끔 엄마가 급하게 준비해 주신 날이면 오이에서 물이 조금 덜 빠지거나, 참치 기름을 덜 덜어낸 날이면 식빵이 젖어 물렁물렁해져있기도 했다. 다른 재료 없이 소박하게 참치만 들어간 샌드위치는 항상 나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고마운 도시락이었다.

예원을 졸업하고 예술고등학교를 거쳐 미술대학에 입학한 나는 드디어 입시라는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날개를 달았다. 아르바이트를 하여 용돈을 벌고, 그 돈을 모아 방학마다 이나라 저나라 다니며 듣고 싶은 수업을 듣고, 가고 싶은 곳을 찾아다녔다. 자유로워진 나와는 달리 엄마는 더 바쁜 생활을 시작했다. 엄마는 50살이 되던 해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마치 늦둥이를 키우는 것처럼 그렇게 엄마의 일을 키우셨다. 대학교 2학년때즘 나는 엄마와 일을 함께 하게 되었고, 그때부턴 나에겐 엄마는 엄마이자 사장님이었다. 엄마와 일을 함께 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도서관에 늦게까지 남아 공부하다가 집에 오는 밤이나, 학교 실기실에서 그림을 밤새 그리다가 새벽에 오는 날이나, 술 마시고 놀다가 뒤늦게 취해 들어오던 밤이면 우두커니 잠 못 들고 앉아 있던 엄마를 마주하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럴 때면 회사 걱정으로 잠 못 들던 엄마와 마주 않아 얘기를 나누다가 조금 더 늦게 잠들곤 했다. 엄마와는 출장도 자주 다녔는데, 주로 우린 파리와 뉴욕을 주로 다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엄마와 출장 다닐 때 조금 더 따뜻하게 잘해드릴걸 후회가 막심하다. 하루는, 아직 학생이었던 터라 학교에서 바로 공항으로 와야 하는 상황이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잡지를 챙겨서 와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뉴욕에 도착해서 미팅 바로 직전에 잡지를 열어보니, 우리 제품이 나와있는 페이지마다 다 가위질이 되어있는 게 아닌가. 아마 직원이 협찬 나간 부분들을 스크랩해서 정리하는 데 사용한 잡지를 엄마는 모르고 가져오셨던 거겠지. 그땐 그게 뭐라고 그렇게 화가 났던지. 모진 목소리로 엄마에게 엄청 투덜거렸던 기억이 난다. 뉴욕 한복판에서.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난 왜 엄마에게 그렇게 모질게 얘기했을까 지나간 그때의 시간이 한없이 원망스럽다.

한 번은 프랑스 파리에 출장 갔을 때였다. 보통 파리 갈 때마다 패션쇼장에서 꼬박 이틀을 보내곤 했는데, 액세서리 패션쇼는 의류 패션쇼와는 달리 런어웨이가 없이 박람회 형식으로 진행된다. 부스 하나하나 다 꼼꼼히 보고, 거래처에 들려 제품을 바잉 하는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밖에 나와서 밥을 사 먹고 들어가면 버리는 시간도 너무 많았고, 쇼장 앞에는 쓸데없이 값만 비싸고 줄은 긴 식당들이 수두룩했다. 언젠가 나는 쇼장 방문 일정을 앞둔 어느 날 밤에, 내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카르푸에 가서 식빵과 참치, 마요네즈를 사서 샌드위치를 쌌다. 호텔에서 간단히 준비해서 비닐봉지에 담아 가방에 넣고 쇼장으로 나섰다. 그날은 밖에서 시간 낭비할 필요도 없었고, 쇼장 안에서 간단히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했다. 나는 돈도 아끼고 시간도 벌고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며, 그날도 똑같이 하려고 호텔에 들어가기 직전 다시 카르푸로 향했다. 그때 나에게 들려오던 엄마의 목소리. '좀 따뜻한 점심을 먹으면 안 되니? 난 그 샌드위치 차갑고 뻑뻑해서 넘어가지도 않더라'.

효율과 시간만을 따진 나의 참치 샌드위치는 엄마를 나무라던 나의 가시 돋친 말만큼이나 차가웠던 모양이다.


난 참치마요김밥을 아이들 도시락으로 많이 싼다. 그리고 참치 샌드위치는 그렇게 자주 싸진 않지만, 엄마가 해줬던 것과는 달리 주로 빵을 굽고 양상추나 다른 샐러드 야채를 깔고 그 위에 참치 마요를 얹는다. 엄마가 내게 싸주었던 샌드위치는 따뜻한 음식이었지만, 내가 엄마에게 싸주었던 참치 샌드위치는 그렇지 못했다. 친절함이 그 따뜻함의 재료였던 거 같다. 나는 엄마를 닮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물어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차가운 딸이 아니라 따뜻한 딸 역할을 더 하고 싶은데, 그것도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 건지 물어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 영화배우 김혜자 선생님이 유퀴즈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천국에 안 가도 되니깐, 죽으면 남편 인사할 수 있게 천국 문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기도한다고 했다. 나도 죽으면 꼭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다. 엄마가 계신 천국 문 앞까지 꼭 갔으면 좋겠다.

튜나 샌드위치, 종이에 과슈, 2025 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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