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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과여름 Jul 25. 2023

내가 당신입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초임시절 교실 붕괴 직전에 이르며 나는 자책했다. 교실에서 학생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건 교사가 수업을 재미없게 가르쳤기 때문이고, 예의 없는 행동을 하는 건 교사의 카리스마가 부족하기 때문이고, 학급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면 리더십이 부족한 교사의 자질 탓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학부모의 잦은 민원과 무례함 또한 내 응대 능력이 부족한 탓이라 여겼다.


1학기가 끝난 첫 방학 동안 온갖 학급경영서와 연수를 찾아들었다. 교실 붕괴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절실한 마음으로, 교사 자질과 관련된 한 터럭의 연관도 있을까 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까지 밑줄 그어 가며 읽었다. 그러나 2학기에도 퇴근하면 매일 울었고 차라리 사라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해가 마무리되고 다음 몇 년은 평온했다. 어떤 해에는 직전 해에 담임교사를 폭행한 아이를 맡게 되었는데 그 아이가 내겐 안 그러길래 나는 내가 꾸준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교사로서의 능력치가 올라갔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나 12년을 돌아보니 나를 힘들게 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내 능력부족에서 기인한 게 아니라 피할 수 없는 불운과 같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와중에 학교 업무는 매년 늘어나기만 했다.


매년 다른 학생과 학부모 앞에서 나는 언제나 신규였다. 손때 묻은 책들과, 늘어난 이수 연수 목록과 신간 교육서적 앞에서도 나는 언제나 신규였다. 남편이 화가 났으니 찾아가겠다는 말에는 이제 준비된 대답이 있으나, 금요일 저녁에 전화와 일요일이 아이 생일이라 그날은 기분 좋게 보내고 싶으니 토요일까지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신박한 요구 앞에선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격앙된 목소리로 화를 내는 부모, 주말과 새벽에 연락하는 부모들에게 내가 바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교실 안에서의 일이 아니라 학원에서 생긴 일, 놀이터에서 생긴 일, 집에서 놀다가 생긴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나는 교사가 아니라 보육자와 민원센터 직원이 되어 있었다. 전화와 문자 알림음이 울리면 놀라고 걱정부터 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 아이 아침에 혼나고 갔으니 기분 풀어주세요.

숙제 못했는데 혼내지 말아 주세요.

학원도 다녀오고 피곤하니 숙제 내주지 마세요.

요즘 학교는 숙제를 왜 안 내요?

우리 아이 일기 쓰기 시키지 말아 주세요. 쓸 게 없대요.

글쓰기 교육 좀 시켜주세요.

급식 지도 하지 말아 주세요.

어느 정도 먹는지 궁금합니다. 잘 안 먹는 반찬도 먹을 수 있게 급식 지도해 주세요.

우리 아이가 집 앞 놀이터에서 다쳤는데 어떤 아이가 때려서 그렇다고 합니다. 조사해 주세요.


위 내용은 제가 들은 말 중 극히 일부분이다.


밖에서 본 교사의 삶은 안정적이고 편안해 보였다. 가난한 집의 장녀는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지만 다행히 어릴 때부터 꿈도 교사라, 존경받는 교사까지는 아니라도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새 나와 동료들은 민원처리반이 되어있었다.


교사들은 하루 8시간 근무한다. 그러나 퇴근시간 전까지 하루치 일을 마무리하는 사람은 드물다. 육아시간을 쓰는 교사라면 아이를 재우고 새벽까지 일해야 한다. 집에 가서 못다 한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수업 준비를 한다. 매년 업무가 더 늘어난다. 학교로 한 번 들어온 업무는 사라지지 않고 매년 추가되기만 한다. 그래서  매일이 초과근무인데 밖에서는 일찍 퇴근하는 직장으로 보인다. 학기중과 방학에도 필수 연수를 들어야 한다. 출석연수, 원격연수 연간 수백 시간이다. 발령받던 해에는 연간 60시간 이수였는데 매년 들어야 하는 필수 연수가 늘어난다. 그리고 다음 학기 교육과정도 봐야 한다. 다른 직장 다니다 늦은 나이에 교대 온 두 명의 교사는 취업사기 당한 기분이라고 한다. 돌아갈 수 있다면 예전 직장으로 가고 싶다고.


생을 마감한 교사에게 꼭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교사 자질이 부족해서 아이들 간의 문제가 일어나고 민원을 해결하지 못한 게 절대 아니라고. 나와 비슷한 연차의 교사도 훨씬 고경력의 교사도 거친 말과 협박성 멘트를 듣고 모멸감을 느낀다. 이런 걸 견디고만 있었던 선배인 내가 너무 미안하다.


늦은 밤 왜 차가운 학교에서 생을 마감했을까. 장소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난달 같은 학년 동료들과 이야기하다가 정신과를 가볼까 한다고 말을 꺼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던 동료 중 정신과 약을 한 번도 먹지 않은 사람은 저밖에 없었다. 이미 여러 동료들이 정신과를 방문하고 약을 먹고 있었던 것. 그중 한 명은 힘없이 웃으며 "저 어제도 밤 10시에 전화받았어요. 애가 자다가 너무 아프다고 우는데 혹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확인한다며 학부모가 전화했어요." 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학생지도에 있어 교사에게 아무런 권한이 없다. 때리는 아이 팔만 잡아도 실제 아동학대로 기소당한다. 대부분 무혐의로 판명되나 몇 년씩 걸리는 과정에서 교사에게는 상처만 남는다. 또한 이걸 감내만 하다 불안과 우울증이 생겨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이후 극단적인 시도를 한다 해도 직무연관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교사 개인의 우울증 때문이었다고 내몰리는 현실이다.


나는 지금까지 세 번의 탄원서를 썼다. 정서적 학대로 2년 전에 가르친 아이 부모로부터 아동학대 기소를 당한 옆 반 선생님을 위해 쓸 때 교직의 자조적인 말 ‘탈출은 지능순’ 이란 말을 실감했다. 지난 2년간 주변에 사직한 교사가 셋이었다. 10년간 학교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의원면직(사직)이란 용어를 세 번 들었다. 그중 가장 젊은 분은 사직하고 공부해서 약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갔다. 젊은 교사들은 더욱더 이탈할 테다. 우리나라 공교육은 미래가 없다.


교실에서 문제 행동을 일삼는 아이들, 교사에게 직접 전가되는 민원, 소송을 당할 때 보호해 주는 기관 없이 철저히 자영업자처럼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현 상황, 책무만 많고 권한은 없는 이 시스템이 바뀌지 않고 개인의 문제라 여기게 된다면 젊은 교사의 이탈률은 더 늘어날 것이다. 교실 속 교사들의 병이 깊어지는 것도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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