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다시 시작해본다.

후회 없는 하루로 남기고 싶은 오늘을.

by 온오프

응애, 응애 -


익숙하면서도 낯선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 번쯤은 꿈속에서라도 다시 듣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소리였다.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맑게 돌아가지 않는 상태에서, 그 소리는 점점 또렷해졌다.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것 같은데, 동시에 방금 전까지도 곁에 있었던 것처럼 생생한 울음이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자 낯익은 풍경이 펼쳐졌다. 분명 지금의 집이 아닌데,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익숙했다. 벽의 색감, 햇살이 스며드는 방향, 공기 속에 남아 있는 그 시절의 냄새까지. 세차게 울고 있는 아이를 보는 순간, 나는 숨을 멈춘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몇 번이고 비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볼을 꼬집어보기도 했다.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현실감이 흐릿해지는 순간이었다. 그제야 확신이 들었다.


“아, 꿈이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지나치게 선명했다. 공기의 온도, 빛의 방향, 아이의 숨소리까지. 손끝에 닿는 촉감마저 너무 또렷해서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아이를 품에 안았다. 이런 꿈이 내게 주어지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벅찼다. 녀석의 눈빛이 눈앞에 있었다. 작은 눈빛이. 나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그 눈이 이상하게도 나를 붙잡고 있었다. 코끝에 닿는 익숙한 냄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하지만 절대 잊히지 않는 그 시절의 냄새.


아직 말도 못 하면서 온 힘을 다해 울어대던 그 울음소리마저 감동적이었다. 따뜻하고 말캉한 몸을 품에 안고 있으니,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나는 그 아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조금 더 세게 끌어안았다. 혹시라도 이 시간이 흘러가 버릴까 봐, 아주 잠깐의 틈이라도 놓칠까 봐. 꿈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꿈이 아니기를 바랐다.


“엄마가…
그때는 엄마도 처음이라서,”


말을 꺼내려 했지만 문장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은 분명히 많았는데,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맴돌기만 했다.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아니 어떤 말도 이 순간을 다 담아내지 못할 것 같아서.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머리카락 한 올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오롯이 내 눈에, 내 마음에 한가득 담아낸다. 이 순간이 흘러가 버릴 것을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잡아두고 싶었다.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었다.


“있지, 조그만 네가 형아가 되고, 오빠가 되었어. 이렇게 작고 어린 너였는데, 나는 네가 형아가 되었다고 의젓하다고 생각했지 뭐야. 너도 아긴데, 키가 쑥 크고 몸무게가 늘어도 너는 아직 여섯 살인데, 그치?”


다정하게 속삭이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후회의 눈물일까, 반가움의 눈물일까. 알 수 없다. 어쩌면 그 둘이 뒤섞인 감정일지도 모른다. 내게 시간이 얼마나 주어졌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급해진다. 나는 아이를 안고 집안을 돌아본다. 묵직해진 기저귀를 갈며 또 한 번 마음이 내려앉는다. 아이 셋을 키워낸 손놀림은 이렇게 능숙한데, 모든 게 처음이던 그때는 이 기저귀 가는 일마저 엄청난 무게의 일처럼 느껴졌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그때의 나는 늘 서툴렀고, 늘 조급했고, 늘 지쳐 있었다. 부드러운 볼을 쓰다듬고, 작디작은 손을 괜히 한 번 더 잡아본다. 이 작은 손을, 나는 얼마나 많이 놓치고 살았던 걸까.


“너무 소중한데... 지나고 보니, 돌이켜 보니 이 순간이 이렇게 소중한데 그때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힘들다는 핑계로 더 많이 안아주지 못한 것 같아. 때로는 버럭 짜증이 나기도 했고, 이유 없는 울음에 같이 울어버리기도 했었지.”


나는 아이를 더 깊이 끌어안았다.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따뜻하게. 뒤늦게 밀려오는 감정이 가슴 한가운데를 파고들었다. 지겹도록 들었던 모빌의 음악 소리마저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단순한 멜로디였을 뿐인데, 지금 이 순간에는 그 어떤 음악보다도 깊게 마음에 스며든다. 좋은 곳에 가지 않아도, 비싼 옷을 입히지 않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이렇게 안고 있는 이 순간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걸, 나는 너무 늦게 깨달은 초보 엄마였다. 그래서인지 꿈에서나마 이 아이를 품에 안고 온기를 전한다. 그때 못 해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했었거든? 다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자신이 없지만, 과거로 돌아가 너를 다시 키워낼 시간이 주어진다면 정말 잘할 수 있다고, 후회 없이 정말 잘 해줄 수 있다고. 근데 막상 이렇게 어린 너를 보니까, 그냥 안아주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어. 어쩌면 그건 자기합리화였는지도 몰라. 엄마가 처음이라서 서툴렀던 모든 행동들에 대한 합리화였는지도 몰라."


꼬물거리는 너의 손을 잡고는 가만히 가슴 위에 얹어본다. 콩닥거리는 심장소리가 네게도 닿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 작은 몸으로도 느끼고 있을까,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 전부를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이 마음이, 너에게 분명 전해지고 있다고 믿는다. 베시시 웃는 너의 미소가 나에 대한 사랑인지, 그저 배냇짓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밝은 미소에 나는 울면서 웃는다. 그 웃음이 기쁨인지 슬픔인지조차 구분되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안고 있었던 것 같은데, 문득 눈을 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용한 방 안, 낯익은 천장.


그리고 내 옆에는,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아이가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다.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얼굴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품에 안고 있던 그 작은 아이와는 다른 얼굴이었지만, 분명 같은 아이였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나는 그 흐름 속에 있었다.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아이를 끌어안았다. 혹시라도 깰까 봐, 아주 살며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꿈에서 깨어났지만 나는 알고 있다. 꿈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꿈은 그저 꿈일 뿐이라는 걸. 그래서 더 선명하게 남는다.


메마른 눈물자국 위로 눈부신 햇살이 비친다. 아침이 밝았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가 다시 시작되겠지만, 내 마음은 분명 어제와 같지 않다. 여전히 똑같은 하루의 시작이겠지만, 나는 오늘을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진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많이 사랑해주자. 아주 사소한 순간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말자. 지금 이 순간을, 언젠가 다시 돌아가고 싶어질 하루로 남기지 않도록.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스며드는 봄을 느끼며,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하게 이 하루를 다시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