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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아이는 달빛을 걷고,

어린 아이는 달빛에 잠들다.

by 온오프


희아는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길게 핀 머리카락이 어깨를 덮었다.

눈가엔 반짝이는 펄, 입술은 짙은 붉은빛.

거울 속 얼굴은 어딘가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 같았다.


화장대 위엔 향수병, 헤어드라이어,

그리고 젖은 젖병 하나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조용히 좀 해…”

방 안 가득한 아기 울음소리에

희아는 짜증 섞인 한숨을 쉬었다.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희아는 과자봉지를 뜯어 아이 앞에 던졌다.

“이거나 먹고 좀 가만히 있어.”

과자가 쏟아졌고,

아이는 울다 말고 바닥을 기어갔다.


희아는 다시 거울을 바라보며 속눈썹을 올렸다.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예쁘네. 완전 아이돌 같아.”

18살의 엄마는,

자신만큼이나 아이를 돌볼 줄 몰랐다.

그녀도 아직,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라 믿는 아이였으니까.


트렌치코트를 걸쳤다.

고급스럽진 않아도 깔끔해 보였다.

어깨선을 정리하고, 거울 앞에 선 그녀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자신을 비춰봤다.


“가을엔 트렌치코트를 입어야 한다더니.”

그녀는 휴대폰 화면을 비스듬히 기울이며 웃었다.

“이 각도, 이 조명… 와, 인생샷 각이다.”


찰칵—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더 올리고 필터를 바꿨다.

“좀 더 분위기 있게… 이게 낫네.”

아이 울음이 다시 문틈을 타고 새어 나왔다.

희아는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왜 저래… 지금 사진 찍고 있잖아.”

화면 속 희아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붉은 입술, 반짝이는 눈,

그리고 완벽히 여며진 트렌치코트.

마치 ‘엄마’라는 단어가

그녀의 사전엔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휴대폰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다시 거울 속 자신에게 말했다.

“그래, 이게 진짜 멋이지.”

그녀는 담배 한 개비를 집어 들고,

창문을 열어 불을 붙였다.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자

피부에 닿는 온도마저 어른이 된 듯 느껴졌다.


희아는 아이가 있는 방 불을 꺼버렸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거실엔 잠시 적막이 흘렀다.

작은 울음소리가 이불 속에서 부서지듯 들려왔다.


희아는 힐을 꺼내 신었다.

거울 앞에서 한 번 돌고, 머리를 넘겼다.

또각— 또각—

발소리가 리듬처럼 방 안을 채웠다.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희아는 짧게 미소 지었다.


달빛이 트렌치코트를 비췄다.

그 빛은 유난히 차가웠다.

골목 끝까지 걸어 나가며

희아는 휴대폰을 열었다.


SNS 라이브 알림창이 켜졌다.

“#밤산책 #트렌치코트 #가을밤 #혼자_걷기좋은날”

어둠 속, 달이 천천히 떠올랐다.

집 안의 불빛은 꺼져 있었고,

창문 안쪽엔 아무 그림자도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말했다.

가을엔 트렌치코트를 입어야 한다고.

희아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역시, 트렌치코트 정도는 입어줘야 돼.”

철없는 희아에게 트렌치코트는

멋이자, 엄마라는 이름을 감추는 가면이었다.

달빛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 고요한 빛이 골목을 따라 번지며

그녀의 집 문턱을 천천히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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