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하나, 캐나다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도전기.
누가 하우스키핑을 쉽다고 말했던가?
밴쿠버의 나의 첫 직장이었던 하우스 키핑,
3일 만에 잘렸어요.
하우스키핑이란 일반적으로 가사, 가정, 가계를 뜻하는 말인데 호텔의 ‘Housekeeping’이란 객실의 관리 및 객실부문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모든 것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객실 정비의 업무를 보면 객실 청소와 객실의 설비, 가구, 비품류의 정비 그리고 객실용의 린넨류, 소모품류의 관리를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하우스 키핑 [House Keeping] (호텔용어사전, 2008. 2. 20., 레저산업진흥연구소)
# 밴쿠버의 최저시급, 그리고 하우스 키퍼를 선택한 이유
내가 워홀을 갔던 당시, 밴쿠버(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최저시급은 12.65 달러 (2018.06 기준) 정도로 알버타 주나 온타리오 주와는 비교적으로 적은 시급을 형성하고 있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최저시급은 적으나, 굉장히 비싼 렌트비와 물가를 형성하고 있다는 매우 큰 단점이 있다. 따라서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하기 전에는 최저시급과 세금을 비교하고, 물가와 렌트비 등을 그 도시가 속한 주별로 비교해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우연히 이미 밴쿠버에 다녀온 워홀러의 블로그를 보고서 나는 미친 듯이 홀려 '하우스키핑'이라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블로그 글에 의하면, 최저시급이 적은 밴쿠버에서 '하우스키핑'은 타 직종보다 3-5불 정도 높은 시급을 받을 수 있었고 좋은 고객을 만나면 쏠쏠한 'Tip'까지 받을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투숙객들이 냉장고에 두고 간 맥주, 와인 및 각종 음료를 공짜로 획득할 수 있는 기회까지! 맥주에도 세금이 붙는 밴쿠버에서 맥주와 와인을 얻을 수 있다니, 나에게는 꿈에 그리던 직업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매일매일 하우스키핑 레주메를 쓰며 공짜 맥주를 마시는 꿈을 꿨다.
하우스키핑의 몇 가지의 장점을 더 나열하자면 스케줄이 유동적인 다른 서비스직에 비해, 08-16시 정도로 시간이 고정되어 있어서 일정한 생활패턴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영어가 부족하더라도 건강한 두 다리와 두 팔만으로도 일을 할 수 있는 장점들이 있었다.
#하우스키퍼 인터뷰, 그리고 첫 출근
생각보다 밴쿠버에는 많은 호텔이 있었지만 하우스키핑의 TO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공고가 나오는 즉시 레주메를 크레이그리스트(https://vancouver.craigslist.org)와 밴쿠버 인디드(https://ca.indeed.com/jobs-in-Vancouver,-BC )를 통해 지원했다. 간혹 면접을 보러 오라는 호텔이 있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거나 Trial 기간에 시급을 적게 준다는 단점들이 있었다. 한 달 정도 잡을 구하지 못하다가 집에서 5분 거리의 비즈니스호텔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메일이 왔다. 면접을 잘 보고 싶어서 구글에 'housekeeper Interview'까지 검색하여 Q&A를 달달 외워 면접을 준비했다.
드디어 면접 당일, '다라'라는 매니저는 산티아고 순례길, 자전거 국토대장정 등의 이력을 보고 남자로 알았다고 했고 내가 쓰고 있는 'Joy'라는 이름이 중성적인 이름이라 남자라 판단했던 것 같다. 다라는 원래 하우스키핑 포지션이 있었으나 이미 뽑았고, 현재는 하우스맨이라는 포지션 TO밖에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해보겠다고 의지를 불태우고 면접에서 나왔다. 내일부터 나올 수 있느냐고 매니저는 나에게 메일을 보냈고, 나의 첫 잡의 시작은 Robson st. 의 작은 비즈니스 호텔에서 시작되었다.
#하우스맨이라고 뭐 다르겠어?
이 곳에는 다른 호텔보다 작은 규모였고, 젊은 하우스키퍼는 없었고 이곳에서의 경력이 5년에서 10년 이상인 인도, 필리핀계의 40-50대의 여자분들이 주로 하고 계셨다. 매니저는 나에게 일을 알려줄 뉴질랜드 청년 벤을 소개해줬다. 벤은 차근차근 '하우스맨'이라는 일을 알려주었다. 주로 하우스키퍼는 청소를 하우스맨은 침대 사이즈 변경, 침대 시트 체인지, 쓰레기통 비우기 등의 힘을 쓰는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힘들다, 이 일.
본래 다른 호텔에서는 하우스맨의 일도 하우스키퍼가 하는 일이지만 이 곳은 듀티를 분리하여 일을 하는 것 같았다. '뭐 원래 하우스키퍼가 하는 일니까'하고 벤에게 엄청난 열쇠 묶음을 받고선 첫 멘붕이 왔던 것 같다. '뭔 창고가 이렇게 많아? 다 어떻게 기억하는 거야?' 나의 두 번째 멘붕은 무전기였다. 보통 하우스키퍼 혼자 일을 하기 때문에 서로 소통할 일이 별로 없지만 이곳은 침대와 쓰레기 처리 등은 하우스맨이, 주방과 화장실 등은 하우스 키퍼가 담당하기에 무전기로 소통하는 게 중요했다. 매니저는 첫날부터 무전기로 내 이름을 불러댔고, 코워커인 인도인들의 발음은 전자음 소리와 함께 뭉개져 들렸다. 나는 알아듣기 힘들었고 무전기로 들리는 영어에 좌절했던 것 같다. '왜 내 이름은 joy여서 기억하기 쉽게 지었을까. 영어 이름 잘 못 지은 것 같아.'라고 후회도 해보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조이, 오늘까지만 일해
매니저도 답답했는지 무전기로 응답만 잘하면 되는데, 대답 못하는 나를 찾아다니기 일쑤였고 연이어 이틀 동안 파트너였던 벤의 휴무가 있었다. 킹 침대를 만드는 일(더블 침대 두 개를 붙여 킹 사이즈 침대를 만든다.)과 킹사이즈 침대 시트를 찾는 일을 초짜인 내가 하기엔 많이 버거웠다. "베이비 침대는 어디 있고, 창고에 쌓인 침대 시트는 다 똑같이 보이는데 어떻게 구별하는 거야?"라고 물어볼 이가 없었고, 비가 오고 비를 맞으며 무거운 쓰레기봉투를 버리는 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힘든 마음을 다독이며 침대 시트를 찾아 창고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그것을 CCTV로 보던 매니저 다라가 "조이, 매니저 룸으로 와" 무전기를 통해 말했다. 안 들리던 영어는 왜 이런 상황에서는 잘 들리는 건지, 매니저 룸에 찾아가 다라 앞에 앉았다. "조이, 너는 지금 하고 있는 일 어때? 너 많이 힘든 것 같은데 오늘까지만 하는 게 좋을 거 같고, (블라블라) 페이는 다음 달에 줄게". 이렇게 나는 첫 직장에서 3일 만에 잘렸다. 허무한 마음을 안고서 집에서 홀로 눈물을 훔쳤다. 나의 캐나다 워홀의 첫 시작은 이렇게 눈물로 시작되었다.
#하우스키퍼 쉽지 않아요. 워홀도 쉽지 않아요. 인생도 마찬가지 겠죠?
나와 같은 생각으로 많은 워홀러들이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하우스 키퍼라는 잡을 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하우스 키퍼의 카트와 침대의 침구의 무게는 무거웠다. 무전기 밖에로 들리는 영어는 듣기 힘들었고, 매니저는 나를 따라다니며 괜히 눈치까지 줬다. 결론적으로 나는 공짜 맥주와 와인은 보지도 못했고, 단 3일 만에 캐나다라는 낯선 땅에서 잘렸다. 나이 서른이 넘어 찾아간 캐나다에서 맞이한 '첫 실패이자 좌절'였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육체적 노동과 새로운 도전을 향해온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던 날들이었다. 훗날 이 일화는 가족, 친구들과 재밌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안주거리가 되었지만 나에게 있어서 굉장히 큰 의미로 다가온 워홀러로서의 첫 좌절이자 소중한 기록이다.
(저는 18년도에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왔습니다. 저의 일기를 기반으로 브런치에 글을 옮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