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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오프조이 May 24. 2019

밴쿠버 2층 침대 살이

서른하나, 캐나다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도전기.


밴쿠버에서의 나의 첫 집은 2층 침대의 2층이었다.


한국 나이로 31살의 나이로 캐나다를 온다고 했을 때 사실 스스로도 납득이 가는 이유를 만들지 못하였다. 남자 친구를 설득할 만한 이유조차 너무 터무니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잠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 이유 하나로 온전하게 타지에서 나를 생각하며, 이 곳에서 일하고 열심히 일한 대가로 이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 그 이유 단 하나였다.


이러한 이유로 밴쿠버에 도착하고 내가 얻은 첫 집은 월 $450의 거실 셰어, 게다가 2층 침대의 2층이었다.

(나의 밴쿠버 첫 집, 2층 침대 / Nicola st. )


잘 다니던 직장, 홀로 방을 쓰던 한국의 집에서 벗어나 문도 없고 룸메들이 요리를 시작하면 모든 연기들이 응집되는 내 집은 침대 2층이었다. 아직도 그 작은 집에 내 몸을 눕히던 첫 날밤을 잊지 못한다. 서른 하나의 새로운 삶은 그 작은 보금자리 그 자체였다.


밴쿠버에서 아직 잡을 구하지 못한 서른한 살의 이 집의 가장 큰 언니의 굴욕적인 순간은 나보다 나이 어린 다섯 명의 룸메들이 모두 출근한 '정적이 흐르는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 집에는 총 여섯이 함께 살았다. 마스터 룸 2명, 세컨드 룸 1명, 거실 셰어 2명, 창고 같은 공간 '덴' 1명)


한국에서의 나의 삶은 친구, 가족, 남자 친구와의 시간으로 가득 채워졌는데 연락할 어느 누구 하나 없다는 그 이유 자체와 서른하나의 언니가 아직 일을 하지 않고 백수의 삶을 연명해 가고 있다는 그 이유였을 것이다.


(2층 침대에 누우면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그라우스 마운틴이 보이곤 했어요. )


그럼에도 Nicola st. 에서 살던 나의 삶 하루하루는 고통스러웠지만 아름다웠다. 작은 공간에 몸을 누우면 보이던 석양과 그라우스 마운틴은 '내가 이곳에 있음'을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매일 밤, 스스로 되뇌었다. '그래, 밴쿠버에 참 잘 왔어. 이렇게 아름답잖아.'





(저는 18년도에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왔습니다. 저의 일기를 기반으로 브런치에 글을 옮기고 있습니다.)  




여행에는 그게 있어요.

돌아오면 역시 또 그 사람으로 살겠지만

나, 떠나기 전과 100퍼센트 똑같은 사람은 아니에요.


그리고 여행이 끝내 남기는 것, 작별, 거리를 두기 때문일까요.

나를 묶어두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낯선 속에 혼자 떨어뜨려놓고 속마음을 들여다보기 때문일까요.

혼란스럽던 문제들이 불현듯 명료해지는 순간.


여행의 순간은 흘러가버리지 않고 내 몸안에 새겨집니다.

여행을 하고 있을 때는 그것을 수행하느라 긴장되고 바쁘잖아요.

그런 점에서 어쩌면 여행의 여정이란 돌아온 다음부터,

내 마음속의 반추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 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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