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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오프조이 May 24. 2019

에피소트 #1 잉글리쉬 베이에서-

서른하나, 캐나다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도전기.

밴쿠버 워킹 홀리데이 초기 에피소드 #1
이것이 듣기만 했던 어린 동양 여자를 향한 '플러팅(flirting)....?'


밴쿠버에 도착한 지 3일 만에 있었던 일이다. 집 주변 마트도 물가도 비교하고 도서관도 구경하고 싶어서 초보 워홀러의 기운을 물씬 풍기고 있던 그때, 도로의 끝에 반짝반짝 아름다운 '잉글리시 베이'가 보였다.


지나가는 이들의 햇볕을 피하기 위해, 잠시 여유를 느끼도록 잉글리시 베이에는 통나무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밴쿠버의 쨍한 햇빛을 피하고자 나도 통나무에 잠시 앉아 음악을 듣고 있었다. 살랑이는 바람과 상쾌한 공기가 내가 캐나다 밴쿠버에 있음을 물씬 느끼게 해 주었다.


그때 70이 훌쩍 넘은 것 같은 할아버지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통나무에 걸터앉아서 나에게 이야기를 걸었다. '한국 사람이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대화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분은 2년 전 한국을 여행한 적이 있었고 여수와 인천, 서울을 여행하셨다면서 현재는 ESL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하셨다. 캐나다에 얼마 오지 않은 나는 '한국'이라는 공통의 주제로 신나게 수다를  떨 수 있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러고는 카페에서 자리에 옮겨서 커피를 사주시면서 자신의 홈페이지를 보여주시면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하신다고 특히, 여행이 취미라고 하셨다. 나도 또 신이 나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몇 해 전에 다녀왔다고 하니, 자신의 버킷리스트라며 현재는 몸이 불편해서 가지 못해 너무 아쉽다는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나눴었다.


여기까지의 대화가 신기하고, 현지인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귀한 경험이라 생각이 들었다. 밴쿠버의 밤이 어둡게 드리워지고, 밴쿠버 초보 쫄보인 나는 겁이 많은지라 집에 가려고 대화를 마무리하고자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자기네 집에서 밥을 차려주시겠다고 집에 초대하려고 하셨다. 초대는 감사했으나 오늘 처음 본 할아버지 댁에 초대받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거절했다. 아쉬워하시면서, 나중에는 차로 드라이브를 같이 가자고 내 연락처를 물어보셨다. 나는 캐나다 번호가 이미 있었으나 아직 개통 전이라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할아버지의 페이스북 이메일만 적어서 집으로 향했다.


룸메들에게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오늘 하루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자,


나보다 밴쿠버에 오래 있었던 룸메들이 "언니... 그거 할아버지가 어린 동양 여자들한테 꼬리 치는(flirting) 거예요. 다시 만나지 마요"라는 것이다. 나는 여행, 한국, 사진 등 다양한 소재로 얘기하고 캐네디언이랑 영어로 대화했다는 뿌듯함에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의 현실은 캐내디언에게 동양의 어린 여자는 캣 콜링, 플러팅 등의 대상이 되기 쉽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할아버지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다. 사실, 아직까지 그분의 의도가 '동양인의 어린 여자'를 꼬시려는 의도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타지에서는 모든 위험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나부터 조심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캐나다 도착 3일 만에 있던 일이었고,

잉글리시 베이를 산책할 때마다 생각나던 할아버지는 내 워킹홀리데이가 끝나갈 때까지 단 한 번도 뵙지 못했다. 다시 마주치면 어쩌나 불안감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도 잉글리시 베이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산책길이 되었다.

 


(저는 18년도에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왔습니다. 저의 일기를 기반으로 브런치에 글을 옮기고 있습니다.)  





내가 많은 걸 바라지 않는 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그게 관계를 가볍게 만들어주거든.

누구나 짐을 지는 건 싫어하니까.

연우야, 이거 중요한 충고야.

약간 멀리 있는 존재라야 매력적인거야.

뜨겁게 얽히면 터져, 알겠지?

/ 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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