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둘째 날
10시에는 호스텔에서 나가기 위해 8시부터 일어나서 준비를 했다. 아침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안네 프랑크의 집'을 신청하는 것이었다. 약 두 달 전부터 예약이 마감되는 인기 있는 관광지라, 우리가 암스테르담을 여행지로 고르고 나서 신청하려고 보니 이미 늦은 상태였다. 다만, 당일 아침 9시에 표의 20%가 풀린다고 해서 8시 50분에 알람을 맞춰놨다. 사실 어제 버스에서도 도전했었는데 9시 15분쯤 들어갔더니 앞에 대기 인원이 500명 가까이 됐고, 들어갔을 때는 이미 자리가 다 찬 뒤였다. 그래서 8시 50분에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역시나 대기 인원이 300명 정도 있었다. 한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드디어 들어가졌는데, 오후에 자리가 있었다!! 오전에 가고 싶었으나 이 정도 수정으로 방문할 수 있다니 참 다행이었다. 저녁 6시 30분에 예약을 마쳤다.
저녁을 부실하게 먹었으니 아침은 확실하게 먹기 위해 호스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신청했다. 조식은 8유로였다. 한화로 치면 만 원으로, 꽤 비싼 편이지만 암스테르담에서 8유로는 상당히 싼 가격이다. 체크인할 때 미리 이틀 치를 신청했으면 한 끼에 7유로다. 빵, 잼, 요거트, DIY 핫도그, 오렌지주스, 커피, 물 등이 제공되었다. 핫도그를 2개나 만들어 먹었더니 배가 상당히 불렀다.
준비를 이것저것 하다 보니 11시가 되어버렸다. 원래는 오전에 안네 프랑크의 집에 갔다가 오후에 잔세스칸스에 가려고 했는데, 안네 프랑크의 집을 오후에 예약했기 때문에 잔세스칸스에 먼저 가기로 했다. 중앙역에 있는 티켓 발권기에서 잔세스칸스로 가는 기차표를 샀다. 왕복 7.8유로였다. 암스테르담에서 잔세스칸스 가는 길 사이에 있는 잔담도 들릴 수 있는 표였다. 기차 타고 한 20분 정도 가니 잔세스칸스 역에 도착했다. 한 15분 정도 걸어가야 우리가 볼 마을이 나온다. 장난감으로 만든 마을 같은 느낌이었다. 날씨가 맑지 않아서 사진으로 보던 것만큼 예쁘지는 않았지만, 아담한 마을이 귀여웠다. 원래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사람은 안 살고 다 식당이나 치즈가게, 기념품 가게인 것 같았다. 같이 간 친구가 미피를 좋아해서 아주 행복해했다.
비가 예정되어있었기 때문에 비오기 전에 최대한 많은 사진을 찍기로 했다. 딱 풍차 앞에서 사진을 다 찍고 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어제처럼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였다. 우산이 뒤집어지고 난리였다. 춥기도 하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보이는 가게는 다 들어가 봤다. 치즈 가게에 들어갔더니 치즈를 시식할 수 있는 곳이 있어 염소치즈랑 baby sheep 치즈를 먹어봤다. 염소 치즈는 냄새랑 맛이 고약했다. 마트에 팔 때 안 사길 잘한 것 같다. baby sheep 치즈는 그냥 평범한 치즈맛이었다. 그 외에도 트러플, 허브, 커리 등등을 넣은 다양한 치즈를 팔고 있어서 맛을 봤다. 엄청 끌리는 맛은 아니라 사지는 않았다.
나막신 가게에도 들어갔는데 나막신을 신은 미피가 있었다. 나막신을 만드는 과정도 짧게 보여주는 곳이었다. 나막신을 직접 신어봤는데 좀 무거워서 아마 이제는 직접 신는 건 아니고 그냥 기념품으로 사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키링으로 만들어진 나막신도 있어서 살까 말까 하다가 일단 그냥 나왔다. 여전히 비바람은 거셌다. 슬슬 배도 고파지기 시작했다. 마을에 들어오는 길에 창문에 미피가 아주 커다랗게 있던 가게가 있었다. 우리가 '미피의 집'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그곳에 들리기로 했다. 안에 들어갔더니 미피 인형이 아주 다양하게 전시되어있었다. 정말로 미피의 집이었다. 친구가 일주일 전쯤 생일이었기 때문에 생일 선물로 미피 인형을 하나 사줬다.
한 2시간은 걸은 듯하다. 어제도 많이 걷고 오늘도 많이 걸어서 다리랑 발이 매우 아팠다. 잠을 거의 못 잤는데 그래도 이 정도 버티는 거 보면 체력이 좀 좋아진 것 같기도 하다.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는 길에 잔담에 들리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가 잔세스칸스를 떠나려고 하니 점점 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유럽의 날씨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잔담에 가는 기차를 탔다. 그런데 잔담에 도착하니 하늘이 아주 예쁘게 개었다. 잔담에는 레고처럼 생긴 호텔밖에 볼 게 없다고 했는데, 정말이었다. 그래도 맑은 날씨와 함께 보니 정말 예뻤고, 사진도 잘 찍었다.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데 날씨가 정말 추웠다. 패딩을 입을까 코트를 입을까 했었는데 패딩을 입고 오길 정말 잘했다. 비둘기가 자꾸 우리한테 다가와서 열심히 피하다 보니 우리가 탈 기차가 왔다. 배가 고파서 중앙역 근처에 있는 음식점을 찾아봤다. 미트볼 가게가 가격도 적당하고 맛있어 보였다. 가짜 고기(?)가 아니라 진짜 고기인 것 같았다. 중앙역에 내렸더니 그때도 하늘이 아주 예뻤다. 중앙역이 네덜란드 왕궁보다 예뻤기 때문에 사진을 찍었다. 친구에게 사준 미피와 함께 찍은 중앙역 사진이 매우 마음에 든다.
미트볼은 맛있었는데 양이 좀 적었다. 게다가 좀 짜서 밥 생각이 간절했다. 아쉬운 대로 빵을 추가해서 같이 먹었다. 안네 프랑크의 집에 가기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밥을 다 먹고 어떻게 할지 상의를 하고 있는데, 사장이 "너네는 밥 먹는 것보다 더 오래 앉아 있네"라고 얘기했다. 가게에 웨이팅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우리밖에 손님이 없었는데 기분이 나빴다. 사실 들어갈 때부터 손소독제로 손 닦아달라고 해서 인종차별인가? 싶었는데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그래서 계산을 하고 나와서 중앙역 근처를 구경했다.
기념품 가게가 있길래 들어가서 구경하다가 나막신 키링을 하나 사서 나왔다.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며 든 생각이 있는데, 네덜란드 사람들은 대마랑 개방적(?)인 성 문화를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대마나 성 문화와 관련된 기념품이 엄청 많다. 성기 모양이나 대마 모양을 한 병따개 등등을 판다. 내가 보기에 홍등가는 그냥 여성을 상품화하는 곳일 뿐이고 성매매 합법화로 인해 결국 그 시장이 커졌기 때문에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기념품만 봤을 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대마는 뭐 합법이고 피겠다니 별 생각은 안 들지만, 냄새가 담배보다 심해서 주변에 핀 사람이 있을 때는 정말 강하게 나고, 피는 사람이 없어도 옅게는 났다.
그러다 안네 프랑크의 집에 갈 시간이 되어서 열심히 걸어갔다 걸어가는 길에 큰 교회를 봤는데, 나중에 안네 프랑크의 집에도 과거의 그 교회 사진이 걸려있어서 소름이 돋았다. 처음 안네 프랑크의 집 티켓을 구매할 때 Europian youth로 신청을 했었는데, 국제학생증이나 ICHEC 학생증으로는 할인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아마 Europian youth라는 카드가 따로 있나 보다. 결국 각각 5.5유로를 더 내고 입장했다. 이 곳 오디오 가이드는 무료였지만 한국어가 없어서 영어로 듣게 되었다. 확실히 알아듣기가 힘들었고, 초집중을 해서 들어야 했다. 그래도 오디오 가이드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훨씬 좋다.
안네 프랑크가 숨어 살았던 집을 직접 걸어보니 답답하고 먹먹했다. 안네 프랑크네 가족과 그 외 유대인들은 아래층 창고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들키면 안 되어서 밤이고 낮이고 숨죽여 살았다. 밖에 나갈 수가 없으니 다락방 같은 곳에 올라가 바깥공기를 마셨다. 그들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는 문은 책장으로 막혀있었다. 어릴 적 안네의 일기를 읽기는 했지만 직접 와서 걸어보니 느낌이 사뭇 달랐다. 이번 여행지 중 두 번째로 좋았던 곳이다. 좋다는 말을 붙이기에는 좀 슬프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방문하고 기억한다는 게 다행인 일이었다. 한 가지 의문점은 안네 프랑크 가족 중 아버지만 살아남았는데, 이게 어떻게 가능했느냐다. 안네 프랑크 풀버전을 읽고 싶은데, 기념품점에 파는 한국어 번역본 책 디자인이 너무 구려서 그냥 나왔다. 한국에 가는 대로 읽어봐야겠다.
분명 1시간 코스라고 했는데 다 보고 나니 거의 2시간을 그곳에 있었다. 여행 내내 다리가 안 아프기는 힘든 일인 것 같다ㅎㅎ 어제 장을 봤던 Albert Hain 마트에 가서 어제보다 많은 음식을 샀다. 어제 먹은 냉동피자가 되게 맛있었어서 그거랑, 소시지, 바나나, 연어 샐러드를 샀다. 어제 먹다 남은 청포도도 먹었더니 배가 든든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또 10시였다. 얼른 씻고 자고 싶었는데, 내일 8시까지 제출해야 하는 과제를 해야 했다. 같이 교환학생 중인 친구가 도와주긴 했지만, 똑같이 낼 수 없는 과제여서 새로운 사례를 찾았다. 하지만 잠은 쏟아지고 사례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결국 사례를 3개 찾아야 했지만 1개만 찾아서 그냥 제출하고 잠을 잤다. 이거 말고도 과제가 4개나 더 있고, 팀플도 있으니 괜찮다고 위로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어제 코를 심하게 골던 외국인 남자는 체크아웃을 했고, 새로운 남자가 한 명 들어왔는데 우리가 잘 때는 방에 있지 않았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들어와 있었다. 굉장히 조용히 잠을 자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아주 푹 잤다. 내가 머물렀던 호스텔은 'Clink Nord' 호스텔이다. 난방이 아주 따뜻해서 추위를 많이 타는 나한테 아주 좋았지만 샤워기가 벽에 고정되어 있고 물줄기가 적당한 방향을 향하지 않아서 씻기에는 아주 불편했다. 침대도 딱딱해서 옆으로 돌아누워서 자야 했고, 공용 주방이 있긴 하지만 복잡한 요리를 할 만큼 잘 갖춰진 곳은 아니었다. 다시 머물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