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은 바뀌지 않았다.
아니, 자신의 어설픈 개입이 오히려 비극의 방아쇠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하나는 자책감에 빠졌다.
‘이번에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나는… 이번에도 방관자였어…….’
아니, 방관자보다 더 나빴다.
이번엔 공범이었다.
흙과 땀으로 범벅이 된 채 팔뚝에서 피를 흘리는 우진이 다가왔다.
그러나 우진은 상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직 품 안에 있는 작은 생명만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고 있었다.
“…….”
우진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하나의 예언, 자신의 무모한 행동, 눈앞의 비극 그리고 품 안에서 느껴지는 작고 따뜻한 떨림.
이 모든 것이 현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것이 그녀가 말한 그대로 일어났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나 추측의 영역이 아니었다.
우진은 오늘 인간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한참이 지나서야 우진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하나 옆을 지나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안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매우 고요했다.
우진은 일단 새끼 고양이를 상자 안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고양이는 어미의 온기를 찾는 듯 수건 속을 파고들었다.
그때 하나의 눈에 우진의 상처가 들어왔다.
“상처… 치료해야죠!”
하나는 억지로 씩씩하게 굴며 구급상자를 찾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무실 한편에 있던 구급상자를 찾고는, 소독약과 솜, 붕대를 꺼내 우진의 앞으로 왔다.
우진은 아무 말 없이 팔을 내밀었다.
차가운 솜이 상처에 닿는 순간, 우진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그 작은 통증이 비로소 그를 현실로 불러들였다.
하나는 허둥댔고 손길이 서툴렀지만 이상할 정도로 안심이 되었다.
“……미안해요.”
하나가 붕대를 감으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때문에…….”
“기자님 탓이 아닙니다.”
우진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제가… 제가 무모했습니다.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요. 신부님은… 구하려고 했잖아요.”
하나의 손길이 잠시 멈췄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우진의 눈을 마주 보았다.
우진의 눈에 텅 빈 그녀의 눈동자가 들어왔다.
“저는… 아무것도 못 했어요. 그냥… 보기만 했어요. 언제나처럼…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어요.”
하나의 말에는 깊은 자책감이 담겨 있었다.
우진은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이 말속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담겨 있는 걸까.
그는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
치료가 끝나고, 두 사람 사이에는 다시 무거운 침묵이 찾아왔다.
오직 상자 속에서 새끼 고양이가 가냘프게 우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우진은 상자 속의 작은 생명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작은 몸.
그럼에도 끝내 살아남아 숨 쉬고 있는 작은 기적 같은 존재.
그는 비로소 자신이 오늘 겪은 일의 무게를 깨달았다.
그는 하나의 능력을 믿기 시작했다.
“하나 씨.”
우진이 처음으로 그녀를 ‘기자님’이 아닌, 이름으로 불렀다.
하나가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아까 ‘언제나처럼’이라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걸려서요.”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는 혹시나 하나의 상처를 억지로 헤집는 것이 아닐지 염려하며 입을 뗐다.
“항상… 이런 식이었어요.”
하나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언제나 그랬어요. 무언가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걸 알면서도… 막지 못했죠. 늘 엔딩은 제가 본 비극과 똑같았어요. 오히려 그걸 막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엉망이 돼요. 누군가를 구하려고 하면 할수록……. 전, 전 그냥 재앙을 몰고 다니는 사람인가 봐요.”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하나의 고백에는 수없이 많은 실패와 자책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우진은 섣부른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 어떤 말도 그녀의 상처를 치유해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문을 외는 일도 교리적인 위로도 아닐 것이다.
그는 그저 그녀의 고통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조용히 곁을 지켰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 침묵을 지키던 우진이 입을 열었다.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재앙을 몰고 다닌다는 사람이… 재앙 속으로 뛰어들지는 않죠.”
그 말을 들은 하나는 순간 멈칫했다.
“하나 씨는… 구하려고 했잖아요, 오늘도. 그리고 아마… 언제나.”
그러곤 우진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대신, 그는 상자 안에서 새근새근 숨을 쉬고 있는 작은 생명을 바라보았다.
“하나 씨 말대로 엔딩을 완전히 바꾸진 못했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우진이 하나를 보고 말했다.
“분명한 실패입니다. 우리는 그 아이들을 전부 살려내지 못했으니까요.”
그의 말에 하나의 눈이 조금 슬프게 변했다.
“하지만…….”
우진은 상자 안의 작은 생명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 아이는, 우리가 바꾼 엔딩입니다.”
4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