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평화롭던 날의 대소동

by 온새결

진영동 성당 석탑 붕괴 사건으로부터 며칠이 지난 금요일 오후였다.

하나는 선배 태수의 지시로 진영동 중앙공원에서 스케치 취재를 하고 있었다.

‘가을맞이 축제’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솜사탕을 든 아이들, 맛있는 냄새, 야외무대에서 흘러나오는 정겨운 트로트 음악.

적당히 시끄러우면서도 평화로운, 편안한 풍경이었다.


“와, 맛있겠다. 나도 닭꼬치 하나 먹을까…….”


하나가 인파 속에서 먹을거리를 구경하며 중얼거리는 순간이었다.


‘왔다……!’


익숙한 두통과 함께, 눈앞의 세상이 흑백으로 변하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시끄럽던 축제의 소음이 멀어지고, 귓가에 삐- 하는 소리가 울렸다.


—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파편화된 잔상, 비전—


어떤 남자가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다.

시야가 흔들린다.

그런데 한쪽에서 빠른 속도로 오토바이가 달려온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하나의 눈을 스친다.

“피해요!”라는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

그리고 귀를 찢는 듯한 둔탁한 충돌 소리와 아스팔트 위로 흩뿌려지는 선명한 붉은 액체.


-


“흡!”


하나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켰다.

비전에서 깨어난 하나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고,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진영동 성당 사건 이후 처음으로 찾아온, 비극의 예고였다.

그런데 언제?

하나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것이 그녀 능력의 가장 잔인한 부분이다.

비전은 ‘무엇이’ 일어날지만 잠깐 보여줄 뿐 ‘언제’ 일어날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오늘일 수도, 다음 주일 수도, 혹은 한 달 뒤일 수도 있다.

그녀는 그저 이 평화로운 공원에서 끔찍한 사고가 날 것이라는 사실만 알게 된 채 무력감에 휩싸였다.

‘어차피 이번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 그냥 지나가는 수밖에…….’


하나가 한숨을 내쉬며 인파를 둘러보던 순간, 그녀의 심장이 쿵 하고 멈추는 듯했다.

저 멀리, 솜사탕 가게 앞에 서 있는 한 남자.

검은 후드티에 낡은 청바지.

방금 전 비전 속에서 필사적으로 달리던 남자와 똑같은 인상착의였다.


‘설마… 오늘? 아냐, 아냐. 우연일 거야. 저런 옷차림은 흔하니까…….’


그녀가 애써 불안감을 억누르던 바로 그때였다.

축제 야외무대의 스피커에서 사회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 다음 곡은 우리 진영동 주민 여러분의 애창곡이죠! 신나게 달려봅시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트로트 전주.

다름 아닌 그녀가 비전 속에서 희미하게 들었던 바로 그 노래였다.

이제 확신할 수 있다.

그녀가 본 장면은 오늘, 지금 이 순간에 벌어질 일이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어느새 꽤나 익숙해진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저… 신부님.”

“하나 씨, 목소리가 왜 그렇게 떨리십니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우진의 목소리에 그녀는 다급하게 속삭였다.


“신부님… 또 보였어요. 진영동 중앙공원이에요. 여기서 교통사고가 날 예정이에요!”

“네? 공원이요? 하…….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그게 언제 일어날지…….”

“지금이에요! 방금 전까지는 몰랐는데, 비전에서 본 남자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지금 제 눈앞에 있어요. 그리고 비전에서 들렸던 노래가 지금 무대에서 나오고 있어요. 틀림없어요!”


하나의 절박한 설명에 우진의 목소리도 긴박해졌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교통사고라면 함부로 개입하다 크게 다칠 수 있어요! 위험하니까 일단 기다리세요!”


잠시 후, 사제복을 휘날리며 공원에 도착한 우진.

그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듬직했다.

두 사람은 후드티의 그 남자가 사고를 당할 것이라 확신하고, 어설픈 탐정처럼 그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후드티의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서성였다.

그런데 어쩐지 그 모습이 조금 부자연스러웠다.


‘누굴 찾고 있나?’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나?’


두 사람의 머릿속은 온갖 추측으로 가득 찼다.

바로 그때, 그 남자가 본격적으로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벤치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의 등 뒤로 조용히 다가갔다.


“뭐, 뭐 하는 거죠?”


우진이 속삭였다.


“글쎄요.”


그런데 그 순간 남자가 여성의 핸드백을 낚아채 달리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광경에 하나와 우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엥?”

“저 사람… 소매치기였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였다니.

두 사람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비전 그대로라면 교통사고가 날 테니.

남자는 사람들을 헤치며 도로를 향해 달렸다.


“이제 곧 치일 거예요! 어서 가서 막아야 해요!”


우진이 큰 소리로 말하며 달려 나갔다.

우진의 목표는 남자를 덮치는 게 아니었다.

그의 앞을 가로막아, 그가 도로로 뛰어들지 못하게 막는 것!

그런데 마음만 앞선 그의 발이 꼬여버렸다.

우진은 “으악!” 하는 비명과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하필이면 근처 과일 가게, 잘 익은 토마토 더미 위로.


쿵!


“아이고, 신부님!!”


하나가 놀라며 우진에게 소리쳤다.

그런데 그때 우진의 슬랩스틱에 놀란 소매치기범이 잠시 주춤했다.

그리고 비전 속 그 배달 오토바이가 나타났다.

시간이 없었다.

하나는 재빠르게 몸을 날려 소매치기를 덥썩 잡았다.


“뭐, 뭐야?!”

“야 이 소매치기야! 너 그러다 다친다!”


그녀는 소매치기범의 허리를 붙잡고 함께 옆으로 넘어졌다.

덕분에 남자는 오토바이와 직접 부딪히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소동에 놀란 오토바이 운전자가 핸들을 급하게 꺾었고, 균형을 잃은 오토바이가 그대로 우진 옆으로 미끄러졌다.

아까 그 과일 가게의 토마토 더미를 향해.


쿵-!


오토바이가 큰 소리를 내며 충돌하자 수십 개의 잘 익은 토마토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가 바닥에서 터지면서 선명한 붉은 자국을 만들었다.

마치 피처럼.

오토바이 운전자는 땅에 쓸리며 부상을 입었다.


“으…으윽.”


하나가 비전에서 본 그대로였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토마토 범벅이 된 신부, 좌판에 처박힌 오토바이, 넘어진 소매치기범과 그를 붙잡고 있는 한 기자.


-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눈에는 그 광경이 한 편의 기괴한 코미디처럼 보였다.

난감한 표정의 경찰이 무전기에 말했다.


“현장 상황 복잡함. 관련자 전원 연행해서 경위 파악하겠음.”


그러고는 엉망진창이 된 모두를 향해 말했다.


“자, 다들 진술서 쓰셔야겠습니다. 일단 서까지 같이 가시죠.”


-


모든 조사가 끝나고 경찰서를 나왔을 때, 밤은 깊어 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성당으로 향했다.

사람은 구했지만, 과정은 엉망진창이었고, 마음은 무거웠다.


“결국… 또 엉망이 됐네요.”


하나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큰 사고는 피했잖아요.”


우진이 토마토 자국이 남은 사제복을 털며 말했다.

그의 위로에도 하나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그녀는 벤치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였다.


“신부님.”

“네.”

“제 동생 얘기… 해드릴까요?”


우진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옆에 앉았다.

하나는 처음으로,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상처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해진’이었어요. 제 동생 이름. 착하고… 조금 내성적인 아이였죠. 그 애가 고등학생 때 실습이라는 걸 나갔는데, 사실상 일하는 거였어요. 거기서… 많이 힘들었나 봐요. 근데 저한테는 내색을 좀처럼 안 했어요. 아니, 안 한 줄로만 알았죠. 사실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힘들어 보이는 얼굴로, 억지스러운 미소로, 방 안에서 숨죽이고 지내던 그 모습으로……. 전 그게 무서운 엔딩으로 가는 길인 줄 몰랐어요. 그냥… 일이 좀 힘든가 보다, 사춘기가 덜 끝났나 보다, 그렇게 편하게만 생각했죠.”


하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이 지긋지긋한 증상은 그 애가 떠나고 일주일 뒤에 나타났어요. 벌인가 봐요. 그 애가 보냈던 신호들을 외면한 벌. 평생 다른 사람들의 비극적인 엔딩을 보라고.”


하나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저는…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요. 실패하더라도, 자꾸만 엉망이 되더라도… 뭐라도 할 수밖에 없어요. 그냥 보고만 있다가 끝내버리고 싶지 않아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정말이지, 이제는 끔찍한 엔딩을 보고 싶지 않아요.”


우진은 하나의 고백을 묵묵히 듣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하나 씨, 하나 씨는 벌을 받고 있는 게 아닙니다. 어쩌면… 두 번째 기회를 받은 걸지도 몰라요.”


그의 말에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우진은 그녀의 젖은 눈을 피하지 않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동생분…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다고 했죠. 그래서… 누나에게 볼 수 있는 능력을 남겨준 게 아닐까요.”

우진의 목소리는 낮고 담백했다.


“다른 사람들의 마지막 순간을 알아봐 달라고. 혹시나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미리 알아보고 도와주라고……. 그 능력은 벌이 아니라, 어쩌면 해진이가 누나에게 준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우진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자신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모른 채 이렇게 말했다.


“이번엔, 엔딩을 바꿀 수 있는.”



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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