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최악의 비전

by 온새결

마감을 앞둔 월요일 아침의 『주간시사』 편집국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전화벨 소리, 그리고 편집장의 고함이 뒤섞인 전쟁터.

그 전쟁터 한복판에서 하나는 모니터를 응시하며 마지막 문장을 다듬고 있었다.


“그렇게 이웃의 작은 손길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왔다.”


기사의 제목은 「우리 동네의 숨은 버팀목 – ○○동 자원봉사센터 10년」.

이번 호 뒷부분 하단에 들어갈 작은 기사였다.

하지만 하나의 손끝은 여전히 바빴다.

인터뷰 내용이 정확히 인용되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문장을 정성스레 다듬으며 사진 캡션까지 꼼꼼히 확인했다.


“역시 이하나.”


태수가 커피를 홀짝이며 그녀의 등 뒤로 다가왔다.


“작은 거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네.”


하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대답했다.


“에이, 제가 뭘요. ……누군가한텐 중요한 이야기일 테니까요.”


태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네 그 성격은 참, 기자 하기 딱 좋긴 하지.”


태수는 그렇게 말하곤 기지개를 켜며 자리로 돌아갔다.

기사 전송 버튼을 누른 하나는 숨을 내쉬었다.


“휴!”


그리고 책상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낡은 수첩 여러 권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녀는 그중 올해 연도가 적혀 있는 수첩을 꺼내 펼쳤다.


10/11, 진영동 공원, 오토바이 교통사고 → 실패(토마토만 터트림)

10/7, 성당 마당, 석등 붕괴 → 실패(3마리 중 1마리만 구조)

9/18, ○○초등학교, 어린이 추락 → 실패(골절상, 중상)

8/22, 지하철역, 노인 실신 → 실패(뇌진탕, 입원)

7/15, 건널목, 자전거 충돌 → 실패(경상)


실패, 실패, 실패…….

페이지를 넘겨도, 또 넘겨도 비슷한 기록들이 이어졌다.


2025년, 2024년, 2023년…….

가장 오래된 수첩은 2019년도 수첩이었다.


‘벌써 6년이나 됐구나.’


하나는 수첩을 덮으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6년. 이 능력과 함께한 시간.

그동안 많은 장면을 봤다.

대체 실패를 몇 번이나 한 걸까.

엔딩을 바꾼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무것도 못 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최소한 피해를 줄일 수는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인데, 어쩌면 그것조차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자신이 본 비전 속 ‘엔딩’ 그 자체는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으니까.

석등은 결국 무너졌다.

오토바이는 결국 충돌했다.

아이는 결국 떨어졌다.

노인은 결국 쓰러졌다.


‘언제나 그랬어.’


하나는 수첩을 다시 서랍에 넣고 서랍을 닫았다.


“하나야.”


그때 태수가 다시 하나를 불렀다.

그러곤 자료 몇 장을 그녀의 책상에 놓았다.


“이번엔 이거.”


하나는 궁금한 표정으로 자료를 집어 들었다.


“수호타워 준공 1주년 기념?”

“응. 홍보성 짙긴 한데, 네가 잘 풀어주면 괜찮은 지역 소식거리 될 거야. 진영동에 생긴 그 건물 알지? 재벌 10위권 수호그룹이 자랑하는 그 지역 랜드마크래.”


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료를 훑어봤다.


“가서 건물 좀 구경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 주제로 각 잘 잡아서 풀어봐. 네 스타일로.”

“알겠습니다. 주변 상인들 인터뷰도 좀 따 올게요.”


태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하나는 자료를 정리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수호그룹…….”


그녀는 그렇게 새로운 취재를 준비했다.


-


같은 시각, 진영동 성당.

오늘도 우진은 성당 마당에서 고양이와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기적아! 그거 네 밥이라고!”


얼룩무늬 고양이 ‘기적이’는 방금 우진이 내려놓은 밥그릇을 발로 차 뒤집어버렸다.

사료가 마당 바닥에 와르르 쏟아졌다.


“아이고…….”


우진이 허둥대며 바닥에 쏟아진 사료를 주우려 하자, 기적이는 신나게 우진의 바지에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에휴, 이 녀석이 정말… 엄마하고는 하나도 안 닮았어.”


우진은 한숨을 쉬더니 피식 웃었다.

석등 사고에서 살아남은 이 작은 생명은, 이렇게 까불까불한 개구쟁이로 자라고 있었다.


“신부님, 오늘도 고양이 때문에 고생이시네요.”


나이가 지긋한 여성 신자가 지나가다 우진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이 정도면… 행복한 고생이죠.”


우진은 다시 밥그릇을 채우며 기적이를 바라봤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 아이는 살아남았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어쩐 일로 기적이가 얌전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우진은 잠시 기적이를 뒤로하고 성당 전경을 둘러보며 마당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화단을 지나다 돌부리에 발이 걸렸다.


“우악!”


크게 넘어질 뻔한 우진이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그러자 멀리에서 아까 그 여성 신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신부님 조심하세요!”


우진은 멋쩍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역시 난… 운동 신경만큼은 확실히 별로야.’


-


수요일 오전.

하나는 수호타워 앞에 섰다.


“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지상 42층의 거대한 유리 건물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위압적인 외관이었다.

하나는 카메라를 꺼내 건물 외관을 여러 장 촬영했다.

그러곤 핸드폰 메모 앱을 열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42층, 유리 외관, 현대적 디자인…….”


로비 입구에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수호타워 준공 1주년 기념”


하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벌써 1년이나 됐다니, 시간 참 빠르다.’


로비에 들어서자 홍보팀 직원이 밝은 미소로 다가왔다.

30대 여성으로, 친절해 보였다.


“『주간시사』 이하나 기자님 맞으시죠? 오늘 안내 맡은 박지은입니다.”

“아, 넵! 반갑습니다.”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눴다.

지은은 태블릿을 들고 건물 내부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기자님, 저희 수호타워는 지상 42층, 지하 5층 규모로 총 연면적 12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하나는 진지하게 메모하며 질문을 던졌다.


“1층 상가 입점률은 어느 정도예요?”

“아, 현재 95% 정도 입점 완료됐습니다.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죠.”

“혹시 주변 상권에 미친 영향 관련한 자료가 있으면 메일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기자님 정말 꼼꼼하시네요.”


투어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상가, 오피스 그리고 각종 편의시설들.

하나는 꼼꼼히 메모하며 사진을 찍었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10층까지 올라가서 전망 좀 보시고, 이후에 주요 시설들 마저 안내해 드릴게요.”

“네, 좋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두 사람은 조용히 탑승했다.

올라가는 동안 지은이 태블릿을 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10층에는 입주사 직원들을 위한 라운지가 있는데, 거기서 광장이 한눈에 보여서 사진 찍기 좋아요.”

“그렇군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은 10층 복도로 나왔다.

그때 지은이 말했다.


“이제부터 안내가 좀 길어질 것 같은데, 잠시 화장실 다녀오셔도 돼요. 저쪽 끝이에요.”

“아, 네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하나는 화장실을 다녀온 후,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때 복도 창문으로 타워 앞 야외 광장이 보였다.

그녀는 무심코 발걸음을 멈추고 창밖을 내려다봤다.

광장에는 점심시간을 맞은 직장인들이 이곳저곳을 오가고 있었다.

분수대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평화롭네. 좋은 공간이야.’


하나가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익숙한 통증이 관자놀이를 찔렀다.


“아…….”


짧은 신음과 함께,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세상에서 색이 빠져나간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녀의 앞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 새로운 비전 -


콰아아아앙!

천둥 소리보다 큰 굉음.

그 소리에 하나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수십 수백 명의 비명.

아아아아악!

공포, 절규, 고통이 뒤섞인다.

유리가 산산조각 나 떨어지는 모습.

건물 외벽에 빠르게 균열이 생기고,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무너진다.

외벽 조각들이 밖으로 우수수 떨어지고, 조형물들과 분수대가 박살이 난다.

그리고 잠시 후 거대한 먼지 구름이 걷히고 드러난 것은, 수백 명의 사상자들…….


-


“으윽!”


하나는 비전에서 깨어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아, 하아…….”


이제껏 보지 못했던 규모의 끔찍한 비전이었다.

하나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손은 미친 듯이 떨렸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복도를 지나가던 정장 차림의 남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하나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손만 내저었다.


“괘, 괜찮아요…….”

“얼굴이 너무 안 좋으신데…….”

“괜찮아요, 정말…….”


하나는 간신히 벽을 짚고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걸어야 했다.

여기서 나가야 했다.

그때 지은이 멀리서 달려왔다.


“기자님! 어디 안 좋으세요?”


지은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안색이 너무 안 좋으세요!”

“아, 괜찮아요. 그냥 좀 어지러워서요.”


하나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물 좀 드릴까요? 이리 와 여기 앉으세요.”


지은이 하나를 의자에 앉히고 생수를 건넸다.

하나는 물을 마시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하지만 머릿속엔 방금 본 광경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잠시 후 안정을 되찾은 하나가 애써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떨쳐내며 지은에게 물었다.


“요즘 정말 바쁘시죠? 1주년 행사 준비하시느라…….”

“아, 그쵸. 너무 바쁘죠. 근데 1주년 행사도 있는데, 곧 수호그룹 창립 50주년 기념 행사가 여기서 열리거든요. 대광장이랑 본관 전체를 쓰는 대규모 행사라서, 그것 때문에 지금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하나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 그렇구나……. 언제쯤이에요, 정확히는?”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12월 초예요.”


두 달 뒤.

하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기자님? 정말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하나는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엔 방금 본 비전이 계속 재생되고 있었다.

쏟아지는 잔해와 비명.


“안 되겠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해요, 기자님. 나머지 자료는 제가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지은이 하나를 배려하며 말했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먼저 실례할게요.”


하나는 조금 비틀거리며 일어선 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그녀는 벽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방금 본 광경이 지워지지 않았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거대한 타워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유리 외벽.

하지만 하나의 눈에는 그것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자신의 차로 향했다.


-


차 안.

하나는 핸들을 꽉 붙잡고 심호흡을 했다.

백미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안 돼… 이건 안 돼…….”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곤 이제는 익숙해진 어떤 연락처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벨소리가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여보세요? 하나 씨?”


우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처럼 차분한 목소리.

어쩐지 하나의 귀에 오늘 우진의 목소리가 구원의 소리처럼 들렸다.


“신부님…….”


하나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죽어요…….”


차창 밖으로 수호타워가 보였다.


“이번엔… 모두가 죽어요.”



6화 끝.

작가의 이전글5화. 평화롭던 날의 대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