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모두가 죽어요.”
수요일 밤.
전화를 끊은 지 오래지만, 하나의 떨리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다.
우진은 한참을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았다.
멀리 수호타워의 불빛이 보였다.
거대한 건물이 어둠 속에서 차갑게 반짝이고 있었다.
“주님…….”
우진은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뒤에 붙일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같은 시각, 하나는 집 주차장에 차를 세운 채 핸들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비전의 파편들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무너지는 건물, 비명, 먼지 구름, 붉은 자국들.
한참 후, 그녀는 간신히 차에서 내려 현관으로 향했다.
집 안은 어두웠다.
불도 켜지 않고 하나는 소파에 쓰러졌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있었다.
-
다음 날 오전 열한 시경.
하나가 진영동 성당에 도착했다.
거의 잠을 못 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건 우진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성당 마당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신부님.”
그러다 하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할게요. 저… 자신이 없어요.”
그녀는 가방에서 낡은 수첩을 여러 개 꺼내 우진에게 건넸다.
“이게 6년치 기록인데요.”
우진은 수첩을 받아 들고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전부 실패예요.”
하나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엔딩을 바꾼 적이 없어요. 석등도 무너졌고, 오토바이도 충돌했고, 아이도 떨어졌어요. 운 좋게 피해를 조금 줄인 사건이 종종 있었을 뿐이에요. 그런데 이젠 모르겠어요. 그것도 제 착각인 것만 같아요.”
우진은 말없이 수첩을 넘겼다.
“게다가 이번엔… 규모가 너무 커요.”
하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정말… 죽을 수도 있어요. 사람들이.”
우진은 한참 동안 수첩을 보다가, 천천히 덮었다.
“네……. 그럴 수도 있겠죠.”
하나는 우진을 봤다.
자기도 모르게 위로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자 순간 당황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저도 어젯밤 내내 기도했는데…….”
우진이 말을 이었다.
“답이 안 나왔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막으려 나선다고 막을 수 있을지…….”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얼룩무늬 고양이 기적이가 마당을 가로질러 다가왔다.
녀석은 우진의 무릎에 폴짝 뛰어올라 몸을 둥글게 말았다.
우진은 기적이를 쓰다듬으며 작게 웃었다.
“이 아이… 그날 생각나세요?”
“네.”
“우리 완전히 실패했죠. 석등은 무너졌고, 두 마리는…….”
우진의 말이 잠시 끊겼다.
“근데 이 아이는 살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녀석이라도 살려서 어찌나 다행인지…….”
하나는 기적이를 바라봤다.
작고 따뜻한 생명.
햇살 아래서 평화롭게 눈을 감고 있는 고양이.
“…그러게요.”
하나가 작게 말했다.
“하나의 생명이라도…….”
잠시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은 그렇게 기적이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
“하… 신부님, 한번 해볼까요……?”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하나가 큰 한숨을 쉬더니 조용히 말했다.
“실패할 게 뻔한데… 그래도 알아볼까요, 왜 무너지는지?”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저도 도울게요”
하나는 우진을 봤다.
“…신부님은 왜… 하려고 하세요?”
하나가 물었다.
우진은 기적이를 계속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 잠시 후 대답했다.
“손을 내미는 게 제 일이잖아요.”
“일이요?”
“네. 사제니까요. 어떤 상황에서든 손은 내밀어 봐야죠.”
우진이 하나를 봤다.
“그러는 하나 씨는요? 왜 하려고 하세요? 이번엔 진짜로 위험할 수도 있어요.”
하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잠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해진이요.”
우진이 귀를 기울였다.
“신부님이 그랬죠. 제 눈앞에 펼쳐진 비극의 파편들이 우리 해진이가 저에게 보내준 신호일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우진을 똑바로 봤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역시 저는 그걸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우진도 하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같이 봅시다.”
“네?”
“신호를요. 이번엔 같이.”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잠시 그렇게 앉아 있었다.
기적이가 우진의 무릎에서 하나의 무릎으로 옮겨갔다.
하나는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그럼… 우리 이제 뭘 해야 하죠?”
우진이 물었다.
“알아봐야죠.”
하나가 대답했다.
“왜 무너지는지. 건물이 멀쩡한데 무너질 리 없잖아요. 분명 원인이 있을 거예요.”
“그걸 알아내면?”
“…모르겠어요. 하지만 일단 원인을 찾는 게 1번.”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들어갑시다.”
두 사람은 성당 사무실로 향했다.
-
사무실 안.
우진은 낡은 노트북을 켜고, 하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수호타워’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수호타워, 지상 42층, 지하 5층…….”
하나가 검색 결과를 읽었다.
“건축 구조는… 철골 철근 콘크리트?”
우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거에 대해서 잘 알아요?”
“벽돌을 쌓아 만든 건 아닌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고 웃었다.
“우리 지금 뭐 하는 거예요?”
하나가 물었다.
“모릅니다.”
우진이 대답했다.
두 사람은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한참 동안 검색에 열중하던 우진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그 건물에 직접 들어가서 조사를 할 수 있을까요?”
“좋아요! 차라리 그렇게 해요.”
“그런데 어떻게 들어가죠? 하나 씨야 기자니까 여러모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해도 저는…….”
“아…….”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부님은…….”
잠시 생각하던 하나가 말했다.
“타워 1층 커뮤니티 공간 활용은 어때요?”
“커뮤니티 공간이요?”
“타워에 주민 개방 공간이 있어요. 거기서 신부님이 무료 상담이나 문화 프로그램 열 수 있을지 협의한다고 하면…….”
“오, 그거 완전 자연스러운데요?”
우진이 감탄하듯 말했다.
“역시 기자님이시네요. 그런 생각을 바로 떠올리시다니.”
하나가 웃었다.
“이런 거야 뭐, 늘상 하는 일인데요. 명분 만들기.”
하나가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그럼 제가 타워 홍보팀에 먼저 연락해 볼게요. 취재 허가 요청하면서 신부님도 소개시켜 드릴게요.”
“네! 그럼… 언제부터?”
“연락 오는 대로 움직이죠.”
우진이 하나를 봤다.
“하나 씨.”
“네?”
“우리… 할 수 있을까요?”
하나는 잠시 침묵했다.
“모르겠어요.”
그러더니 웃으며 말했다.
“근데 해야죠.”
그날, 두 사람은 시작했다.
때로는 엔딩을 알면서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믿으며.
-
같은 시각, 수호타워 내부.
어두운 복도를 한 남자가 걷고 있다.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는 다리를 약간 절뚝거렸다.
한참을 걷던 남자는 설비실 문 앞에서 멈췄다.
주변을 살피더니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설비실 내부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남자는 손전등을 켜고 안으로 들어갔다.
손전등 불빛이 벽면의 이곳저곳을 비췄다.
남자는 낡은 노트를 꺼내 뭔가를 확인했다.
그리고 작은 공구 가방에서 장비를 꺼냈다.
남자는 아주 부드럽고 정확한 동작으로, 기둥 한쪽에 작은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한참 후, 작업을 마친 남자는 노트에 체크 표시를 했다.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굵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D-56”
남자는 손전등을 끄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설비실 문이 닫히고,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
그렇게 카운트다운은 시작되었다.
7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