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작은 균열

by 온새결

금요일 아침.

하나는 회사 책상에 앉아 핸드폰을 들었다.

화면에는 수호타워 홍보팀 번호가 입력되어 있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따르르릉.

찰칵.


“네, 수호그룹 홍보팀 대리 박지은입니다.”

“안녕하세요! 『주간시사』 이하나 기자입니다!”

“아, 이 기자님! 지난번에 오셨던 이 기자님 맞으시죠?”


박지은의 목소리가 밝았다.


“네, 맞아요! 잘 지내셨죠?”

“그럼요! 그나저나 기자님 괜찮으세요? 그날 많이 안 좋아 보이셔서 걱정 많이 했어요.”

“아, 별거 아니에요. 제가 원래 빈혈기가 좀 있어요, 하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이세요?”

“다름이 아니라, 타워와 지역 성당의 협력 프로그램을 기획 중인데, 관련해서 미팅이 가능할까 해서요.”

“협력 프로그램이요?”

“네, 1층 커뮤니티 공간에서, 진영동 성당 측이 주민 대상으로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거예요. 지역 사회 공헌 차원에서도 좋을 것 같고요.”

“오, 좋은 아이디어 같은데요? 언제 오실 수 있으신데요?”


생각보다 쉽게 승낙을 받았다.

하나는 조금 놀랐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혹시… 오늘 오후 3시도 괜찮을까요?”

“좋아요! 그럼 로비에서 뵙겠습니다.”


하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우진에게 문자를 보냈다.


“됐어요! 오늘 오후 3시. 수호타워 로비에서 봐요.”


-


그 시각, 진영동 성당.

우진은 사무실 거울 앞에서 사제복 매무새를 가다듬고 있었다.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괜찮아. 그냥 협력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거야. 뭐, 실제로 진행하면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니까 긴장하지 말자…….’


그때 발밑에서 기적이가 야옹거리며 다가왔다.

녀석은 우진의 다리에 몸을 비비더니, 신발 끈을 물고 놀기 시작했다.


“기적아, 오늘 중요한 날이야. 제발, 어?”


우진이 기적이를 떼어내려는 순간, 신발 끈이 풀려버렸다.


“이 녀석이…….”


우진은 한숨을 쉬며 기적이를 안아 올렸다.


“너는 정말… 타이밍이 기가 막혀. 신부님 바쁘다니까.”


기적이는 우진의 손에 들려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우진은 기적이를 내려놓고 신발 끈을 다시 묶었다.

그리고 시계를 확인했다.

출발할 시간이었다.


-


오후 3시.

하나와 우진은 수호타워 로비에서 만났다.

우진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괜찮으세요? 왜 이렇게 쫄아 있는 것 같지?”


하나가 물었다.


“네… 그냥 좀 떨리네요.”

“너무 긴장하지 말자고요.”


하나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로비 안쪽 미팅룸으로 향했다.

그러자 박지은이 밝은 표정으로 그들을 맞았다.


“이하나 기자님! 오셨어요?”

“대리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진영동 성당 차우진 신부님 모시고 왔습니다.”


우진이 공손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차우진입니다.”

“반갑습니다! 홍보팀 대리 박지은이에요. 커뮤니티 공간 협력 프로그램이라니, 정말 좋은 아이디어시네요. 요즘 기업들은 또 ESG 경영이 중요하잖아요.”


박지은이 태블릿을 꺼내며 말했다.


“일단 1층 공간부터 살펴보실까요?”


1층 커뮤니티 공간은 로비 한쪽에 마련된 개방형 공간이었다.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고, 작은 무대 같은 것도 있었다. 생각보다 넓었다.


“여기서 주민들 대상으로 소규모 행사 자주 해요. 음악회도 하고, 강연도 하고요.”


박지은이 설명했다.

하나와 우진은 공간을 천천히 둘러봤다.

우진은 메모하는 척하며 주변을 살폈다.


‘여기는 특별히 이상한 게 없네……. 뭐 당연한 거겠지만.’


하나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건물 안전 같은 건 정기적으로 점검하시는 거죠?”

“안전 점검이요? 당연하죠! 분기마다 하는걸요.”


박지은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럼, 최근에도……?”

“네, 그럼요. 지난달에도 했어요. 그런데 뭐 때문에 그러세요?”


박지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나는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아무래도 요즘 사건 사고가 많다 보니, 안전 점검이 너무 중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어서요.”

우진이 거들었다.


“오, 저도 최신 건물은 어떻게 관리하시나 안 그래도 궁금했습니다. 프로그램 참여하시는 분들 안전이 최우선이다 보니, 하하.”

“저희는 믿을 만한 전문 업체에 맡기고 있어서, 그런 부분은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호호.”


박지은이 뭘 그런 걸 걱정하냐는 투로 말했다.

사실 이상한 질문이었다.

지어진 지 1년밖에 안 된 건물에 와서 안전 점검을 받느냐니…….

미팅은 30분 정도 이어졌다.

프로그램 운영 방식, 공간 사용 조건, 일정 조율 같은 것들을 논의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럼 저희도 내부 검토 거쳐서 다시 연락드릴게요. 최대한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게요.”


박지은이 악수를 청했다.

하나와 우진은 인사를 마치고 미팅룸을 나섰다.

그리고 로비로 향하는 복도를 걷는데, 우진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저기…….”


우진이 작게 말했다.

하나가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복도 한쪽, 비상구 쪽 벽면에 아주 미세한 금이 가 있었다.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선이었다.

두 사람은 시선을 교환했다. 하나가 작게 속삭였다.


“…나중에 얘기해요.”


타워 밖 광장.

두 사람은 타워 주변을 걸으며 얘기를 이어갔다.

우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그 금… 원래 있던 걸까요?”

“모르겠어요.”


하나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건물이 작년에 준공됐는데 벌써 금이 간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요?”

“예… 확실히 그렇죠. 그런데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어요. 단순히 페인트가 벗겨진 거일 수도 있잖아요. 다음에 다시 왔을 때 자세히 보죠.”

"네, 그렇게 해요. 아무리 봐도 당장 무너질 건물같이는 안 보이니까요. 일단 오늘은 발판을 마련한 거라 생각합시다."


하나는 그렇게 말하는 우진을 바라봤다.


“신부님, 정말 감사해요. 저 혼자였으면 이렇게까지 못했을 거예요.”

“아니에요. 같이 하는 거잖아요.”


우진이 머쓱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


그날 저녁, 하나의 집.

하나는 노트북을 켜고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건물 균열 원인”


화면에 수많은 검색 결과가 떴다.

그녀는 차례로 링크를 클릭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 결함”

“하중 초과로 인한 균열”

“시공 불량 균열 패턴”


전문 용어들이 가득한 페이지들이었다.

하나는 한참을 읽다가 한숨을 쉬었다.


“하, 뭔 소린지 잘 모르겠네…….”


그녀는 노트북을 덮고 창밖을 바라봤다.

멀리 수호타워의 불빛이 보였다.


‘그 금이 정말 어떤 문제의 증상일까? 아니면 가벼운 현상?’


역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유일하게 하나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저 건물이 조만간 무너진다는 사실이었다.

여태껏 비전은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같은 시각, 진영동 성당.

우진은 텅 빈 성당 십자가상 앞에 혼자 앉아 있다.


“주님…….”


두 손을 모으고 내뱉은 그의 말이 어둠 속에서 작게 울렸다.


“숨 쉬는 모든 것들을 보살펴 주소서…….”


창밖으로 타워의 불빛이 보였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차갑게 빛나는 거대한 건물.

우진은 불안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정말 저 건물이 무너질까?’


우진은 하나의 말을 믿었지만, 저 거대한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


그날 밤.

성당에서 혼자 기도를 하고 있는 우진과 집에서 수호타워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있는 하나.

수호타워는 여전히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차갑게 빛나며.

지금 둘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이 발견한 작은 균열이, 누군가의 흔적이라는 것을.



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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