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타워를 방문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하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금요일 오전, 『주간시사』 편집국.
“○○ 시 구도심 재개발 지역, 안전 문제 심각”
모니터에는 낡은 건물 사진들이 가득했다.
금이 간 외벽, 녹슨 철근이 드러난 계단, 비좁은 골목길.
“이하나.”
태수가 오늘도 커피를 들고 다가왔다.
“네?”
“오늘 현장 답사 간다며? 조심해. 거기 건물들 진짜로 위험해 보이더라.”
“네. 안전화에 헬멧까지 잘 챙겼습니다.”
-
오후 2시, ○○ 시 구도심 재개발 예정 지역.
하나는 헬멧을 쓰고 낡은 다세대주택 앞에 섰다.
“기자님, 여기예요.”
60대 남성 주민이 하나를 맞았다.
“안녕하세요, 『주간시사』 이하나입니다.”
“이리 오세요. 제일 심한 데부터 보여드릴게요.”
주민은 하나를 3층 계단으로 안내했다.
계단 벽면에는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었다.
“보세요, 이거. 작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와…….”
벽 곳곳이 갈라져 있었고, 살짝 건드리면 미세한 시멘트 가루가 떨어졌다.
하나는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밤에는 좀 으스스한 소리도 나요. 무서워서 잠도 제대로 못 잔다니까요.”
“구청에는 신고하셨어요?”
“했죠. 근데 조금만 참으라는 얘기뿐이에요. 그게 벌써 2년째인데…….”
주민의 목소리에 간절함과 짜증이 섞여 있었다.
하나는 메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건물 시공사 아세요?”
“현관에 명판이 있어요. 같이 가보실래요?”
하나는 다시 1층으로 내려가 현관 옆 명판을 확인했다.
시공: 수호건설
1996년 준공
하나의 손이 잠시 멈췄다.
‘수호그룹…….’
바로 그때였다.
‘으윽, 또……!!’
익숙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찔렀다.
하나는 본능적으로 벽을 짚었다.
“윽!”
“기자님?”
주민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다시 한번 세상에서 색이 빠져나갔다.
- 또 시작되는 비전 -
굉음.
계단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벽면의 금이 빠르게 퍼지며 깨진 시멘트 덩어리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으아아악!
계단에 있던 누군가의 비명.
그리고 철근이 휘어지는 소리.
먼지 구름.
잔해 더미.
구급차 사이렌 소리.
-
“으윽!”
하나가 비전에서 깨어났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기자님! 괜찮으세요?”
주민이 놀라 쓰러지려는 듯한 하나를 부축했다.
“아, 네… 괜찮아요.”
하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올려다봤다.
방금 전 비전에서 무너졌던 바로 그곳.
“저기요…….”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계단… 정말 위험한 것 같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기자님 부른 거 아니에요.”
“아니, 제 말은… 정말로, 곧 무너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나의 진지한 표정에 주민의 얼굴이 굳었다.
“네?”
“지금 당장 구청에 재신고하세요. 아니, 제가 직접 연락할게요. 그리고 주민분들한테도 알려주세요. 당분간 이 계단 사용하지 말라고.”
하나의 목소리가 절박했다.
“기, 기자님?”
“선생님! 진짜 위험해요. 제발 믿어주세요.”
주민은 하나의 떨리는 손과 창백한 얼굴을 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그날 오후 늦게, 하나는 구청 민원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직접 찾아가 담당자를 만났다.
“알겠습니다. 안전 점검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담당 공무원이 서류에 도장을 찍으며 말했다.
“빨리 해주세요. 정말 위험해요.”
“네, 최대한 빠르게…….”
-
그로부터 며칠 후.
하나는 회사에서 다른 기사를 쓰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재개발 지역 취재를 도와주었던 주민이었다.
“기자님! 큰일 날 뻔했어요!”
“네? 무슨 일이세요?”
하나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침에 계단이 무너졌어요! 3층 계단이 와르르!”
“…….”
하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근데 그때 기자님이 말씀해 주셔서 그 계단 잘 안 이용하고 있었거든요. 웬만하면 돌아서 다녔어요. 그래서 지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요!”
주민의 목소리엔 하나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에요!”
하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기자님이 그때 경고 안 해주셨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니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통화가 끝났다.
하나는 핸드폰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계단은 무너졌다.
엔딩은 바뀌지 않았다.
태수가 다가왔다.
“뭐야?”
“무너졌대요. 계단이…….”
“뭐? 그때 취재 갔던 재개발 지역 다세대 주택?”
“네.”
“다친 사람은?”
“……다행히 없어요.”
태수는 하나의 어깨를 툭 쳤다.
“휴, 다행이네.”
“네, 그렇죠.”
하나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딘지 쓸쓸함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
그날 밤, 집에 돌아온 하나는 노트북을 켜고 건물 정보를 다시 확인했다.
“시공: 수호건설 / 1996년 준공”
그녀는 검색창에 입력했다.
“수호건설 부실시공”
수십 개의 기사가 떴다.
2000년대 초반 아파트 균열 사건.
2010년 상가 붕괴.
2015년 학교 건물 안전 문제.
“오래됐다고는 해도 30년이 채 안 된 건물이었는데…….”
하나의 시선이 창밖 멀리 보이는 수호타워로 향했다.
작년에 준공된 42층 건물.
수호그룹이 자랑하는 랜드마크.
‘저 건물은……?’
하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하나 씨?”
우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부님, 타워 공간 사용 승인 났어요?”
“아, 네! 오늘 연락 왔어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시작할 수 있대요.”
“잘됐다…….”
하나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얼마 전 또 봤어요. 건물 계단이 무너지는 장면을. 그리고… 또 일어났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친 사람은…….”
“다행히 없었어요. 그런데요, 신부님.”
“네?”
하나는 모니터 속 수호타워 사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무너진 건물… 수호건설이 지은 거였어요. 물론 오래되긴 했지만요.”
“…….”
두 사람의 대화가 잠시 끊어졌다.
잠시 후 우진이 창밖 타워의 불빛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살펴봅시다.”
“네.”
통화가 끝났다.
하나는 낡은 수첩을 꺼내 펼쳤다.
10/18, 진영동 구도심 재개발 지역, 계단 붕괴 → 실패(인명 피해 없음)
시공사: 수호건설 (1996)
그리고 새 페이지를 펼쳐 또박또박 적었다.
수호타워 조사 시작
시공사: 수호건설 (2024)
D-?
하나는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거대한 타워가 밤하늘을 배경으로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
같은 시각 수호타워 지하 2층 주차장.
노란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청소 카트를 밀며 걷고 있다.
카트에는 각종 청소 용품들이 실려 있었다.
절뚝거리는 걸음걸이.
주차장 한쪽 구석, 기둥 근처에 멈춰 섰다.
‘B2-17’ 표시가 있는 콘크리트 기둥.
언뜻 보기에는 다른 기둥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남자는 그 기둥 앞에서 주변을 살폈다.
차도 없고, 사람도 없는 시간.
남자는 청소 카트에서 어떤 액체가 든 통을 꺼냈다.
겉보기엔 평범한 세제통.
하지만 안에 든 액체는 투명하고 자극적인 냄새가 났다.
기둥이 바닥과 만나는 접합부.
남자는 무릎을 꿇고 앉아 그 부분을 자세히 살폈다.
이미 몇 주 전부터 작업해 온 흔적이 미세하게 보였다.
콘크리트 표면이 약간 변색되어 있었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액체를 뿌렸다.
쉬익-
액체가 스며들었다.
철근을 감싸고 있는 콘크리트 속으로.
시간이 지나면 철근이 서서히 부식될 것이다.
그때였다.
“거기서 뭐 하세요?”
남자가 화들짝 놀라 돌아봤다.
보안요원이 손전등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아, 청소 중입니다.”
남자는 재빨리 세제통을 카트에 넣고 걸레를 꺼냈다.
“이 기둥 쪽에 기름때가 묻어서요…….”
보안요원이 잠깐 기둥을 살폈다.
남자의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
“아, 그러세요? 수고하십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보안요원이 그의 출입증을 확인했다.
[신성이벤트테크(주) / 김민수 / 설치팀]
“아, 행사 쪽 분이시구나. 그런데 이런 곳까지 청소해 주실 필요는 없어요. 수고하세요.”
“네, 수고하십쇼.”
보안요원이 지나갔다.
남자는 심장이 터질 듯 뛰는 걸 느꼈다.
남자는 보안요원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낡은 노트를 꺼냈다.
타워 지하 평면도.
여러 기둥들에 빨간 표시가 되어 있었다.
B2-17 옆에 체크를 했다.
“…이제 절반쯤 왔어.”
남자는 청소 카트를 밀고 조용히 사라졌다.
복도 끝, CCTV가 깜빡이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가 작업하던 기둥은 사각지대였다.
-
지하 주차장은 다시 정적에 잠겼다.
그리고 B2-17 기둥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타워를 지탱하고 있었다.
조금은 위태롭게.
9화 끝.